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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선물

하얀 토끼 까만 토끼

by Killara Sep 30. 2021

            오스트레일리아의 자카렌다 꽃이 피어있는 길 (출처: 다음 블로그)

 


남반구 태평양 연안의 따스한 도시인 시드니의 유아원에서 6개월을 보내고 큰 서울이는 초등학교 유치원부터  3학년까지 다녔다. 작은 서울이도 1년 반을 몸담은 유아반을 마치고 드디어 학교 유치반에 입학하여 1학년까지 다녔던 초등학교는 주변 공립학교에 비해서 규모가 작은 가톨릭 학교이다.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6학년까지 7개 학년이 있고, 그 초등학교 옆에는 같은 가톨릭 재단의 중. 고가 함께  High school 있. 영연방 국가라서 미국의 Elementary school 이 아니라 영국식 호칭인 Primary school로 불리는 초등학교는 한 학년 당 2개 class이고 1개 class의 정원은 30명 정도였다.


당시 서울의 초등학교의 한 학년이 5개~10개 반까지 있던 것과 비교하면 적은 규모이다. 학교 선생님들은 전교생의 이름을 모두 알고 운동장에서 스쳐 지나면서도 일일이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인사를 건넨다. 참 따뜻한 선생님들이었다.


 저학년은 운동장에서 직접 픽업을 하므로 학부모들끼리도 눈인사를 나다. 일 년쯤 드낙거리면 거의 모두 얼굴이 익혀져서 미소 띤 눈인사를 교환한다. 가끔 새초롬한 표정으로 눈인사 접근금지를 날리며 친한 지인과만 호들갑을 나누는 이들은 문화에 관계없이 동서양 어디에나 있지만...


Primary school 1층에 위치한 유치반 교실의 출입문을 열면 곧바로 흙을 디딜 수 있는 놀이 운동장이다.


바람이 선선하던 그날 유치반의 작은 서울이는 픽업 나온 엄마 차에 오르자마자 양볼이 발그레해져서 말했다.


"엄마 엄마, 친구네 토끼가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데요. 다음 주 내 생일에 예쁜 토끼를 선물하고 싶다는데 엄마 생각은요? 괜찮은 거지요? 친구 엄마가 엄마가 허락하시면 그날 학교에 아기 토끼를 데려오신데요."


작은 서울이가 다니던 학교의 유치반에서는 매월 첫날에 아이들만큼이나 밝고 센스 있는 미혼의 여자 담임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그 달의 생일 주인공 이름과 날짜를 칠판에 적는다.


생일날이 되면 간식시간(small lunch)에 작은 축하행사를 했다. 주인공의 부모가 보내온 생일 케이크를 책상 위에 얹고 반 친구들이 축하노래를 부른 뒤 그날의 주인공이 케이크 커팅 후 친구들에게 차례로 케이크 조각을 티슈와 함께 나누어 준 뒤에 함께 재잘대며 즐거운 간식시간을 갖는다.


물론 진짜 생일파티는 주말에 고소한 감자칩이 일품인 어린이 세트 메뉴가 있는 맥도널드의 생일파티장이나, 다소 가격이 센 피자헛 생일파티장으로 반 친구들을 모두 초대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주일 전쯤 미리 초대 카드를 건네고 초대장을 받았던  아이들이  다시 참가 여부를 표시한 답신 카드를 건네면, 그 숫자에 맞춰 패스트푸드점에 예약을 하면 된다. 그리고 생일 주인공은 친구들이 행사가 끝나고 돌아갈 때 줄 자그마한 사탕. 초콜릿, 스티커, 연필 한 자루 등이 들어있는 선물 봉투들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파티가 끝나고 헤어지는 시간에 한 사람씩 답례를 한다.  즉 선물을 들고 간 아이들이 잘 먹고 놀다가 돌아올 때 작은 답례품을 받아오는  방식이다.


