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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아직 거기에 있나요 (3장 4화)

3장. 벚꽃, 흩날리다

by 구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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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벚꽃, 흩날리다


4화

<조용한 동행>


빛톨은 외출을 앞두고 거울 앞에 앉아 화장에 집중하고 있었다. 오늘의 메이크업은 평소보다 한층 짙었다. 눈꼬리는 평상시보다 더 길게 위로 올려졌고, 입술에는 평소보다 더 선명하고 붉은색이 발라졌다.


연우는 소파에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랜 친구를 만난다는 긴장일까, 아니면 지나간 시간을 거슬러 예전의 자신감 있던 얼굴을 되찾고 싶어서일까. 그는 문득, 빛톨의 진한 화장이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증명하려 것이 아닐까 하는 인상을 받았다.


“자기는 진한 미국식 화장보다는, 그냥 기본만 하고 커버만 살짝 하는 게 더 예뻐 보이는데.”


연우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취향을 건넸다. 립서비스가 아니라, 빛톨의 진한 화장이 오히려 더 나이가 들어 보이기도 하니까...


빛톨은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딱히 싫어하는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입꼬리를 가볍게 올리며 손에 든 브러시를 계속 움직였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화장을 하려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눈빛에 더 가까웠다. 무엇을 더하려는 욕심이 아니라, 자신이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존재의 명확함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조심스러운 반복이랄까.


빛톨의 화장은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었지만, 턱을 들고 반쯤 감긴 그녀의 눈꺼풀 아래로는 말로 담기지 않는 감정이 지나가고 있었다. 마치 오늘 하루만큼은 누군가의 눈에 여전히 환한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 바람, 혹은 그렇지 않으면 곧 지워질 것 같은 불안이 반쯤 감긴 눈빛 사이로 조금씩 흘러나오는 듯했다.


“자기도 준비해야지.”


연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욕실로 들어섰다. 차가운 물로 얼굴을 적시며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다시 떴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말끔히 빗어 넘긴 머리, 어딘가 날이 선 눈매. 오늘은 정말 중요한 미팅이었다. 빛톨과 함께 준비한 이 하루가 단지 ‘하루’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욕실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자, 익숙한 팝송이 울렸다. 빛톨이 좋아하는 음악의 익숙한 음정. 그 사이로 다리미의 스팀이 피어올랐다. 미국에서 직접 가져온 다리미로 빛톨은 능숙하게 셔츠의 주름을 펴고 있었다.


그녀의 손길이 셔츠에 닿을 때마다 연우의 눌려 있던 시간과 감정들도 함께 펴지는 것 같았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확실한, 사랑하고 있다는 손길.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눌러 담듯 연우의 셔츠를 다렸다.


“오늘 저녁에 가인이랑 식사자리인데, 부담되지 않아? 내 친구들이 자기 엄청 궁금해하는데...”


셔츠는 이미 한 번 다려진 선을 또다시 오갔고, 빛톨의 목소리에는 작은 떨림이 실렸다. 빛톨은 혹시라도 연우가 그 자리를 싫어라도 할까 봐 걱정하는 듯 보였다.


“아니, 전혀. 자기가 제일 친한 사람이면, 나도 꼭 만나야지. 그리고 나는 이유 없이 어색한 자리를 싫어할 뿐이지, 어떤 자리든 어떤 주제든 별로 신경 안 쓰고 잘 맞추는 편이야. 그러니까 자기는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돼”


그제야, 그녀는 다 다려진 옷걸이에 옷을 걸으며 방긋 웃었다.




연우는 오랫동안 빛톨은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해 왔다. 처음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거나, 연우가 멀어지려 할 때 보여준 빛톨의 적극성은 분명 평균 이상이었다.


한국에 오기 전, 장시간 이어진 통화 속에서도 그녀는 늘 먼저 안부를 물었고, 연우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다정한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마치 세상과의 모든 연결이 자신의 자신감을 통해 이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모든 일에 큰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곁에 있는 지금, 연우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이질감을 자주 마주쳤다. 빛톨은 연락을 받는 순간마다 잠시 멈춰 섰고, 약속을 앞두고는 망설였으며, 오래 기다려온 만남조차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 채 뒤로 미뤘다. 마치 무언가를 부담을 느끼는 듯, 혹은 그 안에 여전히 풀리지 않은 매듭이 있는 듯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조심스레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남겼다. 늘 같은 말이었다.


