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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기업 가치평가의 사생아, 저작권-2

by 양벼락 Mar 12. 2024
저작권, 그 '출생'의 비밀.
그렇다면 왜 저작권은 특허청에서 관리해주지 않을까?

법적으로 설명해보면, 저작권과 산업재산권은 권리 발생의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야. 저작권은 '출생'했냐 안 했냐가 중요해. 그러니까 저작권은 창작이 완료되는, '출생 시점'에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권리라는 거야. 그렇지만 산업재산권은 먼저 누가 먼저 출생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누가 먼저 특허청에 '출원'했는지가 관건이거든. 이거를 선출원주의라고 불러. (모든 심사가 완료되어 등록되는 시점과 상관없이 출원하는 시점이 중요한 거야.)


그런데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면 저작권과 산업재산권은 그 권리의 보호 목적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아. 예를 들어 대표적인 산업재산권 중 하나인 특허를 다루는 특허법이 '산업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면(특허법 제1조), 저작권을 다루는 저작권법은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저작권법 제1조). 문화 및 관련 '산업'이라고 돼 있긴 한데, 사실 문화 발전이 기초가 돼야 문화 관련 산업도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화'라고 간략하게 생각하고 이야기를 더 풀어볼게. 그러니까, 산업재산권은 그 권리가 내포하고 있는 내용이 기술적으로 희소하고 특별해야 등록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수를 관리해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만 저작권의 경우에는 많으면 많을 수록 문화 발전에 좋기 때문에 '아무 걱정 말고 열심히 출생(?)하세요!'라면서 국가에서 개입을 최소화 하는 거야. 생각해 봐, 특허청에 출원한 저작물만 그 권리를 인정 받을 수 있다면 누가 그 저작물을 자유롭게 만들고 더 나아가 사람들에게 '나 이거 만들었어요!'하고 공유하겠어?


그래도 우리에겐 저작권등록제도가 있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제112조에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설립 등을 명시하면서 위원회의 첫 번째 업무로 '저작권 등록에 관한 업무'를 적어 놨어.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우리 예술 기업들의 사업 운영의 기초가 되는 저작권에 대해서 '등록'해줌으로써 '인증'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거라구! 어느 집 자식인지 증명할 길이 멀어서 늘 '출생의 비밀'을 안고 호적 없이 살던 나의 저작물이라는 아이가 내 호적에 올라온 것 같은 효과를 얻는 거야. 그래서 저작권등록을 해 놓으면 라이센싱 계약을 맺거나 투자유치 등을 진행할 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해. 어때? 저작권법에서 규정해 놓은 위원회에 등록된 저작권이라면 예술기업의 가치평가 기준으로서 그 자격이 충분한 것 같지 않아? (조금 더 나아가서 경제적 이익을 발생시키고 있는 저작권을 예술기업의 가치평가 기준으로 삼아준다면 예술기업들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위원회는 법인으로서 '민법'의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는 점에서 '공공기관'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특허청과 같은 국가기관, 더 정확히는 행정부가 아니라는 점은 한 번 더 적고 가야겠다. 특허청에 출원(혹은 등록)된 특허랑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등록된 저작권은 약간 신분 차이가 있게 느껴지는 건 이런 이유겠지? 그래도 저작권 등록을 하면 아래 표와 같은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고 해외 저작권 등록/출원 지원 시스템에서는 말하니까 참고할 수 있게 첨부해 둘게.


아 참, 사실 나는 2022년에 참여한 인터뷰에서 '저작권은 창작이 완료되는 시점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권리이고 저작권 침해가 일어나는 경우 법적으로 입증할 수만 있다면 저작권을 등록했는지 여부는 중요해지지 않는데 저작권등록제도가 가진 법적 실효성에 대해서 검토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거는 쓰다 보면 너무 길어질 것이기 때문에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써볼게!


문화가 산업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우리 지금까지 열심히 이야기 한 것을 정리해보자. 저작권은 '문화 및 관련 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다는 목적을 가진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기 때문에 국가의 관리가 최소화되고 있어. 이 영역을 저작권등록제도가 메워주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 예술기업의 가치평가 부문에서는 저작권을 잘 활용하고 있는지, 좋은 저작권을 갖고 있는지 여부는 고려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 모든 것이 '관련'이라는 단어 때문은 아닐까? 문화 산업이라고 말 못하고 '관련 산업'으로 펑퍼짐하게 표현해야 하는 데에는 '문화'를 정의하기가 어려워서, 저작권이 개입돼 있는 산업이 너무 많아서, 문화도 진흥시키면서 문화 산업도 동시에 진흥해야 하니까 등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 그래도 문화 산업을 기술 산업과 동등한 '산업'으로 바라봐주고 법에서부터 '문화 산업'이라고 성문화 해준다면 저작권도 '신지식재산권'이라는 이상한 분류를 새로 만들지 않고도 저작재산권으로서 산업재산권과 유사한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안 그래도 한류다 뭐다 우리 문화가 여러 사람 밥 먹여주는 시대가 되었는데 말이야. (이쯤에서 외쳐! 갓김구!)


