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지긋지긋하다
개인의 의지와 선택의 결과라고 하기에는 억울하고,
시대 탓이라고만 하기에는 그 선택에 책임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어찌 되었던
죽일 놈의 나라, 죽일 놈의 제도, 죽일 놈의 사회, 죽일 놈의 돈,
그중 가장 사악한 죽일 놈의 운이다.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은
일제 강점기, 망국의 나라에서 더 이상 붙잡을 것이 없는 조선의 사람들이
조금은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무지한 희망 하나로 낯선 땅 멕시코로 떠나
그곳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다룬 책이다.
그 애매한 기대의 결과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조국의 무능함과 방관으로
이들은 낯설고 척박한 이국 땅에서 학대와 갈취 속에
살아남거나 죽어갔다.
삶과 죽음은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그저 그들은 조선인이기 때문에 살거나 죽었다
여전히 살아남은 이들은 또 한 번 그들이 기대고 있는 낯선 땅의 제도와 전쟁 속에
죽거나 살아남았다.
현명한 선택과 어리석은 선택은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알 수 없는 우연과 시간에 맞물려
불행과 더 큰 불행으로 그들을 데려갔을 뿐이다.
시대가 만든 비극과 개인이 극복하지 못한 비극이 맞물려
끊임없는 비극으로 사람을 망가뜨리는 소설의 내용은 처참하다
무당, 성직자, 좀도둑, 내시, 왕족, 고아, 농부, 퇴역군인, 일본 요리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혹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장면들을 보며
타인의 비극이 마치 나의 비극인 듯 깊은 몰입감으로 집중하게 만드는 건 작가의 역량이다.
거시적인 국가의 역사가 미시적인 개인의 삶으로 세세하게 설명될 때
비로소 그 역사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