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르륵' 신호가 주는 메시지
도시락을 싸면서 느꼈다.
눈앞에 과일이나 그래놀라를 도시락 통에 넣으면서 한 줌씩 먹었는데,
며칠 전부터 "지금은 먹을 때가 아니야" 인식이 되었다.
그동안 호르몬이 고장이 나서 음식을 탐하고, 계속 먹은 거구나.
배가 고프지 않은 상태에서 간식을 입 안으로 넣으면 인슐린이 분비된다. 몸속에서 쉬는 시간 없이 계속 일을 하다 보니 지쳐서 고장이 났나 보다.
먹는 음식에 따라 인슐린 분비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리가 없었다. 건강에 관심을 가지면서 식단을 1년 동안 하다 보니 내가 간식을 탐하지 않을 때도 있구나 해서 자료를 찾아보고, 다큐멘터리를 보니 이제야 내 몸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갔다.
다이어트는 누구나 한 번씩은 해봤을 텐데, 20대 때 덴마크 다이어트를 하다 3일 만에 포기한 적이 있다. 하루 종일 달걀과 식빵, 커피만 먹는 무식한 다이어트를 하면서 할 짓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어지는 폭식과 회식에 마시는 알코올과 야식은 천천히 누적되고, 30대가 연결되고 코로나가 시작된 40대.
몸이 하나씩 고장 나고, 모든 게 게을러지니 배달음식과 간편한 음식, 포장음식을 많이 먹었다.
다이어트를 할 때 ‘얼마나 먹느냐’ 보다 ‘무엇을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 인슐린 분비가 덜 되는 음식을 먹어야 되는지도 모르고, 막 먹었던 내 몸에게 미안할 정도이다.
식습관을 바꾸면서 식재료도 조금씩 변하고, 야채마다 컬러, 모양, 향이 다르고, 계절마다 나오는 야채, 과일을 새롭게 시도해본다. 요리실력이 부족해 블로그나 책을 보고, 요리를 시도해보긴 하지만 그대로의 맛이 더 좋아 그대로 먹는 경우가 많다.
소금, 간장, 멸치액젓, 고춧가루, 참기름, 들기름, 매실액, 깨 등을 넣고 간단한 무침을 하거나 찌게, 찜을 하면 원래의 모습을 잃는 게 싫기도 하고 그냥 먹어도 맛있어 살짝 데치거나 쪄서 도시락에도 결국 생식으로 담게 되었다.
심한 공복 상태가 되었을 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이유는 명확하다. 위장 내에서 음식물이 없고, 소화효소나 공기만 이동하는 과정일 때 나타난다고 한다.
이때까지 건강검진을 위한 공복 상태를 빼고 위장을 깨끗하게 한 적이 없었다.
내 몸에게 미안하다. 이제야 숨을 제대로 쉬고, 더 맛있게 음식을 즐길 수 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도시락을 주섬주섬 꺼내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내가 싸온 식재료 하나하나 씹어먹다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업무 시작하기 전, 30~40분 정도 일찍 도착해 여유를 부리고, 아침을 먹다 보면 든든함과 함께 일의 집중도가 더 올라간다.
아침은 오늘 할 일에 대해 정리한 후 자료 서치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나면, 또 배에서 배고픔 신호를 보내온다. 점심시간, 사내 식당으로 동료들이 내려가고, 난 혼자 도시락을 먹는다.
도시락을 싸다닌 지 얼마 안 되었을 땐, 외롭기도 하고 수다 떨면서 먹었던 점심시간의 풍경이 그립다가도 지금은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먹는 나만의 시간이 소중하다.
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도 나쁘진 않았지만, 현미밥과 간이 되어있는 반찬과 국이 주를 이루다 보니 씹는 행위는 많지 않아 행복지수는 지금보다 낮았던 것 같다.
먹는 게 뭐라고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하는 건지. 사내식당에서 먹고 나면 항상 간식을 더 많이 먹게 된다.
사실 저녁을 이렇게 먹고 나면 든든하기는 하나 야식을 먹었던 습관이 남아있어 퇴근 후 8~9시에 집에 도착하면 배고픈 신호를 한 번 더 보내긴 한다. 다이어트 중일 땐 참아야 되지만, 인간인지라 유혹에 넘어갈 때도 있고, 너무 피곤할 땐 다음 날 아침 도시락을 싸다가 지쳐 잠자리로 가기 바쁘다.
도시락을 안 싸도 되는 금요일 저녁은, 배고픔을 참다가 피곤해서 잠자리로 들어갔는데, 내일 아침 토르티야 구워서 안에 무엇을 넣어 먹을지 생각하다 꿈나라로 간다.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꼬르륵 소리와 함께 기상을 한다. 간단하지만, 야채와 치즈, 오이만으로 든든한 아침.
배고픔 신호 꼬르륵 소리가 반갑게 느껴질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