가끔 공간이 넉넉한 여유로운 가정에서는 당시  집으로 피에로 옷을 입은 행사 진행자를 불러서 기다란 풍선으로 각종 동물 모양을 만들어주고 재미있게 행사를 진행하며 행여 소외되는 아이가 없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그 진행자의 기발하고 즐거운 게임에  아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기도 한다.  음식은 한국의 아이들 생일파티 음식이 푸짐하고 맛있다. 시드니 가정에서의 생일파티 음식은 다소 간단하다.


주로  다양한 소시지를 직접 바비큐로 구워 감자 칩 등 스낵과 함께 제공된다. 먹성 좋은 우량  한국 남자아이들은 생일파티에서 돌아오는즉시 밥을 잔뜩 챙겨 먹는다 우스갯소리도 돌아다녔다.


기대를 잔뜩 품고 선물을 챙겨 기다렸던 친구네 생일파티에 다녀와서 허기진 표정으로 다시 집밥을 챙겨 먹는 개구쟁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보통 가정에서는 잘 주지 않는 울긋불긋 색상이 있는 사이다, 환타, 콜라 등의 음료수도 그날만큼은 무제한으로 제공되니 탄산수도 마음껏 마셨을 테고.


 반면 한국 가정에서는 아마도 주인공의 엄마가 전날 밤 거의 밤을 새워 만들었을 김밥, 잡채, 불고기, 닭튀김, 야채샐러드, 떡 등이 화려하게 준비된다.


이렇게 부모의 정성과 친구의 축하가 이 세상에서 오롯이 자신에게만 향하는 생일날은 일 년 중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기쁜 날이다.


친구들로부터 받은 동화책, 인형, 장난감, 문방구용품 등의 선물들이 침대 위에 주욱 놓이고, 종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고, 하기 싫은 공부나 악기 연습 따위는 그날만큼은 건너뛰고 TV와 만화책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축일인 생일.


유아원 가기 전부터 동물을 좋아한 작은 아이는 친구가 건네주기로 한 토끼를 행여 엄마가


 "안돼(No!)"


할까 봐 걱정이 한가득이다. 엄마가 저녁에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작은 아이는 아래층이 울리지 않게  허리에 손을 얹고 평소보다 더 조용한 까치발로 걷고, 잠들기 전 샤워를 혼자 하고,  잠들기 전 잠옷을 갈아입은 후 평상복은 아주 단정하게 개어서 욕실빨래바구니에 가져다 넣는 등 특별히 더  착한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등교하자마자 딸아이는  교실 바로  앞  운동장에서  마주친 친구에게 기쁨이 가득한 목소리로 엄마의 허락을 전했다.


아이 생일날 하교시간에 한눈에 다 들어오는 작은 운동장의 1층 교실 앞 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이 에워싸고 모여 뭔가에 열중하고 있다. 궁금하여 아이들 너머로 들여다보니


(출처: 작가 jcomp 출처 Freepik)



'오~! '

박스 안에 들어있는 아기 토끼 두 마리가 스쿨 킨더(학교 유치반) 아이들의 정신을 팔리게 한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키가 큰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딸아이의 친구 엄마라고 했다. 처음 보는 사이지만 아이들이 친구라니 금세 웃음 띈 얼굴로 눈 맞춤을 하며 소통이 되었다.

 

"네덜란드 미니 토끼예요. 혹시 토끼가 싫으시다면 다시 데려갈 수 있어요. 내 아이가 친구인 서울이가 토끼를 좋아하고, 서울이 엄마가 허락하셨다고 전해 들어서 우리 가족이 생일선물로 아기 토끼를 데려왔어요."


 아마도 토끼를 마주한 순간 당황한 서울이 엄마 얼굴을 보고 있었나 보다.


토끼가 들어있는 박스 앞에서 간절한 눈빛으로 엄마를 쳐다보는 작은 서울이 와 눈을 마주치며, 엄마는


"고마워요, 작은서울이가 워낙 동물들을 좋아해요. 잘 키울게요."


