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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서평] 검은 꽃

by 이숲
검은 꽃.jpg



삶은 지긋지긋하다

개인의 의지와 선택의 결과라고 하기에는 억울하고,

시대 탓이라고만 하기에는 그 선택에 책임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어찌 되었던

죽일 놈의 나라, 죽일 놈의 제도, 죽일 놈의 사회, 죽일 놈의 돈,

그중 가장 사악한 죽일 놈의 운이다.


애니깽.jpg 출처: 한국일보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은

일제 강점기, 망국의 나라에서 더 이상 붙잡을 것이 없는 조선의 사람들이

조금은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무지한 희망 하나로 낯선 땅 멕시코로 떠나

그곳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다룬 책이다.

그 애매한 기대의 결과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조국의 무능함과 방관으로

이들은 낯설고 척박한 이국 땅에서 학대와 갈취 속에

살아남거나 죽어갔다.

삶과 죽음은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그저 그들은 조선인이기 때문에 살거나 죽었다

여전히 살아남은 이들은 또 한 번 그들이 기대고 있는 낯선 땅의 제도와 전쟁 속에

죽거나 살아남았다.

현명한 선택과 어리석은 선택은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알 수 없는 우연과 시간에 맞물려

불행과 더 큰 불행으로 그들을 데려갔을 뿐이다.

시대가 만든 비극과 개인이 극복하지 못한 비극이 맞물려

끊임없는 비극으로 사람을 망가뜨리는 소설의 내용은 처참하다



구한말.jpg 출처 : 눈빛출판사

무당, 성직자, 좀도둑, 내시, 왕족, 고아, 농부, 퇴역군인, 일본 요리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혹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장면들을 보며

타인의 비극이 마치 나의 비극인 듯 깊은 몰입감으로 집중하게 만드는 건 작가의 역량이다.


조선.jpg 출처 : 이코노미스트


거시적인 국가의 역사가 미시적인 개인의 삶으로 세세하게 설명될 때

비로소 그 역사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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