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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윤 Jan 11. 2021

10. 소개팅 경험담1

소개팅 하수에게 하수가10


  17번의 소개팅과 선 끝에 운명처럼 만난 그녀. 그녀가 있었기에 겨울이 춥지 않았습니다. 나의 마음에 피지 않을 겨울꽃을 피워준 그녀-희와의 이야기입니다.


직장 동료이자 대학 동기인 택


  새하얀 눈이 온 고을을 물들이고 가을에 물들었던 단풍이 스르르 자리를 비켜주던 때. 내리는 눈의 찬 기운만큼 내 마음의 텅 빈 공간도 시리도록 차갑게 채워지던 때였습니다. ‘올 겨울도 혼자인가?’ 혼자 되뇌이며 지나가던 군중을 그저 부럽게 바라보기만 하던 때 직장에 같이 근무하던 대학 동기 이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며 말했습니다.


  “야. 이번 겨울은 따뜻하게 보내봐라.”


  택의 말에 나는 차갑게 굳어지던 마음에 꺼진 줄 알았던 불씨가 재차 타들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스무 번 가까이 겪어왔던 나의 경험이 ‘이건 소개팅이다.’라고 외치며 따르릉 종을 울려댔습니다. 흐리멍텅 했던 눈에 초점이 잡히며 택을 재촉하자 택이 이야기했습니다.


  “내 아내의 친구고 대학 동기다. 거기랑 이미 이야기돼서 만나 본다고 했으니까 한 번 만나봐라.”


  이미 이야기까지 다 되었다니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이 어디 있을까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이도 맞고 동종 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택 아내의 친구니 대화 소재도 충분하다고 여겼습니다. 무엇보다 택이 자기가 직접 만나 봤다고 사람 괜찮다고 보증한 것이 나를 더욱 설레게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엔 부담이 자리 잡았습니다. 택 아내의 친구라는 것은 내가 소개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부부 모두에게 안 좋은 결과로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의 부담이 적었던 소개팅들과 다르게 이번은 정말 ‘잘하지 않으면 큰일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 소개팅을 분석하며 그녀를 만나다.


  그렇게 택은 전화번호를 넘겨준 채 퇴근해버렸고 집에 돌아가는 길 나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엔 정말 잘해야 할 텐데...'에서 시작된 많은 고민들 말이죠. 그러면서 이전의 소개팅들을 계속 분석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식으로 연락을 하는 게 좀 더 반응이 좋았는지, 어떤 옷으로 입는 게 좋았는지 등을 계속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전의 소개팅 상대들이 호감을 보였던 부분들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지인들과의 대화도 다시 한 번 되새겼습니다. 그러자 제 나름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연애 경험도 많지 않고 쑥맥에 남들보다 내세울 게 많지 않던 저에겐 아주 중요한 작업이었지요. 단 하나의 장점은 나름 소개팅 경험이 많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때의 분석과 정리가 이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니었다면 시작조차 못 했을텐데 말이죠.


  그렇게 제 나름의 길에 따라 시작한 소개팅은 나름 무난하게 잘 전개가 되었습니다. 연락도 무난하게 잘 주고 받았으며 약속 시간과 장소도 잘 잡았고 옷도 나를 돋보일 수 있게 잘 갖추어 입고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직접 만난, 지금은 나와 결혼을 앞둔 그녀-는 택이 보장한 것처럼 매력이 넘치고 다정다감한 성품을 지녔고 대화도 잘 주고 받아주는 웃음이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사실 만나기 전부터 상당한 호감이 들었었습니다. 짧게 대화를 주고받는 중에도 그 사람의 인품과 매력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만나 더 호감이 든 저는 ‘첫 만남에서 너무 오바를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해놓곤 그녀를 더 즐겁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너무 많은 농담들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자리 자체는 굉장히 많은 웃음꽃이 피었으나, 그 후 그녀는 택 아내를 통해 제가 혹시 가벼운 사람은 아닌지 물어봤다고 합니다. 다행히 택이 좋게 잘 말해주어서 만남이 이어질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찔했습니다. 저는 그저 그 만남이 좋게만 끝난 줄 알았는데 말이죠. 주선자의 역할이 크다는 사실을 이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사전과 당일에 나름의 호감을 많이 쌓았을 뿐 아니라, 그녀와 나는 공통 관심사도 많고 성격과 취향도 비슷했기에 만남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이전의 소개팅 경험을 반면사례 삼아 더욱 더 심혈을 기울였지요. 초밥도 먹고 영화관도 가고, 별빛축제도 함께 하며 보낸 즐거운 시간들... 그리 하여 눈이 오던 1월. 만난 지 1주일 만에 우리는 연인이 되었습니다. 눈이 내리던 겨울, 피지 않을 것 같던 겨울꽃이 마음속에서 고이 피어난 것이지요.


  그렇게 운명처럼 겨울에 나타난 겨울을 품은 그녀, 희 덕에 지금은 새로운 겨울을 맞고 있습니다. 그저 춥기만 했던 겨울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녀를 만났기 덕분입니다. 또한 저를 스쳐 갔던 스무 번에 가까웠던 여인들 덕분이기도 하지요.


모두가 좋은 인연을 만나길 빌며


  소개팅은 분명 어렵습니다. 고수들이나 빠르게 인연을 만난 사람들과 달리, 하수들과 뒤늦게 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은 더욱더 소개팅이 힘들기만 합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좌절을 겪고 ‘나는 왜 안 되지?’라는 많은 자책도 하게 되지요. 때론 ‘혼자 살 준비를 해야겠다.’라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하며 포기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분명 그 과정에서도 '배우고 깨닫는 것은 있고 인연은 분명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뭐라도 된 듯 글을 쓴 저도 여전히 소개팅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추운 겨울, 누군가의 마음에 겨울꽃이 피어나길 바라며 저의 글 같지 않은 경험담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길 바라며 펜을 듭니다. 모두가 좋은 인연을 만나길 빕니다.


다음 주제-11. 주선자와 함께하는 소개팅
주의-필자의 말은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하며 정답이 아니니 유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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