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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20호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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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관 공일오비 Mar 15. 2024

[20호 특집] 제멋대로 우리를 넘나들기

편집위원 띵동

어느 겨울날 별안간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가는 금

끝 모르고 뻗어가는 직선은 어디에 다다르는 걸까

이어지고 또 이어지다가 저 너머 수평선에 닿을까

이 금은 접을수록 짙어지니까 단정히 접지는 말고

말수록 더 두꺼워지니까 조심스럽게 말면 안 되고

자르고 끊을수록 금은 새로 생기니까 가위는 버려

바닥에 뭉개진 햇살 사이에서 살며시 발을 내밀자

우리 앞의 금에 다가서고자 우리는 우리를 벗어나

우리를 마구 들락날락하며 금을 밟을 준비를 하지

그러니까 우리 안은 무엇이고 우리 밖은 무엇일까

둥근 발끝으로 서투르게 땅을 눌러도 괜찮으려나

동그란 바퀴를 굴려서 진흙에 자국이 남는 것도 뭐

단지 우리가 금을 광선처럼 즈려밟으면 그만이야

볼품없는 그림자가 금을 감싸안아 넘어버린대도

어떤 얼굴과 어떤 마음으로 금과 닿아서 넘어가자

그러니 우리는 우리를 헤치고 금으로 성큼 내딛어

미지의 틈새를 보면서 제멋대로 우리를 넘나든다

금 위에 서기 전의 우리와 서고 난 후의 우리는 아마

그리고 금을 넘기 전과 넘은 후 우리의 세상은 아마

캄캄하겠지만 그 자리에는 여전히 금이 그어졌다


편집위원 띵동(glowingpinky0@gmail.com)


※이 글은 <연희관 015B> 20호 뒷표지에 인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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