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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춤추는 작은 궁둥이들

*칫솔을 줄까? 치약을 줄까?

by 윤혜경

*누나들의 남반구 시절의 뒤안길 돌아보기


*남반구에 위치한 Australia Sydney의 자카렌다 계절 (출처: Daum).



지구상의 5 대양 (ocean) 중 태평양(Pacific Ocean) 상에 있는 두 도시이지만, 북반구의 태평양에 자리한 서울이 추운 겨울일 때, 남반구의 태평양에 자리한 시드니는 아주 건조하고 핫한 여름이다.


북반구의 12월은 하이얀 눈이 내려서 머리에 머플러를 두르고 두툼한 코트를 차려입는 겨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남반구 시드니의 12월은 반팔과 반바지 차림이 어울리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


쇼핑몰의 대형백화점 앞에 자리 잡은, 빨간 복장으로 턱밑에 흰 수염을 늘어뜨린 산타는 발밑에 초미니 선풍기를 돌리며 반팔 차림의 아이들과 기념사진을 찍는다.


붉은 옷을 입고 모자를 쓴 남반구 산타의 얼굴에 땀이 흘러내리는 더운 여름의 크리스마스이다. 그곳에서는 초록빛 트리 주변에 하이얀 스티로폼을 잔뜩 뿌려서 흰 눈이 내려앉은 분위기를 만든다. 알갱이 스티로폼 눈밭에 빨강, 초록, 파랑, 금빛으로 예쁘게 포장된 선물 꾸러미가 잔뜩 담긴 루돌프 사슴 썰매도 놓여있었다.


하얀색 크리스마스트리가 초록빛 트리와 함께 진열되어 있는 그곳에선 남반구의 여름 크리스마스와 하이얀 트리가 참 잘 어울린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26 가족이 둘러 모여 선물을 뜯어보는 Boxing Day 직후 큰 폭으로 할인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구매하러 백화점에 들렀을 때 두 딸아이는 초록빛 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땀을 줄줄 흘리는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남반구에 자리한 시드니에서 두 아이는 어려서부터 치아 관리를 열심히 하도록 엄마가 도왔지만, 끊임없이 출현하는 충치 손님은 막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6개월에 한 번씩 치과를 가서 점검을 했는데도 아주 조그마한 충치 흔적들이 여기저기 잘 숨어있다가 뒤늦게 발견되곤 했다. 그나마 서울에서부터 '관리를 잘한 편'이라는 치과 의사의 평가에 위안이 되었을 뿐, 노력한 보람이 참 적었다.



1990년대 초반에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을 다니던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공립초등학교 운동장 한편엔 친절한 이동버스 치과가 나타나곤 했다.



(사진출처: https://www.gq.com/story/bob-ross-personal-style-hall-of-fame/ 나무위키 https://namu.wiki/w/%EB%B0%A5%20%EB%A1%9C%EC%8A%A4%EC%9D%98%20%EA%B7%B8%EB%A6%BC%EC%9D%84%20%EA%B7%B8%EB%A6%BD%EC%8B%9C%EB%8B%A4 )
1994년 "밥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 프로그램이 EBS TV에서 방영되며 미국 스케치 화가로 한국에 널리 알려진 '밥 로스'(1995년 52세에 악성림프종으로 사망했다)처럼 풍성하게 굵은 곱슬 파마로 마치 바구니를 뒤집어쓴 듯한 모습으로 활짝 웃어 보이던 엄마표 치과의사는 늘 친절하고 경쾌해서 아이들이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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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https://www.gq.com/story/bob-ross-personal-style-hall-of-fame/ 나무위키 https://namu.wiki/w/%EB%B0%A5%20%EB%A1%9C%EC%8A%A4%EC%9D%98%20%EA%B7%B8%EB%A6%BC%EC%9D%84%20%EA%B7%B8%EB%A6%BD%EC%8B%9C%EB%8B%A4 )


1994년 "밥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 프로그램이 EBS TV에서 방영되며 미국 스케치 화가로 한국에 널리 알려진 '밥 로스'(1995년 52세에 악성림프종으로 사망했다)처럼 풍성하게 굵은 곱슬 파마로 마치 바구니를 뒤집어쓴 듯한 모습으로 활짝 웃어 보이던 엄마표 치과의사는 늘 친절하고 경쾌해서 아이들이 좋아했다.


어린 두 딸은 치과 가는 날에도 특별한 거부감을 내보이지 않고 동행하니 나도 덩달아 아이들 치아를 잘 관리 중인 엄마로 착각하며 엔도르핀이 뿜 뿜 오르는 날이 된다.


