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중에서
마치 봄날의 바람 같았다.
맑게 닦인 창을 스쳐
내 손등에 내려앉던 바람처럼
그녀는 거친 내 삶에 선물처럼 다가왔고
설렘 속에 나도 모르게 마음을 내주었다.
매일 도착하는 한 줄의 문자.
‘오늘도 잘 지냈어? 사랑해.’
그 짧은 안부 하나가
하루의 지친 어깨를 가볍게 했다.
하지만,
운명이라 믿었던 그녀는
스치듯 지나간 우연이었다.
머물 거라 믿었던 사람은
어느 날 잔잔하던 내 마음에
거친 물살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그녀가 떠난 자리.
내 몸은 여전히 그녀를 기억했다.
그녀의 이름을 입에 올릴 때마다
목울대가 타들어갔고,
함께 걷던 길목을 지날 때마다
아릿한 통증이 발끝까지 내려앉았다.
그리움과 기다림이란 이름 아래
나는 나를 갉아먹었다.
밤이면 불 꺼진 방 안에 웅크려 앉아
손톱이 살을 파고들 때까지
나를 움켜쥐었다.
그 고통 속에서
가장 선명히
내 주제를 자각했다.
숨 쉬는 일조차 버거웠다.
심한 스트레스로 불규칙하게 뛰는 심장박동. 길거리 누군가 흥얼거리는 노래 한 구절에도 그녀가 생각났다.
아무 때고 울컥해지는 마음에 거리로 나서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웃는 얼굴 뒤로, 삶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차라리 깨끗이 잊힌다면 덜 아플 텐데...
남겨진 나는,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스러운 감정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이별은,
떠난 사람을 놓는 일이 아니라
남겨진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녀를 잊기 위해 견뎌야 했던 시간은,
그녀를 사랑했던 시간보다 더 오래
더 깊게 나를 찢어놓았다.
시간은 상처를 덮어주지 않았다.
그저 매일 반복되는 고통에
매일 새로운 이름을 붙이게 할 뿐이었다.
그녀가 떠나버린 차가운 방 안에는,
식어버린 커피잔 하나만 책상 위에 남아 있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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