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닥 안 남은 머리칼을 60도로 빗어넘기고 다니던, 어깨 높이가 나와 엇비슷했던 교장선생님. 고개가 빳빳하다 못해 하늘을 쳐다보는 듯한 시선 처리로 꼿꼿한 걸음걸이를 고집하시던 분이셨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붉은빛 저녁이었다. 며칠 전부터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던 일정이 잡힌 날이다. 바로 ‘회식’하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기어코 교장선생님은 나와 맞은편에 앉으셨다. 고기 굽는 막내 자리의 맞은편이 상석이라 여겼나 보다. 부연 연기를 들이마셔가며 삼겹살을 뒤집고 있는 나의 바쁜 손가락을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손가락을 더 오버스럽고 바쁘게 움직여보았다. 고기 굽는 움직임이 최대한 능숙하고 현란하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감이 몰려왔다. 내 몫 일리 없고, 내 몫이어서는 안 되는 벌건 고깃덩이들이 나를 같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적당히 구워진 노릇한 삼겹살을 놓칠세라 입안에 털어 넣으면 서 ‘쩝쩝’ 유난 떨 듯 씹어 삼키셨다.
인사치레로 한마디 툭 던지고는 또다시 무심하게 쩝쩝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온다. 교사가 된 후 늘어난 실력이 있다면 단연코 고기 굽는 실력과 비어 가는 술잔을 빠르게 캐치하는 실력, 소주잔에 정확히 3분의 2만큼 들이붓는 실력이다. 정적이 흘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우리 반 아이들의 단점은 곧 담임의 무능함이 될 것이며, 우리 반 아이들의 장점은 젊은 교사의 치기 어린 자랑질이 될 게 뻔하다. 나의 취미생활은 퇴근하고도 남아도는 에너지를 반증한다 여길 것이며, 우울한 출근길 얘기는 열정 없고 근기 없는 젊은이로 치부되기 딱 좋은 소재라 피한다. 날씨나 학사일정 정도의 가벼운 얘기를 하다 말이 툭 끊기길 반복한다.
레퍼토리가 뻔해 보이는 질문을 던지셨다.
결혼을 종용하거나 여태 연애 안 하고 뭐 하고 있었냐는 둥의 시시콜콜한 뒷얘기를 상상하며 최대한 공손하게 나이를 말씀드렸다.
2초간의 짧은 정적이 흘렀다. 나는 말한 사람이 무안해지지 않도록 있는 힘을 다해 활짝 웃어 보였다.
그는 옆에 앉은 선생님께 억지 동의까지 구해가며 히히덕 누런 이를 드러내 보이며 재밌다는 듯 웃어댔다. 놀랍게도, 조금 전 바삭한 삼겹살을 먹을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퇴임하고도 시간이 흐른 후, 그분 딸의 결혼을 알리는 전체 메시지가 내 휴대폰에 떴다. 살포시 문자를 삭제했다. 뒤늦게야 몇 다리 건너서 우연히 안 사실이지만 그 딸이 40이 넘어 올리는 결혼식이라 했다. 그는 드디어... 본인이 낳은 소중한 똥을 치우는 중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