3시에 끝나서 선생님과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를 픽업하고 교실입구 운동장에 서있는 다른 학부모들과 반가운 인사들을 교환한다. 3시 15분쯤에 다시 가톨릭 스쿨에서부터 걸어서 치과버스가 서있는 공립학교까지 가는 시간은 조그만 아이들의 발걸음으로 30분쯤 걸린다. 급한 마음일 때는 작은 아이가 어려서 쓰던 유모차에 태워 엄마가 밀고 가면서 두 아이를 번갈아 앉히면 아이들도 즐거워하고 시간이 덜 걸렸다.


가톨릭 학교에서 사거리의 백화점을 2개 지나고 번화가를 벗어나 한가로이 상가들이 4차선 도로 양측에 이따금 보이는, Pacific Highway로 이어지는 도로를 주욱 따라 걸으면 한적한 위치에 자리한 공립초등학교가 나온다.


가는 길에 큰 길가 백화점의 쇼윈도에 전시된 레고로 조립된 왕궁이랑 커다란 비행기 모형들, 그리고 예쁜 마네킹들에 눈길을 주며 두리번거리고 걸으면 4시 즈음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아동용 만화가 TV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동용 버스의 발판 2개를 딛고 올라서면 버스 속은 치과 냄새가 나는 병원이다. 치과의사는 아이가 어린이용 치과 의자에 앉으면 최대로 눕혀서 치료용 자세를 잡아 준 후, 머리 위 버스 천정에 붙어있는 14인치쯤 되는 TV를 켜준다.


*Tom and Jerry 제리(출처 Daum)


그즈음엔 개구쟁이 고양이 톰과 잽싼 꾀돌이 쥐인 제리가 주인공인 '톰과 제리' 만화영화에 온 가족이 빠져있던 터라서 딸들은 번갈아 입을 벌려 의사에게 맡긴 채, 눈은 TV 화면에 붙박이가 된다.


기다란 이동버스 치과는 예약을 전화로 미리 해두면 대체로 치료시간 간격을 잘 조절하여 기다리는 시간이 길지 않았다. 초등학교 아동들의 충치 조기 발견과 치료를 위해 매달 정해진 요일에 공립학교의 운동장 한쪽에서 아침부터 오후 6시까지 종일 이동버스 치과가 문을 열고 기다린다.


예약 시간에 맞춰 나타난 어린 손님들은 발판 2개의 버스 계단을 딛고 올라서 버스로 들어간다. 웬만한 기본 치료는 모두 가능하고 완전히 무료이다. 사립학교에 다니는 아동반 일지라도 '초등학교 어린이'라는 치료 대상의 조건에 해당되었다.


그리고 치료가 끝나면 의사 선생님의 손에 칫솔이나 치약이 선물로 들려있다.


"서울이는 뭘 갖고 싶을까? "


하는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은 잠시 생각하다가 칫솔이나 치약 중 하나를 고른다. 마치


' 난 네가 아픈 치과치료를 눈물 한 방울 없이 잘 참아내는 모습에 반했어~**'


하는 표정으로 칭찬을 듬뿍해주며 '엎어 쓴 바구니 머리' 치과의사는 선물을 기분 좋게 건네준다. 어른과 어린아이가 눈을 맞추며 상냥하게 기분 좋은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다리는 엄마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동물 스티커와 배지도 종종 선물로 준다. 포장된 작은 사탕과 초콜릿을 한 알씩 건네주기도 한다.


치과를 다녀오는 길에 두 아이는 걷지 않고 춤추듯 스텝을 밟으며 껑충거린다. 가장 부담스러운 병원인 치과를 다녀오면서, 어린아이 둘의 작은 궁둥이가 길에서 춤추며 걷는 모습이라니.


입을 벌리고 침을 질질 흘리며 힘들게 시끄러운 기계음을 들은 날인데도 치과 선생님과의 경쾌한 대화와 만화영화 '톰 앤 제리'와 칫솔과 스티커 선물이 작은 손에 가득 쥐어져서 아이들의 궁둥이까지 들썩거리게 하여 엔도르핀을 쏘아 올린다. 엄마는 이 나이에도 치과 약속 잡는 일은 엔도르핀은 고사하고 머리만 무거운데...


그렇게 덩달아 기분이 살짝 올라간 상태가 되면 엄마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게 되는 이웃에게 평상시보다 미소를 더 많이 머금고 인사를 나누게 된다. 그때는 그랬다. 아주 가끔 폐쇄적인 사고의,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사람들의 이방인에 대한 홀대나 무시가 건네졌지만, 대체로 상식적인 시스템은 이방인인 아이들도 어른도 성정이 거칠어질 필요가 없게 평화로웠다.


그중 6개월에 한 번 정기적으로 예약하는 어린이용 이동치과는 아이들의 엔도르핀을 올려주는 즐거운 이동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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