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다가온 전단지를 손에 든 노인이 나에게 이거 하나 받아주라 이모, 라고 한다. 날씨는 무덥고 볕은 뜨거웠기에 전단지를 받아 들긴 했지만 기분이 묘하다.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지명할 일이 많지 않기에 학생, 아가씨에서 이제 이모로 호칭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신호가 바뀐 횡단보도를 걸으며, 언젠가 길에서 누군가 아줌마라고 부르면 자연스럽게 돌아보는 날이 오는 걸까 생각한다. 보통 아이가 있다면 아이의 친구들이 아줌마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 호칭이 익숙해지고 스스로도 아줌마라 칭하게 되기도 한다고 하는데 나는 고양이밖에 없으니. 고양이는 당연하게도 야옹-이라고밖에 나를 부르지 않고 집으로 친구를 데려오지도 않는다. 데리고 온다 해도 내 고양이의 친구 역시 나를 야옹-이라고 부를 것이다.
거리를 걸으며 쇼윈도에 비친 얼굴을 문득 마주하면 무엇으로 불리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완연한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에게 이모라고 칭한 노인을 다시금 떠올리며 그 어색한 호칭을 곱씹어본다. -친구들의 아이에게는 나 스스로 이모라고 칭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 노인의 이모는 아니기에-
해가 바뀔 때마다 그 나이는 처음 겪는 것이니 아마도 끝내 자신의 나이에 익숙해지지 못할 것 같다. 매일 조금씩 바스락바스락 낡아가는 육신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