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너는 멀어졌고 나는 깊어졌다>

"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중에서

by 구정훈

평일 점심시간
회사 근처 식당에서 회덮밥을 주문했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
그저 허기를 채우려던 식사였다.


알싸한 회덮밥 맛에 문득
그녀와 함께 갔던 을왕리 바닷가의 낡은 식당이 떠올랐다.


그날 먹은 물회 한 그릇
얼얼한 국물에 서로의 숟가락이 부딪치며 미소 짓던 순간들 그날의 기억이 회덮밥 한 그릇 위로 겹쳐졌다.


갑자기 입맛이 사라졌다.
무거운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고
결국 몇 숟갈 뜨지도 못하고 식당을 나왔다.


그녀가 바닷가에서 했던 말들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물회 한 그릇을 말아주며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과
물회의 알싸한 맛만 어른거렸다.


일상마다 그녀의 모습이 자꾸 겹쳐진다.
사랑이 끝나서 끝난 것인지 그저 익숙한 내 일상이
사라져서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의 일상에는 더 이상 내가 없었지만
나의 일상은 여전히 그녀를 지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밥 한 그릇을 마주하면서도
내 안을 건드리는 감정이
그리움인지, 미련인지…
잘 모르겠다.


누군가는
사랑했다가 이별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이별 이후에 그것이 사랑임을 깨닫고
사랑을 시작한다.


하지만 미련이든 그리움이든
멀어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추억은 아프지 않았다.
아픈 건 그녀의 기억 속에서
더 이상 내가 불리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내 작은 일상이 여전히
그녀를 떠올리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부재보다
더 깊은 침잠 속에 머물렀다.


떠나간 너는 더 멀어졌고
남겨진 나는 더 깊어졌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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