“그래, 다음에 보자. 지금은 괜찮아.”


“연우씨하고 잘 지내고 있어. 괜찮아.”


짧은 몇 마디는 자주 반복되었고, 그 끝엔 어김없이 ‘괜찮음’이라는 방패가 놓였다. 그 말은 마치 스스로를 안심시키려는 기도 같았고, 동시에 누군가에게 끝없이 괜찮다고 믿게 하려는 주문처럼 들렸다.


하지만 연우는 어느 순간부터, 빛톨이 적극적이고 사람을 좋아해서 다가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상처 주지 않고 잊히지 않기 위해 잠시 머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그녀에게 남아 있는 인연들은 어쩌면, ‘나는 아직 잘 버티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애써 증명해 보이려는, 작고 희미한 구조물 같았다.


전화가 오면 항상 환하게 웃으며 “보고 싶다”, “곧 만나자”라고 말하던 빛톨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현실이 되어 누군가가 현실로 다가오려는 순간이 되면, 그녀는 여지없이 한 발 뒤로 물러서곤 했다. 마주할 용기를 다 모으지 못한 채, 거리를 둔 자리에서 다시 메시지만을 띄우곤 했다.


'오늘은 조금 피곤해'


연우는 빛톨의 그 말들은 들을수록, 인사가 아니라 불안에 휩싸인 외침처럼 다가왔다. 마치 스스로의 존재를 타인의 응답으로라도 붙들지 않으면 쉽게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막막한 두려움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의 기억 너머로 사라지지 않기를 끊임없이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빛톨은 늘 그렇게 누군가 곁에 없으면 무너질 것만 같은 불안을 견디지 못하면서도, 막상 그들이 가까이 손을 내밀면 뜻밖에 도망치듯 문을 닫아걸었다.


빛톨은 연우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며 연우를 갈구했지만,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그 반복적인 모습은, 자신의 소멸을 막으려는 기이한 방어처럼, 때로는 부서지기 쉬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오래된 습관처럼 언제나 같은 형태로 되풀이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쳤다.




강남역에서 교대역까지는 전철로 단 한 정거장. 두 사람은 걷기로 했다.


연우는 알고 있었다. 빛톨은 사람이 많은 곳에 몸을 맡기기보다는 함께 천천히 걸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그녀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익숙했던 거리가 그녀에겐 추억과 위로처럼 작용한다는 것을.


그래서 여유 있게 산책하듯이 걷다가 교대역 근처 커피 전문점에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일부러 일찍 출발했다.


5월, 여름의 초입에서 아직 덜 지친 공기를 내뿜고 있었고, 두 사람은 그런 도시의 오후를 나란히 팔짱을 끼고 걸었다. 걷는 동안 이야기의 화두는 어느새 화장품 아마존 론칭으로 옮겨갔다.


“미국 돌아가면 브랜드 잘 론칭해서, K-뷰티 트렌드 맞춰 폭발적으로 키울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화장품은 써보면 다 좋아해. 내가 LA지역의 미장원 하고 상점들에 많이 뿌렸거든. 사람들이 하나만 더 달라고 막 그러더라고"


빛톨은 자신 있게 미래를 그려나갔다. 그녀의 말은 활기찼고 경쾌했으며, 무엇보다 절실했다. 연우는 그런 빛톨의 모습을 보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마음 한쪽이 흔들렸다.


그녀의 말 안에는 치밀한 계획보다 ‘잘 될 것 같은 기분’, 그리고 한때 무너졌던 자신을 다시 세우려는 간절한 의지가 더 짙게 스며 있었다. 연우는 무엇보다 빛톨이 걱정스러웠다.


그녀가 이미 많은 제품을 LA 현지에 “뿌렸다”라고 말한 순간, 연우의 머릿속에는 경고등이 켜졌다.


아직 아마존 론칭도 되지 않았고, 브랜드 스토리나 패키징 전략도 구체적으로 아무것도 정립되지 않았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샘플도 아니고 비싼 정식 제품을 무계획적으로 퍼뜨리는 건 오히려 브랜딩에 혼선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과 그녀의 지금까지의 계획과 노력이 사실상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홍보가 아닌 단지 무엇을 진행하기 위한 목적 없는 소진으로 읽히는 그녀의 행동은,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단지 존재를 위한 절박한 증명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빛톨이 사업을 키우고자 하는 욕망이기도 했지만,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주변에 의미 없이 흩뿌리는 희망의 파편 같아 보였다.


