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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의 사기꾼 Oct 22. 2024

폼나는 체육인이 되고 싶어!

흐느적거리기 싫다...

가끔 내가 풋살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마주할 때가 있다. 풋살구장을 가로지르며 이리 뛰었다 저리 뛰었다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면 진짜... 욱겨 죽는다. 농담 아니고 진짜 육성으로 웃음이 터져서 영상을 끝까지 보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뛸 때마다 양팔을 좌우로 팔락팔락 흔들고 하체는 뒤뚱뒤뚱, 걸을 때는 배를 내밀고 팔자로 걷질 않나, 압박 수비를 해보겠다고 바짝 붙어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일 때는 뭔 병든 파리가 날아다니는 것 같다. 기본기 연습 시간에는 패스 자세가 그럭저럭 잡히는데 시합에 들어가서 공이 나한테 오면 당황해서 나조차도 방향을 알 수 없는 괴상한 패스를 한다. 인사이드 패스를 제기차기하듯이 하면 진짜 최고로 웃긴 자세가 나오는데, 연습할 때는 잘 되다가 시합에 들어가면 허둥대다 제기차기를 해버리고 만다.


풋살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3개월, 못하는 건 당연하다. 근데 나는 지금 내 실력이 불만스러운 것이 아니다. 내 폼이 매우 불만스럽다. 폼이 멋진 체육인이 되고 싶다. 멋진(올바른) 폼은 모든 운동의 기본이니까. 폼이 이상한데 잘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폼이 멋진데 못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운동에서 폼이 전부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폼나는 생활체육인이 되고 싶다.


"나 뛰는 모습이 너무 웃겨요. 어떻게 해야 멋있어 보일까나?"

"하지만 그 모습이 그대로 귀여운걸요."

"으악, 나는 멋있고 싶다구!"

"계속 하다 보면 폼이 올라오는 날이 올 거예요."


나를 풋살로 이끈 P님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귀엽다 괜찮다 하다 보면 된다'라는, 국영수를 중심으로 교과서만으로 공부한 수능 만점자 같은 답을 해줬다. 그런데 정말 답은 그것밖에 없다는 걸 나도 안다. 게다가 배를 내밀고 팔자걸음을 걷는다거나 뛸 때 양팔을 흐느적거리면서 나풀거리는 건 이미 너무 오래 몸에 밴 습관 같은 거라서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연습할 때 의식적으로 신경을 써볼까 싶다가도, 그러면 또 정신이 딴데 팔려서 정작 배워야 할 것들을 놓칠지도 모른다. 게다가 시합을 할 때는 당장 저 공을 막아야 해! 저 공을 넣어야 해! 그 생각에만 몰두하느라 사실 눈에 뵈는 게(딴 생각할 겨를이) 없다.


테니스를 배우려고 처음 마음 먹었을 때, 테니스라는 스포츠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어서 경기 룰 같은 걸 검색해보고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그랜드슬램 경기를 보게 됐다. 내가 망설이지 않고 아파트 테니스장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선수들 덕분이다. 진짜, 말 그대로 존나 멋있더라. 라켓을 휘두를 때, 리턴 자세를 취할 때, 스텝을 옮길 때, 스매싱을 꽂을 때, 이건 무슨 나비 한 마리가 눈앞에서 인간을 농락하며 피루룰루드리릴루(이게 뭔 의태어냐) 날쌔게 비행하는 것 같았다. 아, 스포츠를 배우면 저렇게 멋있을 수 있나 보다!...라고 멋대로 오해해버린 뒤 라켓을 잡았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여러분이 아는 대로다(운동 드럽게 못하는 사람 이야기).

나도 폼나고 싶다....


그래, 운동선수의 멋진 폼은 유소년 시기부터 오랫동안 꾸준하게 이어온 훈련으로 다져진 것이지, 나 같은 일반인은 가질 수 없는 것이야!...라고 생각하기에는 주변에 폼이 멋진 생활테니스인과 생활풋살인이 너무나 많다. 그렇다면 이 낙지 같은 흐느적거림은 그냥 타고난 것일까. 나는 영원히 멋진 체육인의 자세를 갖지 못하는 것일까(비록 P님이 계속 하다 보면 나아질 거라고 했음에도). 그렇게 생각하니 매우 풀이 죽어버렸다. 나는 몹시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니까 누가 나를 쳐다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쩌다 내가 나를 봤을 때 웃겨 죽을 것 같은 자세로 흐느적거리고 있진 않았으면 좋겠어...


내게 롤모델이 있으면 좋겠다. 나처럼 몸이 무겁고 둔둔하고 자세가 이상하고 어설펐던 일반인이 꾸준하고 열심한 노력과 훈련으로 멋진 폼을 갖게 된 그런 사례가 어딘가엔 있지 않을까. 있겠지? 있을까? 어쩌면 일본 스포츠 만화 속에 있을지도?(없다면 당장 그려주세요 코리안 만화 작가님들...) 근데 나 지금 운동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뒷전이고 '멋있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하지만 스포츠의 반 이상은 '멋'이잖아!(아님주의) 멋있어지고 싶다 보면, 잘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거야!!(급해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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