아주 거국적이고 진보적이고 예술적인 차원에서 '문화 및 관련 산업'을 '문화 및 문화 산업'으로 바꿔주시는 것을 입법 권한이 있으신 분들께서 고민해줬으면 좋겠다. 


'저작권'도 재산권으로 인정해주세요.

중소기업벤처부까지 갈 필요도 없어. 문화체육관광부부터 저작권의 경제적 가치를 더 부각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야. 나라에서 산업을 장려해주는 방법 중에 하나가 국고보조금이지. 그 국고보조금을 수령할 기업을 선발할 때 나라는 기업에게 많은 것을 물어봐. '너 매출은 얼마니? 직원은 몇 명이니? 이 돈으로 뭐 할 거니?' 그 질문 중에 하나가 위에서도 침 튀기면서 언급했던 '지식재산권 보유 여부'야. 근데 어느 기관에서 낸 지원사업 공고문의 캡처 이미지 좀 봐줄래?

분명히 '지식재산권' 있으면 내놔 보라고 말해 놓고, 상표, 서비스표등록증을 제외한대. 응, 맞아. '기술력'만 평가하기 위해서 상표랑 상표 친구 이름 뺄 수 있지. 그런데 뺄 거면 저작권도 같이 빼주면 좋았을텐데... 왜 저작권은 빼주지도 않고 그냥 열외시켰을까. 이럴 거면 지식재산권이라고 말하지 말고 산업재산권이라고 정확하게 표기해주면 좋겠어. 그럼 나 같은 저작권쟁이들이 김칫국 안 마시거든. 우리 저작권이가 다른 기관에서 이런 사생아 취급을 받는다는 거, 문체부 형님들은 알까?


이 참에, 우리 형님들이 나서서 저작권도 지식재산권 보유 여부의 한 선택지로 만들어주면 어떨까? 출생만 하면 권리가 부여되는 자연권이라서 평가 기준으로 삼기 어렵다고? 아니 형님들이 이미 잘 만들어놓은 한국저작권위원회 저작권등록제도부터 활용할 수 있잖아. 그러면 위원회 삼촌들 위상도 높아지고 형님들도 기왕에 만들어 놓은 제도도 더 활성화 시킬 수 있을 거구, 우리 같은 문화 베이비들도 신나구! 이게 바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겠어?


민율 - 나무의자

덕업일치 Issue No.2의 커버로 선보인 작품은 민율의 <나무의자>이다. 작가의 개인전 및 단체전을 열심히 찾아다녔던 나는 어느 날 작가와 직접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었고 작가는 "제 그림을 보고 어떤 사람은 외로움을, 어떤 사람은 평온함을, 어떤 사람은 맨 꼭대기에 앉는 욕망을, 모두 다른 것을 봐요."라고 말했다. 나는 당시에 외로움을 보았던 것 같다. 이번 칼럼을 적으면서 저작권의 외로움을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찾았고 이 작품을 택한 경위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 작가의 작업노트를 다시 읽으며, 저작권에게 이 작품이 위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은 위태로워 보이고 쓸쓸해 보이는 곳이지만 당신과 떠도는 공기만 있는 그곳에서 그때그때의 하늘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바람과 함께 천천히 흔들려보기를 바란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어도 좋다. 그것이 언제 어디서든지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되어 외로운 당신에게 작은 위로가 될 것이다."


작가 노트 - 나무의자, 90.9x72.7cm, 2020

낯선 바람, 천천히 지나가는 구름

잠깐의 가랑비, 거친 소나기

잎이 내는 파도소리, 살짝 찡그리고 보는 햇빛

혼자 떠있는 별, 무심히 지나가는 새

코 끝 빨개지는 찬 공기, 반짝거리는 어린 잎

외롭지 않은 고요함, 파랗지만은 않은 하늘.

그리고 기분 좋은 현기증.

그때의 하늘과 함께 천천히 흔들리는 나무 끝 작은 의자 위에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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