연우의 빛톨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내면에서는 말 못 할 근심이 계속 번져가고 있었다. 빛톨의 말은 분명 생기 있었고 간절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 안에는 실행이 아닌 상상 위에 지어진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 것이 하나 없는 모래성처럼 보였다. 연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마존 입점은 누구나 할 수 있어. 문제는 그다음이지.’


그는 이미 머릿속으로 구체적인 절차와 리스크를 조망하고 있었다. 입점 승인을 받고, 제품을 올리고, 몇 건의 리뷰를 받는 일까지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검색 결과 상단에 오르기 위해선 비용과 인력이 필요했고, 광고비를 태워도 반응이 없으면, 안 그래도 힘든 빛톨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좌절로 돌아온다.


특히 이미 경쟁이 치열한 K-뷰티 제품군 내에서 차별화가 분명치 않은 아마존 내의 화장품처럼 상호 경쟁이 치열한 품목은, 리뷰 수, 별점, 재구매율, 심지어 제품 사진과 상세페이지의 ‘분위기’까지 노출 알고리즘의 기준이 된다.


그리고 연우가 진짜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빛톨은 전 남편과의 소송으로 아직 미국에서의 거처도 불안정했고, 같이 일할 사람도, 초기 사업을 세팅할 자금도, 고객 서비스를 관리할 체계도 갖추지 못했다. 모든 조건이 지금은 그녀가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가파른 언덕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연우는 그 현실을 말로 꺼내지 않았다. 그녀가 지금 붙들고 있는 건 시장 점유율이나 유입률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마지막 확신이었기에. 무너진 자존감 위에 다시 쌓아 올린 희망 하나를 그 한 조각을 연우는 함부로 흔들고 싶지 않았다.


빛톨의 현재 상태는 그 모든 것을 실행하기엔 너무 준비된 것이 없었고 위태로워 보였다. 단지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절박한 희망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언어 속에 실행의 흐름이 없다는 것 자체가 경험자인 연우에겐 분명한 경고등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걱정을 말로 옮기지는 않았다. 그녀의 의욕에 물을 끼얹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지금의 빛톨은 현실의 벽을 뚫어내려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시 믿기 위해 그 꿈을 붙들고 있는 중이라는 걸 연우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대만 남은 꿈. 그 꿈이, 이제는 빛톨의 마지막 탈출구라는 사실을 연우는 알고 있었다.


빛톨이 긴 이야기를 마치고 연우를 바라보았을 때, 연우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 아마존으로 가자. 우리 자기는 늘 긍정적이니까 잘 될 거야.”


그게 위안인지 구원이었는지 연우는 구분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녀가 자기 안의 희망을 놓지 않도록 하기 위한 연우의 조심스러운 동행이자, 그건 가장 사랑하는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말로는 닿을 수 없는 연대의 방식이었다.





교대역에 도착한 두 사람은 곧바로 커피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붐비지 않는 창가 쪽 자리에 앉자, 빛톨은 마치 마음속에 오래 접어두었던 종이를 펼치듯, 회사 이야기와 투자유치 전략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추진 중인 방향, 북미 시장의 가능성, 곧 만날 투자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를...

그녀는 침착해 보였고, 말의 구조도 나름대로 논리적이었다. 연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녀의 말을 자르지 않았고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말들이 그녀 안에서 부디 희망처럼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치 안심시키듯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하지만 빛톨은 연우의 무거운 반응을 곧 눈치챘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연우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변하자 잔을 든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떨리기 시작했다.


“괜찮아? 좀 안 좋아 보이는데...”


연우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 말은 걱정보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그제야 빛톨의 시선이 연우에게 맞춰졌다.

짧고 묵직한 정적이 두 사람 사이에 머물렀다.


“괜찮아. 이제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녀는 웃었다. 이전보다 더 단정했고, 어쩌면 더 결심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 미소의 이면에는,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한 무언가의 흔들림이 있었다. 연우는 그것이 희망이 아닌 책임감에 가까운 것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빛톨도, 연우의 눈빛 속에 깃든 걱정의 그림자를 알아차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업에 대한 대화는 끝났지만, 무거운 기류가 두 사람 사이에 가라앉았다. 커피의 따뜻함도, 테이블 위에 비치는 오후의 햇살도 그 무거운 정적을 쉽게 덜어내지 못했다.


