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남겨진 사랑이 더 아프다>

"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중에서

by 구정훈



잃어버린 사랑을
다시 찾을 수 없지만
그 위에 쌓인 시간들은
우리를 조금씩 바꿔놓는다.


떠나간 사람도
그날의 감정도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는다.


그 빈자리에
스며드는 작은 숨결들.


그리움은,
남겨진 흔적이 아니라

다시 나를 살아가게 하는

아주 은밀한
시작일지 모른다.




<남겨진 사랑이 더 아프다>


마치 봄날의 바람 같았다.

맑게 닦인 창을 스쳐

내 손등에 내려앉던 바람처럼
그녀는 거친 내 삶에 선물처럼 다가왔고
설렘 속에 나도 모르게 마음을 내주었다.


매일 도착하는 한 줄의 문자.

‘오늘도 잘 지냈어? 사랑해.’

그 짧은 안부 하나가

하루의 지친 어깨를 가볍게 했다.


하지만,

운명이라 믿었던 그녀는

스치듯 지나간 우연이었다.


머물 거라 믿었던 사람은

어느 날 잔잔하던 내 마음에
거친 물살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그녀가 떠난 자리.

내 몸은 여전히 그녀를 기억했다.

그녀의 이름을 입에 올릴 때마다

목울대가 타들어갔고,

함께 걷던 길목을 지날 때마다

아릿한 통증이 발끝까지 내려앉았다.


그리움과 기다림이란 이름 아래

나는 나를 갉아먹었다.

밤이면 불 꺼진 방 안에 웅크려 앉아

손톱이 살을 파고들 때까지

나를 움켜쥐었다.


그 고통 속에서

가장 선명히

내 주제를 자각했다.




숨 쉬는 일조차 버거웠다.


심한 스트레스로 불규칙하게 뛰는 심장박동. 길거리 누군가 흥얼거리는 노래 한 구절에도 그녀가 생각났다.

아무 때고 울컥해지는 마음에 거리로 나서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웃는 얼굴 뒤로, 삶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차라리 깨끗이 잊힌다면 덜 아플 텐데...


남겨진 나는,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스러운 감정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이별은,

떠난 사람을 놓는 일이 아니라

남겨진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녀를 잊기 위해 견뎌야 했던 시간은,

그녀를 사랑했던 시간보다 더 오래

더 깊게 나를 찢어놓았다.


시간은 상처를 덮어주지 않았다.
그저 매일 반복되는 고통에

매일 새로운 이름을 붙이게 할 뿐이었다.


그녀가 떠나버린 차가운 방 안에는,
식어버린 커피잔 하나만 책상 위에 남아 있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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