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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원 설거지 자원봉사

로마에선 로마법을 ~**

by Killara Oct 12. 2021
브런치 글 이미지 1

*들장미(Austrian Brian Rose 7.15, 꽃말: 사랑스러움 10.27 꽃말 : 시)(출처: 꽃나무 애기 Band)



해외살이를 시작하고 반년 동안을 집과 구청 도서관을 구경했을 뿐 유아원은 대기만 하다가 드디어 유아원 입학허가를 받았다. 


집 앞에 있는 유아원에 등원하게 된 큰 서울이를 보고 있는 엄마의 마음은 짠하다. 4살짜리가 난데없는 영어속으로 들어가서 얼마나 답답할까 ... 


얼마 안 가서 아침에 엄마랑 함께 유아원 입구에 도착하면 엄마손에서 딸기잼 샌드위치와 주스팩이 들어있는 점심 가방을 빼어가며


'엄마, 오후에 만나요~"

하며 손을 흔들고 혼자 잘 들어간다. 엄마는 '빨리 집으로 가라'며 손등으로 미는 시늉까지...


입구에는 미소가 예쁘고 동작이 큰 선생님이 서서 용기가 사그라들어 금세 머뭇거리는 큰서울이를 향해


"Seoul~ Good Morning? "


말끝을 들어 올려 경쾌한 아침인사와 커다란 동작으로 안아주듯이 서울이를 맞아준다. 엄마의 생에 선생님들과 아침에 춤추듯 출렁거리는 이런 경쾌한 인사를 주고받은 적이 혹여 있었던가?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중에 드디어 엄마의 설거지 자원봉사 차례가 왔다. 이곳은 물이 좀 부족한 편이라 한국과 달리 물을 세게 틀어놓고 흘려버리며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먼저 맑은 물을 약하게 틀어놓고 가볍게 헹군다. 그리고 양쪽 개수대에 물을 받는다. 한쪽에는 거품 세제를 풀어서 퐁퐁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이들 우유를 담아주었던 작은 주전자를 다른 컵케이크 도구들과 함께 퐁퐁수에 담갔다. 영화 속의 거품 목욕처럼 퐁퐁 거품이 주전자 주둥이 밖으로 방울방울 내밀고 나왔다.


아이들이 간식 시간에 나누어 먹은 우유와 작은 컵케익류를 구웠던 오븐용 쟁반들은 싱크대 퐁퐁수와 맑은 물 헹굼탕을 퐁당거리며 두어 번 들어갔다가 옆에 놓인 긴 행주 위에 나란히 예쁘게 엎어놓았다. 보통은 식기세척기를 사용하는데 학부모 자원봉사자들이 있을 때는 물을 사용해서 설거지를 마무리하는 편인가 보다. 퐁퐁수를 지나온 주전자를 단 한 번 물속에 넣어 헹굼하고 마른 행주질로 끝내는 설거지 방식을 옆에서 배우는 초짜인 엄마에게 그곳의 유아 엄마는


"미세스 한국~ 설거지는 이렇게 하는 거예요. 어때요, 어렵지 않지요?" 했다.


엄마의 귀에 영어는 들리는데 설거지 방식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전자 주둥이에 거품이 조금 남아있다.


"여기 주전자 주둥이에 세제 거품이 아직 묻어있는데..., 내일 아침에 여기에 우유를 담을 텐데... 아이들 몸에 해롭지 않을까요?" 하고  물었다.


그녀는 별걱정을 다하는 서울이의 엄마에게


" That's  O.K! 우리나라에서는 부엌 세제를 먹어도 해롭지 않게 만들어요. No Worries!"

라고 했다.


"......."

브런치 글 이미지 2

           *텃밭에 늦게 심은 토마토가 식용으로 크기 전, 장마가 와서 정리하니 관상용이 되었다.



인체에 해롭지 않게 식기세척용 세제를 제조한다는 말을 너무도 자신 있게 하는 그녀에게 서울이의 엄마는 일순 말이 막혔다.