가인과의 만남은 교대역 근처의 조용한 한정식집에서 이루어졌다. 본격적인 미팅이라기보다는,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옛 친구들 사이의 식사 자리처럼 시작되었다.


대화는 주로 옛날이야기, 가인의 딸, 그리고 한때 함께 어울렸던 이들의 근황으로 이어졌다. 빛톨은 미국에서의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았고, 가인 역시 그 부분에 대해 굳이 묻지 않았다. 그 둘 사이에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처럼 분위기가 흘러갔다.


연우는 그 조심스러운 흐름을 읽었다. 빛톨이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이유가 단지 불편해서가 아니라, 연우를 걱정하게 만들까 봐 라는 걸. 그리고 가인 역시, 그 무게를 억지로 건드리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식사가 이어지는 동안, 가인은 친언니처럼 빛톨을 챙겼다. 반찬을 챙겨주고 물을 따라주고 간혹 식탁 위 대화가 어색해질 때면 연우 쪽으로 시선을 돌려 은근히 물음을 건넸다.


“우리 언니 어떻게 만났어요? 미국 가기 전에는 진짜 예뻤다니까요.

우리 멤버들 중에서도 언니가 인기가 제일 많았어요.”


빛톨은 그 말에 조금 당황한 듯 웃더니, 연우 대신에 가인에게 답변을 했다.


“페이스북에서 연우씨를 처음 봤는데... 너무 힘들어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그냥... 손을 내밀고 싶었어.”


그 말 뒤에 빛톨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한 문장 한 문장 또렷하게 두 사람의 만남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마치 친동생에게 들려주듯, 가인이 몰랐던 이야기들, 연우조차 알지 못했던 빛톨 자신의 감정들을 하나하나 꺼내놓았다.


연우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빛톨이 이 자리에서 자신을 어떻게 ‘존재’시키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을 어느 만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느꼈다. 자기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소개하는 것은 설명이나 자랑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스스로에게 다시 연결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이야기를 전해 들은 가인은 연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언니, 잘 부탁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가볍게 웃는 얼굴 위에 묘한 진심을 담겨 있었다. 빛톨을 걱정하며 부탁하는 가인의 말은 연우의 가슴속에 무거운 책임감으로 내려앉았다.


식사가 끝에 다다를 즈음, 본 미팅을 위해 아마존 이야기도 나왔다. 그 자리는 긍정과 희망으로 끝을 맺었다. 늘 낙관. 북미 진출이 이제 모험이 아니라, 시작만 하면 성공을 이미 손에 쥔 듯한 그런 분위기.




저녁이 되어 두 사람은 숙소로 돌아왔다. 냉장고에 넣어둔 아이스커피를 연우에게 꺼내주며 빛톨이 이야기를 꺼냈다.


“연우씨.”


“응?”


“나... 사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무섭긴 해. 이번에 잘 안 되면, 난 또 뭔가를 포기해야 할지도 몰라서.”


그녀의 그 말은 정적이 감싸는 숙소에서 큰 망치소리처럼 연우의 가슴속에 파고들었다.

연우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할 거 없어. 내가 하나씩 잘 알아볼게.”


빛톨은 그 말을 듣고 잠시 고개를 끄덕였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날 밤, 두 사람은 함께 나란히 누웠지만 서로의 눈을 오래 마주하지 않았다. 불은 꺼졌고, 커튼 너머로 희미하게 마주 보는 빌딩의 불빛이 들어왔다.


빛톨은 무언가 걱정이 있는 듯 등을 보이고 누운 채 아주 느린 숨을 쉬고 있었고, 연우는 그녀의 등 너머 어둠 속에서 혼잣말처럼 생각했다.


‘기대는 계속 앞으로 달려가지만, 현실은 따라가지 못할 때가 있어. 그때는... 기다려야 해.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계속될 그 스트레스를 빛톨이 견딜 수 있을까...'


빛톨도 침대에서 계속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었지만 연우는 그 뒤로는 더 생각하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다. 그녀가 꿈을 놓지 않길 바라면서, 자신 역시 무언가 출구를 찾게 되리라는 가능성만, 꼭 쥐고 있었다.


#9




'당신, 아직 거기에 있나요' 프리퀄 '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가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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