대답하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작은 서울이의 담임선생님도 '작은 서울이의 오늘 생일을 축하한다'며 교실 앞의 마당에 서있는 나뭇잎을 작은 서울이의 손바닥 위로 건네주었다. 나뭇잎 위에는 까만 점박이 오렌지 빛 어린 무당벌레가 엎드려 있었다.


6살 작은 서울이의 새끼손톱 절반 크기쯤 되나 보다. 교실에서 곤충들을 관찰하는 시간이면 작은 서울이의 눈이 반짝거리며 질문이 이어진다며 선생님은 작은 서울이의 동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엄마에게 전했다. 작은 서울이는 무당벌레가 엎드린 이파리를 손바닥에 올리고 친구들과 들여다보며 오렌지 빛 무당벌레 등에 있는 까만 점을 세었다.


무당벌레가 날개를 펼치며 날아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다시 나뭇잎은 무당벌레와 함께 선생님의 손에 의해 안전하게 나무 위에 얹어졌다. 그날은 마지막 아이까지 차례대로 작은 서울이가 생일선물로 받은 까만 토끼와 하얀 토끼를 픽업 온 자신의 엄마에게 보여주고 떠난 뒤에야 토끼를 데려온 친구네가 떠나고, 모든 아이들의 보호자와의 안전한 귀가를 확인한 담임 선생님과 작은 서울이네는 토끼와 함께 마지막으로 운동장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작은 서울이는 상자 속의 토끼만 바라보며 아기 토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운전하는 엄마에게 생중계했다. 돌아오는 길에 학교 근처 쇼핑센터의 반려동물 용품점에 들러서 작은 서울이가 직접  예쁜 토끼들의 먹이와 모래가 든 배변 상자를 선택했다.


그렇게 흰 토끼와 까만 토끼는 서울이네 가족이 되었다.  엄마의 초등학교 때 학교 숙직실 옆에서 토끼장에 살던 토끼에게 배춧잎을 넣어주던 기억이 전부인 형편에 엄마 눈에도 갑자기 맞이한 토끼들은 아주 귀엽고 활발했다.


들에게 토끼장이 필요할 지에 대한 생각도 못하고 서울이네는 두 마리의 아기 토끼를 아파트의 발코니에 내어놓았다.  그곳에  쌓여있던 벽돌 틈 사이를 넘나들며 토끼들은 숨바꼭질 놀이를 했다. 발코니의 키 큰 화분도 토끼의 놀이터가 되었다.


아기 토끼들은 날렵하게 달려 다녔다. 교육이라도 받은 양 모래 상자 위에 까만 알약처럼 동글동글하게 배변을 놓아두곤 했다. 뜻밖에도 그 자그마한 토끼의 소변 지린내는 만만하지 않았지만, 오픈 발코니여서 발산이 잘 되었다. 더구나 기역자로 굽어져 있는 오픈 발코니는 토끼들이 뛰어놀 공간으로 넉넉해 보였다.


토끼들이 발코니의 벽돌아래에 잠자리를 정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으로 그날의 집안일들이 겨우 마무리되었다, 샤워를 마친 두 서울이 들은 침대 속에 몸을 뉘었다.


엄마의 하루 마무리 일과인 아이들 침대 옆에서 책 읽어주기 시간이다. 아이들이 선택한 토끼 동화책을 펼쳐 든 엄마에게  6살의 작은 서울이는 눈을 반짝거리며 "엄마, 내 친구 집에서 이번에 태어난 아기 토끼 네 마리 중 우리 토끼가 제일 예쁜 토끼래요. 둘 다 수컷이래요." 했다.


아기 토끼 두 마리의 등장에 집안 공기도 덩달아 부산해졌다. 큰서울이도 발코니의 토끼를 뒤따라 다니며 즐거웠던 까닭에 잠잘 시간인데도 눈이 초롱초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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