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가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천지가 축제이고 산하가 시와 산문으로 뒤덮여 있다.” 인쇄소에서는 오래됐으나 낡지 않는 기계들이 글을 쏟아내고 있다. 이곳(전남 장흥) 사람들은 언젠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것이다라고 예견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2016년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한 이후로 매년 10월 노벨문학상 발표 시기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한강의 아버지(한승원 소설가)가 계신 “해산토굴” 주변으로 방송국 차량이 주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수상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2022년 7월에 《작별하지 않는다》를 포스팅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이 소설이 급부상되고 있어 포스팅을 간략하게 옮겨온다.
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소설, 지극한 사랑 소설, 또는 제주 4.3 사건을 그린 소설이라고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쉽게 지극한 사랑이라고 동의하기란 쉽지 않다. 경하는 친구 인선이라는 가족이 겪은 제주 4.3 사건을 더듬게 된다. 인선의 어머니가 겪은 학살의 이야기. 4.3을 겪은 사람들의 구술과 각종 보도 자료를 수집하고 어머니가 직접 보았던 모든 것에 당혹함과 참혹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비록 인선의 어머니와 그의 외갓집과 아버지의 전력만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계획하는 인선. 그것을 바라보고 모아둔 자료만으로도 작가는 역사의 내상을 입는다.
「아무리 아파도 새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횃대에 앉아 있대. 포식자들에게 표적 되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견디는 거야. 그러다 횃대에서 떨어지면 이미 늦은 거래.」
(P 112)
「자수하면 처벌하지 않겠다는 전단을 미군 정찰기가 눈보라처럼 뿌린 날에도 이모가 귓속말로 엄마에게 말했데. 전단을 읽고 오빠가 자수할지도 모른다고. 체구가 작아 제 나이로 안 보이니까 내려오다 총을 맞진 않을 거라고. 형제들 중에 제일 눈치가 빠르고 넉살이 좋으니까. 감쪽같이 어리숙한 척을 해서 의심도 안 받을 거라고.」 (p262)
덮어지고 숨겨진 역사들이 들추어져 우리 앞에 다가올 때마다 그 시대를 살아온 분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사실이었고 그들은 그 시대를 숙명처럼 체험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책을 ‘2014년 6월에 두 페이지를 쓰고 2018년 세밑에야 그다음을 이어 쓰기 시작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과 작가의 삶이 묶여 있던 시간을 칠 년이라고 해야 할지 삼 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작가가 참고한 자료를 기록해 놓았다. 넘치는 자료다.
한강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해 4.3을 다루면서도 지극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께서는 학살 이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생존자의 길고 고요한 투쟁의 서사가 있다.라고 말한다. 공간적으로는 제주에서 경산에 이르고, 시간적으로는 반세기를 넘긴다. 폭력에 훼손되고 공포에 짓눌려도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다. 작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딸의 눈과 입을 통해 전해진다. 폭력은 육체의 절멸을 기도하지만, 기억은 육체 없이 영원하다. 죽은 이를 살려낼 수는 없지만 죽음을 계속 살아 있게 할 수는 있다. 작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