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중에서
처음에는 누가 먼저 연락을 해야 하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아무 때고 연락해도 몇 시간씩 통화를 주고받는 것이 일상이었으니까.
우리는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별다른 약속도, 다짐도 없이.
갑작스러운 공백이 있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 단지 한 사람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역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나는 치열한 후보 간 단일화 협상을 시작으로 마지막 선거일까지 지독한 스트레스를 겪으며 하루를 보내야만 했고, 그 사이 그녀와의 모든 통화와 만남이 무기한 미뤄졌다.
언제부터였을까.
걸려오던 전화가 멈췄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으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그녀에게서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익숙했던 대화가 사라졌다.
당연했던 연락도 멈췄다.
지금까지 그녀와의 대화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며 살아왔지만, 그 응답이 멈추자 나는 흐려지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는 전화를 걸어도 긴 신호음만 이어졌다.
뚜— 뚜—
아무런 응답 없는 그 소리.
가끔은 화면에 '통화할 수 없음'이라는 짧은 문장이 뜨기도 했다.
그녀의 SNS에는 함께 나눴던 이야기 대신, 낯선 밤하늘과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사진과 글귀들이 올라오며 나의 불안감을 키우기도 했다.
이따금 통화가 연결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건
“피곤해서 무음으로 해놨어”라는 건조한 목소리뿐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길게 나누던 안부가
‘응’ ‘그래’ ‘잘 지내’
이 몇 글자로 마무리가 되었다.
만나자는 말도 무심한 농담도 사라졌다.
그녀는 문을 서서히 닫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서로를 포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정함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혼자라는 사실보다,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임을 자각하는 시간이었다.
침묵의 이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그저 견디야 하는 형벌처럼...
익숙했던 것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남은 것은 읽지 않는 메시지와
함께 나누었던 삶의 의미였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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