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수 : 스님, 저는 숲길을 자주 걷습니다. 숲길을 걸으면 숨소리가 낮아지고 차분해집니다.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벌레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 분주함이 멈추게 되는 것 같아요. 가슴에 무엇인가 터져 나올 것 같은 것들이 자지러지며 차분해 진다고 할까요? 또한 봄에 산길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을 보면 느낌이 다릅니다. 흙이 봄기운에 풀어질 때쯤 어린 나뭇가지를 자세히 봅니다. 나뭇가지가 햇살을 쫓아 뒤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작은 생명 하나와 절묘한 인연을 생각합니다.
비탈진 언덕에 피는 꽃들은 항상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피고 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까이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꽃들도 있습니다.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그들과 마주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숲길을 걸을 땐 겸손해야 합니다. 오늘도 낮은 마음으로 그 편한 숲길을 걸으면서 본능적으로 새소리를 찾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이 시대가 요구하는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에 대해 공감합니다. 또한 심리학에서는 ‘리프레이밍Reframing’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틀을 바꾸어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틀을 새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면서 균형감을 잃지 않고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이지요. 숲길을 걷다 보면, 부정적인 것들이 풀리거나 격한 감정이 자지러진다는 것은 ‘리프레이밍을 하고 있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 스님 : 세상은 자신이 품고 있는 그대로의 세계입니다. “내가 슬프면 슬픈 세상입니다. 내가 행복하면 세상은 행복해 보입니다.”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행복해지는 길로 가면 됩니다. 탐욕貪과 성냄瞋과 어리석음痴이라는 삼독三毒을 제거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불교의 진리가 바로 삼독 입니다. 삼독은 마음을 중독 시키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1859∼1941)은 행복의 개념을 모호하게 정의해 나름의 해석으로 생각할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행복은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수행자는 수행을 통해 고통을 극복해야만 행복해집니다. 마음과 행동이 올바르게 서 있어야 합니다.
철학자 ‘에픽테토’Epiktetos 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나 사건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이 불안의 원인이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헬렌 켈러는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 하나가 열린다.”라고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음과 양의 조화가 삶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돌아섰더니 어느새 묵직한 무언가가 자리를 잡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욕망이 있기에 살아갑니다. 욕망이 없으면 그 삶은 죽음입니다. 창조하려면 욕망이 꿈틀거려야 합니다. 다만 욕망을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행복의 비율이 달라질 거라고 확신합니다. 수행자가 아닌 이상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생명입니다. 선한 욕망이 나를 창조합니다. 그러나 욕망이 경계에 부딪힐 때는 반드시 기본으로 돌아가 바라보아야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