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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떼보다 시끄러운 위층 손님들

위층의 소음 그리고 아래층의 음식 냄새

by Killara Sep 3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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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틀레아(꽃말: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같은 태평양 상에 놓인 나라들이지만 남반구 오세아니아의 시드니와 북반구에 위치한 서울을 왕복하는 출장길은 요즘과 달리 1988년 11월에는 홍콩이나 일본을 경유하는 노선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한 국적기가 홍콩이나 동경에 내려주면  2시간 동안 그곳 공항에서 기다리거나,  주변 호텔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연결되는 홍콩이나 일본의 비행기를 타고 시드니 공항으로 다시  9시간 넘게 날아야만 했다. 그래서 유럽이나 미국 동부보다는 수월하지만 비행시간을 대충 12시간쯤으로 얘기하곤 했다. 


어디나 남의 나라 사람들에게는 차별이 있지만 그 시절의 그 나라는 백호주의 잔상이 좀 진했었다.  한국사회도 백인을 제외한 외국인에 대한 낯가림이 심했던 20세기 말엽이었으니까... 호주에는 멀리서 찾아온 아시아인들을 향한 차별이 남아있었고, 노골적인 인종차별이 길거리나 상점에서도 제법 표현되곤 했다. 


행여 아이들에게서 마늘이나 김치 같은 강한 음식 내음이 베이지 않도록 아침과 점심은 샌드위치,  저녁은 맑은 국이나 찌개에 김치 반찬을 곁들여 한국식으로 먹었다. 김치나 불고기, 상추쌈처럼 마늘 향이 강하게 베인 음식은 주로 저녁 메뉴나 주말 메뉴에 등장하곤 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칫솔질은 정성스레 자주 하도록 했다. 종종 '마늘 냄새나는 한국인'에 대한 유쾌하지 않은 에피소드가 알려지곤 했으므로.


일 년에 한 번 본국 출장을 다녀오는 아이 아빠가 돌아오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굴비 반찬이 생겼다. 문제는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의 국적기 직통노선이  생기기 전에는 홍콩이나 일본에서 그 나라 비행기로 바꾸어 탑승하느라 하룻밤을 묵어 오는 동안 여행가방 멘 아래에 놓인 굴비가 신선도를 잃어간다는데 있다. 가끔 시드니의 공항에서 남반구의 그들에게는 외래종으로 간주되는, 귀하고 귀한 굴비와. 말린 인삼을 통째 몰수당하기도 했다.

심어도 자랄 수 없는 인삼의 형태를 요리저리 살펴보고서는 결국 통관거부를 표현하느라 고개를 젓는다. 문익점의 목화씨처럼 건조된 인삼의 부활을 염려하는 그들에게 수삼과 건조인삼의 차이에 대한 서툰 영어 설명은 중요하지 않았다. 제법 큰 말린 인삼과 알이 베인 굴비가 공항 세관에서 통째 버려질 때의 황당함이라니...  문화의 차이였지만 그 모멸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일찍 아이들용 특찬으로 양가에서 선물 받은 굴비는 수분이 쫀득하게 남은 상태여서 서울 체류 후 홍콩을 거쳐 오느라 좀 상해서 도착한다. 생선 비린내가 베인 여행가방이 용케 세관을 통관해서 운수 좋은 날이 되었다. 


그렇게 구사일생 끝에 도착한 귀한 굴비를 냉동실에 손질해서 넣고 저녁특찬으로 도톰한 놈으로 한 마리를 구웠다. 후드 팬이 없는 아파트 부엌이라 부엌 창문을 통해 윗집으로 생선 냄새가 올라갔나 보다. 사실 아이 엄마라도 생선 비린내는 많이 싫다. 더구나 결혼 전부터 고등어에는 등과 다리에 두드러기가 큼직하게 일어나는 알레르기 체질이다.


그날은 윗집에서 주말 파티가 있다는 공고문이 엘리베이터에 붙었다. 그리고 오후 5시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남녀 성인들이 술잔을 든 채 베란다에서 눈앞의 숲을 보며 참새떼처럼 떠들기 시작했다. 일단 주말 파티 공고는 우리가 이런 행사가 있으니 소란을 양해해달라는 의사 전달이다. 주말에 알림이 엘리베이터의 벽에 붙으면 그 주말은 밤 12시까지는 참새떼보다 훠얼씬 시끄럽게 터지는 웃음소리와 떠드는 소음을 들어줘야 한다.


