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버텨내기 버거웠던 신규 교사 때, 친구가 전화기 너머로 솔깃한 말을 건네 온다.
“내가 매일 아침 뭐라고 주문 외우는 줄 알아?”
“뭔데?”
“ 내 직업은 하녀다... 어? 하녀 치고는 대우가 좋네?, 하녀인데 밥도 주네?, 하녀인데 생각보단 월급이 많네?.... 이러다 보면 직업 만족도가 높아져... 너도 한 번 해봐~”
까르르 웃어넘긴 다소 자조 섞인 대화였지만, 그 말은 그 날부터 긍정적인 힘을 불어왔다. 출근길 버스를 내리고, 학교 정문으로 도착하기까지 5분 정도의 긴장 어린 총총 발걸음... 정문에 다가서기 50미터 전쯤 맘 속으로 크게 외쳐본다.
“내 직업은 하녀다.”
그러고 나면 괜스레 일탈이라도 한 냥, 알 수 없는 묘한 자신감으로 힘차게 하루를 시작했다. 그 말은, ‘다들 힘들게 버티는구나’ 하는 동병상련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그 날 하루의 기대치를 낮춤으로써 상대적으로 행복감을 불러왔던 것 같다.
SNS를 보다가 누군가 “내 직업은 공주다”로 올린 네 컷 만화를 본 적 있다. 그 만화는 직장에서 일한다고 생각하는 대신 주인공 자신이 공주의 신분이지만 부하들(실제로는 직장동료 또는 상사)이 업무로 귀찮게 한다고 상상하며 일하면 견딜만하다는 내용이었다. 뭔가를 상상하면서 일하는 것은, 비록 신체는 직장에서 수동적으로 일하고 있을지라도 정신적으로 상상의 자유를 느끼는 일탈 감을 불어 일으키며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머릿속 상상은 자유니깐 말이다.
물론,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은 난 더 이상 그 주문을 외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나 힘들 때, 맘 속으로 외치는 내적 메아리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힘내자, 오늘도 좋은 일만 있을 거야.”라고 허망한 긍정의 힘을 믿는 것보단 때론 기대치를 한껏 낮춰보는 편이 버틸 힘을 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