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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여자 Mar 13. 2021

혼자가 편한 남편, 함께가 좋은 아내

부부간 성향 차이 극복하기 : 아내의 이야기

대부분의 연인들은 연애 초 둘의 공통점에 주목한다.

우리도 그랬다. 우리는 좋아하는 노래 장르가 비슷했고, 음식 취향도 너무 잘 맞았다. 이 보다 더 나를 잘 알아주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라고 느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너는 나, 나는 너' 시기는 연애를 시작하고 100일쯤이 되었을 무렵 위기에 봉착했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 모임에 그와 함께 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 번은 친한 언니의 생일 파티로 언니의 지인들이 여럿 초대를 받은 자리였다. 언니를 중심축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보니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경우도 있었고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한 무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편이 잠깐 전화를 받아야 한다며 자리를 비웠다. 몇 분이면 돌아올 줄 알았던 남편은 거의 30분 정도를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전화를 걸었더니 곧 들어간다고 했지만, 결국 1시간이 다 돼서야 돌아왔고 파티는 끝이 났다. 남편이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를 불편해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날이었다.


남편은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극도로 예민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생일파티 이후, 같이 갔던 힙합 공연에서도 그의 이러한 성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집에서 들을 수도 있는 노래를 굳이 공연장에 가서 듣는 이유는 좋아하는 뮤지션을 직접 보고 싶은 까닭도 있지만 그 현장에서 같이 공연을 보는 사람들과 흥을 나누기 위함도 있을 것이다. 당시 남자 친구였던 그와 꼭 함께 가고 싶었던 공연이라 나는 수강신청보다 어렵다는 스탠딩 좌석 앞자리 번호 티켓팅을 어렵사리 성공했었다. 공연 당일이 되었고 공연 시작 전 스탠팅 입장객들이 줄을 서는 곳으로 가서 입장을 기다렸다. 공연장에 들어와서 왠지 모르게 긴장한 것 같아 보이던 그의 표정을 읽고 그때서야 나는 아뿔싸 싶었다. 사람이 많은 곳을 불편해하는 그에게 한 공간에 가장 밀도 있게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스탠딩 좌석이라는 환경에 그를 놓이게 한 것이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사람들이 밀고 뛰고 하는 동안 그의 안색은 계속해서 나빠져갔고, 그를 신경 쓰느라 나도 온전히 공연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음악 취향은 같은 우리였지만 그는 조용한 곳에서 혼자 듣는 음악을 좋아했고, 나는 사운드 빵빵한 공연장에서 직접 가수가 불러주는 음악을 좋아했다.





우리 참 많이 다르구나.

바로 우리가 연애를 할 때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가장 치열하게 부딪쳤던 우리의 '성향'에 관한 것이었다. "성향 차이로 헤어졌어요."라는 부부가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느꼈다. 남편은 기본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여럿이 함께하는 부부동반 모임이라도 다녀온 날에는 남편은 홀로 쉬는 시간을 어김없이 갖는다. 연애를 할 당시엔 남편의 이런 성향을 더욱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평일 퇴근길에 같이 저녁 식사라도 하고 싶어 연락을 하면 그는 집에 가서 쉬고 싶다고 대답했다. "회사 생활 너만 힘든 거 아니거든!"이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좁은 속마음 들키고 싶지 않아 참고 넘어갔다. 평일에 거의 얼굴을 못 보니 주말에는 얘기도 많이 나누고 놀고 싶은데 그는 같이 있는 공간에서 혼자 웹툰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내 기준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계속했다. 연애할 때 나도 내 분리된 삶이 중요한 사람이었는데, 상대방이 이렇게 나오니 이상하게 나는 자꾸만 지는(love is a loosing game..) 것만 같았다. 그는 단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는데 같이 있는 게 좋은 나는 자꾸만 그의 이런 행동에 불안해져만 갔다.


