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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여자 Feb 13. 2021

맞벌이 부부의 설거지 눈치게임

맞벌이 부부의 집안일 분담 : 아내의 이야기

또 쌓이고야 말았다.

라면 한 끼 끓여먹고 냉동식품 한 번 데워먹은 것이 전부인 것 같은데도 설거지는 쌓인다. 결혼하기 전 혼자 살던 때도 설거지는 귀찮음의 존재였고 이따금씩 미루곤 했다. 하지만 오늘의 내가 하지 않으면 내일의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오늘의 나는 알고 있었기에, 귀찮기는 해도 후다닥 해치워버리고 난 뒤의 상큼함을 학습해왔기에, 설거지는 하루 이상을 미루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이라는 믿는 구석이 생겨버리자 나는 설거지를 미루고 미루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의 내가 하지 않으면 오늘의 남편 또는 내일의 남편이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확신이 생긴 것이다. 오늘의 나는 그저 조금 지저분한 주방을 참아내기만 하면 된다.





설거지를 미루는 나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변호해본다.

일단 나는 남편보다 요리를 많이 한다. 퇴근이 남편보다 빨라 남편이 오기 전까지 난 보통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최근 남편의 퇴근이 늦어지면서 식사가 다소 간소화된 경향이 있긴 하지만 일주일에 5일 정도는 무언가를 끓이거나 볶는 정도의 요리를 한다. 요리를 하는 것은 다행히도 즐거운 일이라 큰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설거지는 얘기가 다르다.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내가 해야 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주말엔 남편이 간혹 백 선생님의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볶음밥이나 계란말이를 해낼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식사를 마치고 자선해서 고무장갑을 낀다. 바로 설거지를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그 안에는 요리를 준비해준 남편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요리를 하는 평일에는 남편이 설거지를 해주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남편은 이에 반론을 제기한다.

요리와 설거지만 놓고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집안일 전체를 놓고 보면 내가 하는 일보다 남편이 하는 일의 비중이 크다고 말한다. 남편이 주로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남편이 주로 하는 일 :

1.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 버리기(주 1~2회)

2. 빨래 분류 & 세탁하기, 건조대에 널기(주 1~2회)

3. 물걸레 청소 담당 (주 1회)

4. 식물에 물 주기 (주 1회)


쓰고 보니 적지는 않다.


아내(=나)가 주로 하는 일 :

1. 요리하기 (거의 매일)

2. 화장실 청소하기 (주 2~3회)

3. 청소기 돌리기 (머리카락 때문에 상시로 돌림)

4. 식료품, 생필품 구입하기 (주 2~3회)


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설거지는 누가 해야 하는 것인가. 내일의 남편이 오늘의 내가 미룬 설거지를 해주는 모습을 종종 관찰한다. 이틀 정도 밀린 빼곡한 설거지 더미 앞에서 그릇과 씨름하고 있는 남편을 보면 코끝이 찡하다. 세제 물에 닿지 않으려고 수면바지를 추켜올려 윗 옷을 바지 속으로 넣고 엉덩이를 요상하게 움직인다. 우스꽝스러운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그냥 내가 할걸. 오늘 일도 바쁘고 힘들었을 건데..."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생각만큼 휘발성이 강한 것도 없다. 이 생각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오늘 저녁도 설거지를 누가 할지 눈치게임 중이다.


오늘은 여보가 해주겠니?





안녕하세요, 그여자입니다. ‘그남자’로 활동하는 남편과 연애와 결혼, 부부생활을 주제로 매주 글을 씁니다. 이 글을 읽는 아내들이 행복했으면 합니다. 남편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 그남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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