 남반구의 그들은 스탠딩 파티를 즐긴다.  유치원 학부모 모임 파티에서도 3, 40여 명의 가족을 위해 의자 10여 개 정도 배치할 뿐, 걸으며 이동하는데 쾌적한 공간 확보를 위해서  대부분의 의자들이 한쪽 귀퉁이에 켜켜이 쌓여 올려진다.


그날 겨울 초입의 어스름이 깔린 7시 즈음에 어린 두 서울이들의 수저에 뼈를 발라낸 노르스름한  굴비 조각을 막 올려주는데 새떼같이 목청껏 떠드는 소리들 사이로 별안간 반 옥타브는 높여진 음향이 쨍그렁 대었다. 느낌 상 윗 베란다에서 그 집주인인 4~50대 남자가 아래층인 우리 집을  향해 내지르는 소리인 듯했다. 아이는 없이 부부만 거주하는 듯했다. 

 

아, 영어.... 

그예 현관의 벨이 딩동거렸다. 문 밖의 복도에는 얼굴이 와인빛으로 불콰한 두 남자가 와인잔을 든 채 술내음을 굴비만큼이나 전신으로 독하게 풍기며 서 있었다. 아이 엄마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Im sorry!" 뿐이었고... 


'당신의 이 음식 냄새는 너무 역하니 제발 이 냄새 좀 풍기지 말아 달라. 내 손님들이 너무 괴로워한다.'는 영어는 그날 귀에 쏙쏙 들어와 박혔다. 

.

다음날 난생처음으로 냄새 제거용이라는  스프레이를 샀다, 이웃 아파트에 사는  한국 유학생 부부가 알려준 대로. 자신들은 자주 모임을 갖는데 오징어를 술안주로 굽는 날엔 오징어 냄새가 강해서 복도까지 박하향 스프레이를 진하게 뿌려준다고... 수차례 항의를 경험하고 얻은 시행착오 끝 성공책이란다. 이후 남은 굴비를 버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남편의 격려에 힘입어 아껴서 먹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부엌 창문을 꼭 닫고 스프레이를 허공에 뿌려대며 굴비를 아주 가끔 날을 정해서 구웠다. 아이들의 조그마한 입술 위에 굴비 살을 올려주는 저녁날에는 행여 현관의 벨이 '딩동'할까 봐 마음이 두근거렸다. 덕분에 그때의 굴비는 아주 오래 걸려서 소비했다. 다행히 몇 개월 후에 위층 부부가 이사를 나가서 눈치를 덜 보게 되었지만, 그래도 남의 나라에서 냄새를 피우는 일은 여간 이웃들의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다. 


한참 후에 참석한 지인들 모임에서 어떤 부인은 서울에서 시부모님이 가져오신 재래식 고리고리한 간장을 한밤 중 공터 주차장에서 부르스타에 올려 끓였노라고 했다. 단독주택에 사는 이는 친정부모 방문 때 가져오신 청국장을 끓일 때는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우와, 이곳에서 고린내 작열하는 청국장을 끓여먹다니...


사실 많이 미안했다. 수고스럽게 태평양을 건너서 들고 온 아이 아빠와 그걸 바쁘신 와중에 준비해서 보내신 부모님의 정성이 절절하게 녹아 있어서 말할 수 없이 소중한 굴비지만 어쨌건 냄새가 고리고리했으니까. 특별히 고리고리한 별난 치즈는 창밖 너머 냄새를 날리지는 않으니까 예외로 하고, 커피 향과 토스트 냄새가 주로 인 이웃에게 우리의 생선과 김치찌개 등 음식 냄새가 견디기 어려웠으리라 짐작이 되므로 미안했다. 그렇게 빵이 조금씩 조금씩 서울이네 집안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쌀은 조금씩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서로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상응하는 서로의 배려도... 그걸 깨닫는 데에 시간이 참 많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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