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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간호사 KokoA Feb 10. 2024

우울해서 아픈 겁니다

몸을 뚫고 나오는 우울

왜 아픈지도 모르고 아팠다.


일본에서는 늘 두통에 시달렸다. 파우치 안에는 늘 진통제가 있었다. 예민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두통과 함께 목과 어깨에 뻐근하고 조이며 바늘로 쑤시는 듯한 통증이 왔다. 진통제를 먹어도 소용없었고 오전부터 시작된 두통은 오후가 되면 점점 더 심해졌다. 결국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통증은 심해졌고 조퇴하고 병원에 가 MRI검사를 받은 적도 있었는데 아무 이상도 없었다.


전남편과 이혼을 고민하고 있었던 지독한 여름이었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을 내린 후 역에서 빠져나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는데 오른쪽 등에 관통할 것 같은 통증이 꽂혔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새로운 통증이었다. 순간적으로 확 내리꽂는 통증은 나를 휘청이게 했다. 강하고 날카로운 통증에 몸을 가눌 수가 없었고 안 그래도 높은 기온에 습도까지 높은 일본 여름 날씨에 땀을 많이 흘려 현기증이 나 어지러움까지 찾아오니 에스컬레이터 발판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이후로도 창이 된 통증은 계속 나를 덮쳐왔다.


한국에 돌아와서 30살의 늦은 나이에 신규 간호사가 됐다. 간호 대학을 졸업한 후 바로 간호사가 되지 않고 일본행을 선택했던 나는 실습 외에는 병원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 편하게 천천히 간호 일을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요양병원에 들어갔다. 요양병원은 웨이팅 하는 간호사들도 많이 간다고도 하니까 쉬울 줄 알았다.(웨이팅: 대학 병원이나 종합 병원 등 입사가 결정된 간호사가 발령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것)  오산이었다. 착각을 해도 단단히 했다. 내가 배정받은 부서는 요양병원 집중치료실(중환자실)이었다.

지옥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트라키오스토미(tracheotomy, 기관절개술: 성대 하부 기관에 절개를 하여 코나 입이 아니라 절개 구멍을 통해 공기를 흡입해서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는 수술)를 해 튜브가 삽입되어 있고 흔히 콧줄이라 불리는 L-tube(Levin tube, 비위관: 코를 통하여 위(胃)로 넣는, 고무나 플라스틱 재질의 관. 위의 내용물을 빼내거나 위에 영양을 공급하기 위하여 사용)를 삽입되어 있는 30명이 넘는 환자였다. 트라키오스토미와 L-tube가 삽입되어 있는 환자 30명이 있다는 것은 30번 이상의 침습적 행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침습적 행위는 감염 위험이 높고 감염 위험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주의해야 할 것이 많고 스트레스가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침습적 행위보다 더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욕창이었다. 욕창은 살을 움푹 파냈고 움푹 생긴 그 구멍에서는 피가 흐르기도 했고 고름이 나기도 했다. 후각이 예민했던 나는 그 ‘사람이 죽어가는’ ‘썩어가는’ 냄새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 나는 출근할 때마다 스트레스성 소화불량에 시달렸고 냄새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아서 속은 가만히 있어도 놀이기구를 타듯 울렁거려 아무것도 마실 수도 먹을 수도  없어 얼음만 물고 있기도 했다.

거기다 병원 일이 처음이라 모르는 것도 많고 서툴렀던 나는 정말 ‘재’가 되도록 ‘탔다’. (나중에 다른 글에서 다룰 거지만 '태움'은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이다.)

일본에서 나를 찌르던 창의 통증은 계속되었고 왼쪽 허벅지 햄스트링에 찢길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이 두 시기는 내가 우울의 혹서(酷暑)와 혹한(酷寒)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우울을 조금 알고 나서 보니 내가 겪었던 이 증상들이 어쩌면 우울로 인한 신체화(Somatization, 심리적 갈등이 감각기관, 수의근계를 제외한 신체 부위의 증상으로 표출되는 것)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여러 가지 신체 증상을 호소할 때가 있는데 이때 여러 검사를 시행하여도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올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나의 불편과 통증은 실제(実際)이며 실재(実在)한다.


얼마 전부터 입 안에는 구내염, 온몸은 근육통, 뭉친 어깨, 지끈한 편두통 등 몸이 아픔을 드러냈다. 몸은 숨기지 않았는데 내가 모른 척했다. 분명 나는 무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몸의 무리에 가려져 마음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아서 나는 내가 우울하지 않은 줄 알았다.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난 괜찮지 않았다.

나의 몸은 영리했다. 급체로 나를 멈추게 했다. 밤새도록 토했다.


몸이 말했다.

너 아파. 그만해

우울은 이렇게 몸을 뚫고 나온다.


왜 아팠을까?

결혼은 이미 한 번 실패했고 하는 연애마다 실패하고 있고 지금 간호사로 일하면서도 이 길이 정말 내 길인가? 좋아하는 게 맞나? 고민하다가 새로 무언가를 시작하는 건 무서우면서 왠지 나만 뒤처져 있는 것 같아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내 또래가 ‘재테크나 자기 계발로 급여 외 소득을 올린다느니 벌써 집을 마련하고 경제적 자유를 이뤘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초조해진다.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결혼은커녕 연애도 힘들고 내 집 마련은커녕 학자금 대출, 신용대출 갚기도 벅찬데…’하며 내가 아닌 타인만을 본다.


아, 이건 ‘비교증(比較症)’이다.


지금까지와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극내향인이지만 독서 모임도 나갔다. 언젠가 원서로 장자와 노자를 읽고 싶어서 중국어 공부도 하고 있다. 강해지고 싶어서 킥복싱 도장도 등록해서 다닌다. 매일은 아니지만 글도 쓰고 있고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이렇게 살면 누구도 나를 ’ 우울’한 사람처럼 보지 않을 것 같았다. ‘보통‘ 혹은 일을 하면서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는 ‘보통 이상’의 사람으로 볼 것 같았다. 내가 스스로를 보지 않으면서 타인이 어떻게 나를 볼까 걱정하고 있었다는 걸 내 몸이 알려주었다.


점심, 저녁에 먹은 걸 다 볼 정도로 게워내었던 그날밤, 내 몸이 날카롭게 말했다. 


”너도 보지 않는 너를 누가 본다고 그래?

어떻게 보일까가 문제가 아니야.

너조차 관심 없는 너에게 아무도 관심 없어."


그랬다. 나는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머리가 아프면 날씨가 안 좋아서 기압이 낮아서 그런가 했고 소화가 안되면 과식했나 싶었고 목과 어깨가 뻐근하면 자세가 안 좋구나 하고 지나쳤다. 나는 내 몸이 비명을 지르고 까무러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우울하고 앞으로도 계속 우울할 것이다.

이대로라면 우울은 나를 부서뜨리거나 꺾어버릴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휘기로 했다.  

휜다는 것은, 쉬어야 할 때를 알고 놓아야 할 때를 알고쉬기로 놓기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멈추었다.

움직임이 멎은 내 등줄기로 숨이 들어오고 나간다.

아픔이 들어오고 나간다.


그래,

나는 우울해서 아팠다.

우울해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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