불안해지 짜증이 쉽게 났다. 내 마음을 담는 그릇은 크기가 정해져 있는데 안에 담긴 물이 철렁철렁하니,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와앙!"하고 폭주해버리는 예민 보스가 되어버린 것. 별 것 아닌 일들로 크게 다투게 되는 일이 빈번했고 "이렇게 맨날 싸우느니 헤어지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춘기같이 찾아온 내 들쑥날쑥한 감정을 나도 따라가기 힘들어 내 마음이 왜 이러는지 답을 찾고 싶어 책도, 영화도 많이 봤다. 이때 읽었던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너무 클리셰적이지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영화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였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보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남자의 마음을 이해해보려고 했다. 동굴에 숨어버린 남자가 알아서 나올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는 조언을 마음속 깊게 새겼으나, 나는 그가 동굴로 들어가면 나는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횃불을 들고 쫓아 들어가는 금성에서 온 여자였다. 책의 조언을 그대로 실천하진 못했지만 화성인의 습성을 알게 되니 마음은 조금 편해졌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보고는 그와의 당시 관계에서 느꼈던 불안정함이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위안을 받았다. 삶은 계속해서 균형이 깨지고 안정을 되찾고 하는 과정에서 더 단단해지는 것이라는 대사를 몇 번을 되돌려 봤다. "내 마음아 단단해져라. 나를 강해지게 해 줘!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줘!" 소원을 빌었다.





혼자가 편한 사람들

내 감정을 해석하고 추스리기에 급급했던 어느 날 회사 도서관에서 「혼자가 편한 사람들」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제목을 보고 "혼자가 편한 사람? 그게 어떤 사람들인데!" 하고 약간의 분노와 호기심이 섞인 감정으로 집어 들었던 책인데, 읽다 보니 모든 구절이 남편의 이야기였다. 바로 구매해서 남편이 했던 이해 안 되는 행동이 적혀있는 페이지마다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여 선물했다. 이 책에서는 내향인을 주도형, 섬세형, 비범형, 은둔형 4개의 유형으로 구분했는데, 남편은 테스트를 해보니 섬세형 내향인이었다. 섬세형 내향인은 삶과 예술, 자연에서 색다른 매력을 발견하는 재주를 가진 부류다. 그들은 지나치게 예민한 신경계를 가져서 피곤하고 시큰둥한 타입이라는 오해를 받는다고 했다. 그가 왜 그렇게 사람이 많은 모임을 싫어했는지, 시끄러운 공연장을 힘들어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그의 행동이 나를 그만큼 좋아하지 않아서라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놀랍게도 이 책은 내향적인 사람에게 "외향적인 사람을 가까이 두라."라고 조언한다. 내 포스트잇이 아직 붙어있는 148~149p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다.


두 사람이 함께할 때 편협함은 줄어들고, 삶의 지평은 넓어진다. 성격이 정반대인 이들이 함께할 경우 서로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서로를 통해 성장할 수 있으며, 상대방의 재능과 가치관을 관찰하면서 각자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나갈 수 있다.
유료 온라인 파트너 찾기 사이트인 '엘리트파트너' 역시 그러한 특징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엘리트파트너는 서로에게 어울리는 파트너를 검색하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하고 있는데, 대개 학벌이나 집안, 관심사, 가치관이 최대한 비슷한 사람들을 연결해 준다. 단, 내향성과 외향성 문제에서 만큼은 다른 알고리즘을 적용한다. 이와 관련해 해당 업체의 대표이사인 요스트 슈바너는 "극도로 외향적인 두 사람을 붙여 놓으면 그 관계는 금세 폭발해버리고 맙니다. 극도로 내향적인 두 사람, 극도로 말이 없는 두 사람을 소개해 주면 그 관계는 금세 식어 버리고요. 따라서 극도로 내향적, 혹은 극도로 외향적인 사람을 서로 이어주는 건 우리 업체에서는 절대 금물로 통합니다"라고 말한다.






혼자가 편한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다.

내 남편은 놀라울 만큼 차분하고 안정된 사람이다. 그리고 막상 나서야 하는 자리에선 나보다 더 용기를 내기도 한다. (결혼식에서 그는 놀라운 춤사위를 보여줬다. 결혼식에 왔었던 친구들은 남편이 인싸라고 알고 있다. 핵인싸.)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모두가 나를 주목하는 자리는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내향적인 사람 중 가장 외향적인 사람, 외향적인 사람 중 가장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번 글의 분량이 예상보다 길어진 건 그만큼 우리가 다른 '성향'을 맞춰보려고도, 피해보려고도, 바꿔보려고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모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금처럼 잘 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그여자입니다. ‘그남자’로 활동하는 남편과 연애와 결혼, 부부생활을 주제로 매주 글을 씁니다. 이 글을 읽는 아내들이 행복했으면 합니다. 남편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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