그 당시 외국의 T.V에 비치는 한국 서울의 모습은 명동성당 주변의 머리띠 두른 모습이었다. 농성하고, 최루탄 연기가 치솟는 장면을 반복해서 틀어주며 싸움꾼 'Korea'로 각인되는 수준이다.


명동성당 바닥에 겹겹이 둘러앉은 청년들이 주먹을 쥐고 팔을 위아래로 흔들며 단체 농성을 하는... 발전상을 보여주는 화면은 없고 한국 관련 뉴스의 뒷배경으로는 그저 80년대 초에 찍어둔 화면을 꺼내 든 듯 농성 화면과 군경과 시위대가  쫓고 쫓겨가는 모습만 영구 반복이다. 언론사로서의 성의는 조금도 없이...



일본 사람들은 어딜 가나 일본어로 된 안내문이 있고 일본어를 말하는 직원이 응대하니 백화점 쇼핑도 일어로 다. 일본 사람들에 대한 그네들의 배려는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한국에 대해서는 'Korea는 몰라도 88 올림픽 개막식 때 전 세계에 생중계로 울려 퍼진 사마란치 올림픽 위원장의 "쎄울!'발음 덕분에 'Seoul'은 들어본 적이 있다'는 정도였다.

일본엄마들은 얌전하게 낮은 음성으로 허리를 숙이며 '예예'하는데 낯선 한국에서 왔다는 서울이 엄마는 모난 돌이 되고 있다.


'그럼 우리 아이들이 내일도 덜 씻어져서 행주로 건조한 주전자에 우유를 담아 먹게 되는 건가?'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이미 서울이 엄마의 손은 주전자를 다시 들어서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흘러내리는 물에 요리조리 흔들며 헹구고 있었다.



"미안해요!, 그런데 내 아이가 요즘 열이 나고 아파서 자주 병원을 다니는 중이에요.


"....."


아이들의 우유용 유리컵 65개도 다시 물로 헹구어내서 마른행주 위에 엎었다. 접시와 컵케이크 굽는 용기를 함께 뒤섞어서 버터가 제대로 씻겼을까 걱정되어 아예 다시 설거지를 했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을 잃었다. 이방인인 서울이의 엄마는 이곳 물 사용 문화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실수하고 있는 거다. 서울이의 엄마는 자국 정부의 안전 관리에 대한 국민으로서의 그녀의 신뢰는 부럽지만, 그래도 퐁퐁 세제를 먹어도 해롭지 않게 만든다'까지는 동의할 수 없다.


물을 많이 써서 설거지를 마무리하게 되면서 서울이 엄마는 사실 많이 미안했다. 그래도 주전자 주둥이의 거품을 보고도 못 본척할 순 없다.


"우리나라는 물이 부족한데 설거지에 물을 틀어놓고 사용하면 물 부족이 심화될 거예요. 당신이 우리 물사정을 잘 몰라서 그래요." 했다.


물 사정.... 나는 여기에서 격일제 급수 경험이 아직은 없지만 한국에서는 격일제 급수 경험도 있었다. 심지어 지방에서는 3일제 급수도 있다.


그날 설거지 문화의 차이는 내게 생각을 좀 많이 하게 했다, 자원절약과 정갈함의 중간 지점에 대해서... 그리고 민망한 이방인의 헛발질? 도...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라고 했는데...


그날 이후로 그 나라에 머무는 동안 부엌 설거지를 할 때면 마음 써서 물을 아끼려고 노력했다. 원래의 중간 세기보다 많이 약하게 틀어서 샤워꼭지처럼 사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다행히 다음번 설거지 봉사 때는 식기 세척기에서 건조된 상태의 주전자에 우유를 담아 주었고, 오전 간식시간이 끝나고 설거지를 할 때에도 물로 대강 애벌세척후 식기세척기에 넣어서 돌리는 걸로 바뀌어서 주전자가 뽀송뽀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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