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롱피치 Jun 05. 2023

책의 소리 (sound of book)

독서와 초음파






초음파는 영어로 ultrasonic sound 또는  ultrasonic wave이라고 하며 음에서 발생하는 소리 에너지는 일정한 주파수를 가지는 파동의 형체로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진동수는 가청주파수, 가청진동수이고 20-20,000Hz 정도이다. 그리고 이보다 높은 진동수를 갖는 소리를 초음파라고 하고 보통 사람은 이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초음파 검사는 ultrasoundgraphy이라 한다.

내가 병원에서 임상 초음파사로 근무해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울트라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극한, 극단적인' 이라는 이 접두사를 생각하면  '초'집중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직업인 초음파 검사를 할 때 또는 독서를 할 때 몰입을 하고 '초'집중을 하면서 일하며 읽는다


10년이 넘게 초음파 공부와 검사를 하면서 또한 천권 가까운 책을 읽으면서 독서와 초음파 검사는 참으로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초음파 검사를 하면 할수록,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빠져들게 되고 매력적이라는 사실이다. 검사를 하면할 수록해야 할 공부가 많아지고 읽으면 읽을수록 읽어야 하는 책이 많아진다.


부끄럽지만 나는 직업적인 부분에 대한 인정을 많이 받고 일을 한다.  여러 번 위험한 병변을 발견해서 인지 동네에서 우리 병원이 제일 친절하고 꼼꼼하게 초음파를 잘 봐준다는 소문이 나있다. 검사를 하는 어르신분들은 만족하고  이런 검사는 처음이라고 늘 감사하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검사를 잘한 건 아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전 직장이었던 공장 같은 병원들에서 엄청난 검사양을 쳐냈고, 많은 공부가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됐다. 책도 마찬가지다. 다독을 하니 내 인생이 조금씩 변화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독서 양이 쌓이니 그것을 기록하게 되었고 책에서 나오는 교훈을 실천을 하게 되면서 인생이 조금씩 바뀌게 되었다. 바로 양적변화가 질적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초음파 검사를 받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초음파 젤이라는 마찰력을 줄여주는 액체를 신체에 바른다. 초음파가 피부에 반사되는 것을 막아주어 장기까지 빔이 잘 도달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초음파가 책이라면 초음파 젤은 나에게 기록과 필사였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와닿는 문구가 있으면 수첩과 노트에 꼭 기록을 했다. 나의 뇌까지 잘 전달되어 절대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초음파 젤덕분에 빔이 장기에 잘 도착할 수 있듯 뇌에 각인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록과 필사를 선택했다.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필기하는 방법은 내가 가진 독서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검사를 하다 보면 모든 사람이 초음파 (window)이 좋은 것은 아니다. 복부 검사는 피검사자가 살집이 두껍고 가스가 많이 차있거나, 심장초음파의 경우 몸에 수분이 부족하거나 오히려 너무 마른 사람일 경우 모니터 영상에 장기가  보이지 않기도 한다.  


또는 초음파는 artifact라는 영상질을 저해하는 인공물 때문에 프로브(transducer)를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가 여러 가지 방법과 자세로 검사를 해야 한다.


책도 그렇다.  많은 책을 읽고 있지만 모든 책이 잘 읽히는 것은 아니다.  책 권태기가 오기도 하고 어려운 책은 읽히지가 않아 몇 날 며칠을 고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책을 잘 읽기 위해서 속독, 정독, 음독, 낭독, 묵독, 통독, 발췌독등 여러 가지 시도해서 나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읽는다


책에서 마음을 흔드는 엄청난 명언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 다른 검사자는 절대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병변을 발견했을 때 그 짜릿함. 그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은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라 생각한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이 두 가지 일을 더욱 즐기며 사랑하게 되었다.


어두운 곳에서 모니터를 보고 하루종이 책을 읽어내느라 시력은 나빠졌고 눈은 늘 피곤하지만

나는 직업인 초음파 검사와 직업 같은 취미생활 독서를 할 때 가장 큰 행복함을 느낀다


한번씩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개씩이나 말이다.


 이 두 가지 일이 내 인생에서는 없어진다면 나라는 사람이 없어진다고 표현을 해도 무방하다.

책과 초음파는 내 인생의 전부이다.  



초음파와 책은 내 두 귀로는 들을 수 없다.

오직 보는 행위, 시각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나의 깊은 내면 주파수의 신호를 받아 나는 오늘도 책의 소리 (sound of book)을 듣는다.



이전 05화 인생은 그라데이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