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중에서
혼자 남았을 때,
가장 먼저 비워지는 건 마음이었다.
하지만 가장 늦게 반응을 멈춘 건 내 몸의 감각들이었다.
이별은,
몸에 내 몸에 남겨진
반응과도 하나씩 멀어지는 과정이었다.
이성은,
내 곁에 그녀가 머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내 몸은 여전히 그녀를 향해 반응하고 있었다.
아무도 기대 주지 않는 팔의 헛헛함이
길을 걸을 때마다 텅 빈 무게처럼 따라왔고, 시선은 방향을 잃은 채 허공에 멈췄다.
밤이 되면 차가워진 내 몸은
따뜻했던 그녀를 더 그리워했다.
내 몸의 감각들은 습관처럼 남아
닿지 않는 그 자리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녀의 웃음에 따라 올라가던 내 입꼬리,
어깨에 닿을 때마다 기울어지던 몸,
눈빛이 스칠 때마다 편안해지는 마음.
그녀에게 중독된 내 몸은 아직 그 감각을 잊지 못했다.
그녀가 쓰던 향수 냄새와 비슷한 향기가
스치기라도 하면 멈추는 발걸음.
함께 듣던 음악이
어디선가 들리기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며 멍해지는 눈빛.
의식이 지나친 것을 ,
내 몸의 감각은 조그만
흔적에도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이성은,
이제 그만 그녀를 잊으라 말하지만,
내 몸은,
그 말에 순순히 응한 적이 없었다.
감각은,
그렇게 이성과 분리되어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되새기고 있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건,
길들여진 자신과도 작별하는 일이다.
나는 그녀를 떠나보낸 순간보다,
그녀가 없음에도 그녀를 그리워하는
내 몸의 감각을 회복하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사라진 관계보다 오래 남은 것은
그 안에서 형성된 내 몸의 습관이었다.
감각은 감정의 궤적이 되어
내 몸 안에서 아직도
그녀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감정은 사라져도,
내 몸의 감각은 끝내 남겨진 채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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