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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의 사기꾼 Mar 17. 2020

책, 안 만드는 편을 택해야 할 때

당연하게도 편집자는 자신이 만드는 모든 책과 사랑에 빠지진 않는다. 직장인으로서의 업무가 그렇듯이, 납득할 수 없는 원고를 받아들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곤 한다. 이 쓰레기 같은 원고를 굳이 책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뭔가. 왜 내게 이런 일이 맡겨졌는가. 울부짖어봤자 소용없다. 첫 번째 독자인 편집자조차 납득하지 못하는 원고는 과연 출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런 의문도 소용없다.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은 일개 직원의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원고를 보는 내내 이런 생각에 시달린다. 


1. 판권에서 이름을 파버리고 싶다. 

2. 이걸로 보도자료는 어떻게 써?

3. 나무야 미안해.


실제로 자신의 이름을 판권면에 쓰지 않은 적이 있다는 편집자도 있다. 회사의 방침에 따라 안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도저히 내가 이 책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아서 이름을 빼버리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아무리 수준 이하의 원고라도 편집자는 결국 어떻게든 이 책의 장점(!)을 찾아내고 쥐어짜서 보도자료를 쓰긴 쓴다(정말 위대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정말로 작정하고 외주를 맡겨버릴 수도 있다. 보통의 경우 그렇게까지 하진 않겠지만 전혀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니다.


피할 수 없는 문제는 세 번째다. 전자책으로만 출간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이 원고를 출간하기로 결정했다면 적어도 초판 2000부의 책을 찍어낼 만큼의 종이가 쓰인다. 편집자들이 반쯤 농담처럼 나무에게 사죄하는 것 같지만 이건 농담이 아니다. 그토록 수많은 나무가 가치 있는 텍스트를 오래도록 남기는 데에 쓰였다면 나무의 희생에도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나무가 있었기에 인류는 수천 년의 지혜와 지식을 계속해서 후대에 전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낭비’라고 부르지 않는다. 


편집자를 괴롭게 하는 것은 내가 종이를, 나무를, 낭비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는 죄책감이다. 엉망인 원고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걸 그럴듯한 책의 꼴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데 나무에 대한 죄책감이라니. 이토록 범지구적인 고통이라니. 

그렇게 후진 원고를 (어쩔 수 없이) 책으로 만드는 일을 몇 번 겪다보면 새로운 책을 기획할 때에도 스스로 더 까다로운 기준을 세우게 됐다. 이 기획은 책으로 만들어져 오랫동안 널리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는가. 300쪽짜리 재활용쓰레기가 되어 분리수거함에 들어가지 않을 만큼 소장 가치가 있는가. 독자로서 책을 읽을 때의 태도도 바뀌었다. 똥 같은 책을 읽었을 때 내 시간을 낭비했다는 분노보다, 이따위 글을 책이랍시고 만들어서 종이를 낭비한 데 대한 분노가 더 큰 사람이 됐다. 


회사를 그만뒀지만 나는 아직도 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나무에게 미안할 원고를 책으로 만드는 일도 피할 수 없다. 오히려 더 지독해졌는지도 모른다. 내부에서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꼭 출간해야 하는 원고가 있을 때, 비용을 들여서 나 같은 외주용역에게 맡겨버리기도 하니까. 그런 일의 외주 비용에는 ‘이 원고 안 본 눈 삽니다’를 외치고 싶은 외주자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대가도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글을 쓰다 보니 가끔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의를 받는 일도 있다. 처음으로 출간 제의를 받았을 때, 나는 덜컥 겁이 나서 제안을 거절했다. 편집자로서 그토록 단호하게 원고들을 평가하며 ‘이건 종이 낭비야!’를 외치던 내 모습 위로 내 글이 책이 되어 나온다는 상상을 겹쳐보니 너무 무서운 것이다. 내 원고를 편집자인 내가 읽고 출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면, 나는 충분히 출간할 수 있는 원고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내 원고를 책으로 만들어야 하는 미래의 어느 편집자가 ‘나무야 미안해’를 수도 없이 외치게 되면 어떡하지? 생각하면 할수록 어쩐지 책의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지고 마는 것이다. 


책 만드는 일이 직업이 된 후로는 책을 소장하는 것에 대한 집착이 점점 사라졌다. 내가 책을 살 때도 좀 더 엄격하게 고르고 골라야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는 책들도 좀 줄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양한 책이 많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다양한 책이 많이 나오는 것만큼 중요한 건 양질의 책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누구라도 붙잡고 책 좀 사세요 영업을 해도 모자랄 판에 이건 좀 위험한 제안일 수도 있지만, 많이 쏟아지고 많이 사는 것보다 엄격하게 출간하고 신중하게 사야 하지 않을까. 


셀링포인트가 조금만 그럴듯해도 누군가는 살 테니까, 포장만 잘 해도 누군가는 혹할 테니까, 저자 이름만으로도 고정독자들은 일단 살 테니까… 내가 책을 덜 사는 일이, 누군가가 그런 게으른 생각으로 수준 미달의 원고를 세상에 내놓는 것을 막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진 않을까. 그러니까 이건 나름의 소심한 실천이라고 해두자. 물론 먹고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때론 종이를 낭비하는 책에 손을 보태야 한다는 게 한심한 현실이긴 하지만. 


일러스트: 김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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