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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hmack Oct 30. 2022

너는 나의 무지개

Apr 15, 2022

드디어 그날이 왔다. 이날을 위해 얼마나 준비했는지. 꽤나 시뮬레이션을 했는데도 막상 마주하니 가슴이 철렁한다. “엄마, 나 여기 왜 손톱이 없어?”


그렇다. 우리 집 어린이는 왼손 중지, 약지 두 손가락에 손톱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손톱이 위치한 마디가 없다고 보면 된다. 손톱이 있어야 할 마디에 뼈 없는 작고 동그란 살덩이가 있는데 아이는 이것을 미니밸셴(작은 공)이라 부른다.


아직까지는 애 앞에 두고 어머 손이 왜 이래 라고 말하는 이 없었지만 어디 인생사가 이리 순탄하기만 할까.


난산으로 아이를 출산하고 가슴에 한번 품어보지도 못한 채, 인큐베이터에 아이를 보내 놓고 숨 좀 돌리려는 찰나, 우르르 몰려온 의사들에 의해 휠체어에 앉혀져 그 차가운 병원 복도를 지나갔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도착하자마자 우리 아기 얼굴을 들여다보기도 전에 손을 보셔야 한다며 들이내민 그 작디작은 손을 보는데 눈앞이 하얘진다는 말이 이런 느낌이구나를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겠다.


우선 손에 장애가 있고 양수가 터져 감염 위험이 있으며 출산 과정에서 산소 공급이 잘 안 됐으니 손뿐 아니라 뇌 쪽에 문제가 발견될 수도 있다며 할 수 있는 체크는 다 해보겠다는 의사의 말을 뒤로하고 병실로 돌아와서는 남편과 끌어안고 꺼이꺼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는 ‘어머 내가 장애아를 낳았다니,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말하지’라며 속물의 눈물을 흘렸다면, 남편은 ‘어머 우리 아기 제발 살아만 주기를, 제발 건강히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진정 부모의 눈물을 흘렸었다.


그 춥고 무서웠던 날. 나는 내 바닥을 마주했고 남편의 깊음을 확인했다.


그동안 작게 작게 손톱의 부재에 대해 묻거나 궁금해하기는 했었지만 오늘처럼 정확하게 물어본 적은 처음이었기에 설명하는 내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왜 손톱이 없는지 알아? -아니 몰라.

태어날 때부터 에단이는 두 손톱이 없었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는 알 수 없는데 엄마 뱃속에서 두 손톱이 자라지 못한 것 같아. 세상에는 사람이 엄청 많은 거 알지.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고 다 달라. 어떤 사람은 눈이 안 보이고 어떤 사람은 귀가 안 들리고 어떤 사람은 말을 못 하고 어떤 사람은 다리가 없던지 손이 없던지 키가 작던지 크던지 모두 다 다르게 생겼어. 에단이 너 스티비 원더 아저씨 알지? 그 아저씨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안 보였는데 노래를 너무 잘하잖아. 사람들마다 없는 거 있는 게 다 달라. 깔보(깃털 없이 태어난 플라멩고가 다른 플라멩고들에게 놀림당하다가 어떤 사건을 통해 오해를 풀고 화해한다는 내용의 책)처럼 털이 없이 태어났는데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털이 없다고 놀리면 속상하잖아. 에단이는 학교 갔는데 어떤 어린이가 너보고 왜 손이 그렇게 생겼냐 물으면 어떻게 할 거야? -어 그냥 지나가버려.

그래 그것도 한 방법이야. 못되게 물어보면 대답해 줄 필요 없지. 근데 에단이랑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물어볼 수가 있어. 그럴 때는 어떻게 대답해 줄 거야?

-몰라, 엄마가 해줘. 아 설명하기가 어렵구나. 그래 그럼 우리 엄마한테 가자 우리 엄마가 잘 설명해 줄 거야 하고 엄마한테 데리고 와. 그렇게 엄마가 계속 설명해 주다 보면 에단이 너도 설명할 수 있겠지?

그냥 친절하게 물어볼 수도 놀리면서 물어볼 수도 있다는 것만 알아둬. 그러면 그런 사람 만나도 놀라지 않겠지 우리 에단이?


그날 밤. 잠들기 전 자기 손가락을 이리저리 불빛에 비춰보는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하나님이 너를 만들 때 특별히 손톱이 없게 만들었대. -왜에?

에단이 너가 힘들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재빨리 에단이를 알아볼 수 있게 표시를 해놓은 거야. 사실 하나님은 그 표시 없이도 언제나 가장 먼저 너를 찾으실 텐데 천사들은 그렇지가 못해서 표시가 필요해. 그래서 에단이 손을 보고 아! 에단이가 여기 있구나 어서 도와줘야겠다. 이렇게 알 수 있는 거야.

-아!! 에단이만 있는 거니까!! 아이의 표정에서 유레카를 발견했다.


나는 에단이의 손을 무지개 약속이라 부른다. 무지개를 볼 때마다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실 거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하듯. 내가 생각의 여러 갈래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에단이의 손을 보며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고 이루셨던 그리고 이루실 약속을 잊지 말고 기억해 내야 할 것이라 다짐하게 된다.


정말 고마워, 나의 무지개가 되어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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