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자차 운전이 일반적이지 않던 1989년 1월 호주를 향할 때 한국에서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들고 갔지만, 정작 경제적 이유로 남편 출퇴근 및 업무에 사용하는 Family Car 1대를 구입하고, 아이들 이동을 위한 2nd Car는 마련하지 못했다.
더구나 I자, T자, S자, 운동장 한 바퀴 돌기등으로 통과한 한국 운전면허증에 기반하여 발급된 국제면허증은 3개월여의 단 기간 동안만 허용될 뿐이어서 호주 운전면허를 다시 취득해야 한다.
다른 이웃들도 전업주부인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 비슷했다. 유아원과 학교는 걸어서 다닐 수 있게 시드니의 주택가 중 교통이 편리한 번화가의 방 2개짜리 아파트를 구했다. 그리고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빠른 걸음으로 부릉부릉 밀고 다녔다.
그렇게 육아 중인 엄마로 시드니에서 1년 여가 지났을 때 동네 우체국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에서 책 소포 박스가 도착했는데 무게가 꽤 나가는데 자동차로 픽업할 수 있냐고.나는 차는 없고, 유모차를 들고 가겠다고 대답했다.
주 2회 유아원에 가는 큰 아이를 3시에 픽업을 하니, 픽업 시간보다 좀 이른 시각인 2시에 만 3살이 된 작은 아이를 유모차에 태웠다. 올 때는 유모차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책들을실어오는 대신 아이는 약 200미터쯤 거리인 집까지 걸어가기로단단히 약속을 하고 함께 소포를 받으러 갔다.
사전 국제전화도 받은 바 없어 서너 권의 단행본 선물로 짐작했던 것과 달리, 남동생이 보내온 책 선물은 아동 전집 시리즈였다. 몹시 무겁겠지만 긴 라면박스 길이이니 일단 유모차 위에 올릴 수는 있어 보였다.
우체국 창구의 남자 직원은 유모차를 밀고 아이와 함께 나타난 아이 엄마의 여권과 집으로 온 편지 봉투에서 집주소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수신자의 사인을 받은 후, 자신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던 창구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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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판을 세우고,자신이 담당하고 있던 창구 문을 닫았다. 내 뒤에 길게 줄 서 있던 사람들은 물론 순서대로 호명을 받아 여러 창구들 앞으로 분산돼 지만, 창구 하나가 눈앞에서 갑자기 줄어들었으니 아이들 픽업 시간 직전에 용무를 보러 들른 사람들의 바쁜 마음이 편치 않았을게다
그리고 우체국에서 세 블록쯤 떨어져 있는 내 아파트가 멀리 눈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아기 유모차로는 족히 10분은 걸리는 내집을향해 나섰다. 젊고 키 큰 남자 직원은 10kg가 넘는 아동문고 50권 전집 소포를 생경한 친절에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네를 앞세우고 한여름 땡볕 아래를 성큼성큼 걸어 아파트 입구를 들어와서 4층에 위치한 우리 집 현관 앞에 내려주었다.
아기 엄마는 시원한 물 한잔 못 건네고 "Thank you~!" 인사만 하는 어리바리한 동양인이 되었다. 중간에 멈출 새도 없이 성큼성큼 걷는 그의 걸음에 맞춰 바쁘게 유모차를 밀고 뒤뚱거린 나는 현관문 앞에서 유모차에 걸린 가방 속의 현관 열쇠를 찾느라 버벅댔다. 얼굴의 땀이 반짝거리는 우체국 직원은 고마움과 미안함이 범벅된 내 인사에 싱긋 웃으며 " My Pleasure~!"로 답하고 바람처럼 돌아갔다.
이런 파격적인 도움들은 호주에 사는 동안 가끔 자잘한 차별들로 느껴지는 일들을 축소시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오래 <백호주의>(백인 선호의 인종차별)로 대변되었던 이 사회에도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아서 사회가 돌아가는 거야, 우리나라에도 구성원들의 성격이 다양하듯 이곳에도 불친절하거나 공격적인 인성이 있는가 하면 다정하고 공감능력이 큰 사람들이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