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일 차 / 프로미스타~카리온 데 로스콘데스)
오늘(10.10)은 프로미스타(Fromista)를 출발하여 ▷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ion de los Condes)까지 총 18.8km를 4시간 30분 동안에 이동하면서 3만 7천 보를 걸었다. 거리는 짧지만 지루한 순례길이라서 순례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걸었다.
우리 부부는 프로미스타 마을을 벗어나 A-67 고가도로를 건너서 차로의 옆길을 따라 나있는 비포장도로를 걷다가 이스라엘에서 왔다는 젊은 여성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기독교 신자로서 예루살렘, 로마, 산티아고의 3대 순례길을 완주하는 것이 자기의 버킷리스트라고 말했다.
예루살렘 순례길은 600미터 정도로 짧아서 거의 일상적으로 순례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산티아고 프랑스 길을 40일 동안 완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외국으로 자유여행을 하려면 우선 그 나라의 언어에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외국어를 배우기로 했다. 5년 전에 현직에서 퇴직한 후 나는 중국 전역을 배낭여행으로 소화한다는 원대한 희망을 버킷리스트에 올려놓고 실천에 들어갔다. 65세 때 주민복지센터에서 중국어를 2년 동안 배우고 장도에 올랐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내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해 소통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고 크게 실망했다.
그 원인은 내가 배운 중국어는 표준어인 북경어였고, 내가 자유여행을 갔던 지방은 광동지방이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광동지방에는 북경어와는 생판 다른 광둥어가 따로 있었기에 의사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자유여행의 성격상 오지를 찾아가 느긋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그 오지에는 소수민족이 살고 있었기에 그들의 고유한 언어를 모르는 나는 그들과 소통하는데 애로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많은 여행자들이 꿈의 도시라고 부르는 "상그릴라"까지 다녀왔다. 전체적으로 중국 자유여행은 4회 135일 동안 다녀왔지만, 앞으로도 두 번, 두 달 동안 더 다녀오고 싶다.
브라질을 여행할 때도 포르투갈어를 몰라 고생깨나 경험했다. 영어로는 거의 소통이 안 돼 혼난 적이 있다. 포르투갈어는 태어나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이다. 상파울루에서 이과수 폭포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넘어갔을 때 그 나라는 스페인어를 쓰고 있어서 고생깨나 하고 돌아다녔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고 낯부끄럽다.
산티아고 프랑스 길은 스페인 북부를 횡단하지만 유럽이라서 스페인어를 몰라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영어를 쓴다는 것은 북경어를 광둥지방에서 사용하며 여행하는 것과 다름없이 불편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5년 전 과거와는 지금의 여건은 변해서 통역을 해주는 휴대폰 앱이 여행하는 그 나라 말을 한마디도 몰라도 지구촌 구석구석을 배낭여행 할 수 있게 세상이 바뀌었다.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더욱 신나는 것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은 거의 자기네 국어와 영어는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서 소통에 애로가 거의 사라졌다. 다만, 알베르게나 식당에 가면 스페인어만 말할 줄 아는 그 지방 출신인 종업원과 말할 때에는 휴대폰 통역기에 대고 말하면 통역을 해주니 여간 편리하지가 않다. 요즈음에 와서 느낀 점은 지난 40년간 영어를 공부하는데 너무나 많은 돈과 시간을 퍼붓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그 성과는 크게 활용하지 못한 사실이 생각할수록 억울하기만 하다.
평소보다 느긋하게 걸었지만 코스가 짧은 관계로 12시쯤 중간 목적지인 '비얄카사르 데 시르가'에 도착했다. 이 마을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은 13세기 템플기사단 (Templar Knights)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기사단이 성당을 짓던 도중 건축용 석재를 도난당했는데 한 순례자가 범인으로 몰렸다. 그가 교수형 당하려는 순간 성모 마리아가 그의 발밑에 건축용 돌을 놓아주며 목숨을 건지고 무죄를 입증했다는 전설이 있다.
성당에 있는 성모상이 마치 임신한 것처럼 조각된 것 때문에 논란을 일으켰다. 그 실체를 살펴보니 정말 그녀의 배가 많이 부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성모 마리아는 생전에 임신하지 말란 법이라도 있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너무 특이해서 순례객들의 이목을 불러 모으기에는 성공했다.
(좌) 산타마리아 성당 (우) 임산부로 표현되어 문제가 된 성모상
템플기사단은 중세 유럽의 기독교 군사 기사단 중 하나로, 1119년에 설립되었다. 이 단체는 원래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는 기독교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템플기사단은 군사 활동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힘도 강력했다. 템플기사단은 주로 성지(예루살렘)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방어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십자군 원정 동안에는 중요한 군사적 역할을 맡았으며, 성지와 유럽 간의 교통로를 보호했다.
템플기사단은 중세 유럽에서 최초로 은행과 유사한 시스템을 개발했다. 순례자들이 안전하게 돈을 보관하고 인출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대출과 같은 금융 서비스도 제공했다. 따라서 그들은 거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많은 유럽 왕들과 귀족들이 이들로부터 자금을 빌렸을 정도였다. 템플기사단은 유럽과 중동에 많은 성채, 교회, 그리고 기타 방어 시설을 건설하여 힘을 축적해 나갔다. 이들은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유명하며, 일부 건축물은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다.
1307년, 프랑스의 필립 4세는 템플기사단을 해체시키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려 했다. 그는 기사단원들을 이단으로 몰아붙여 많은 기사단을 고문하고 처형하였다. 1312년, 교황 클레멘스 5세는 공식적으로 템플기사단을 해산시켰다. 이 사건으로 템플기사단들의 재산은 다른 기사단이나 국가로 이양되었다.
스페인에서도 템플기사단은 성을 건설하고, 기독교 세력을 지원했다. 그들의 주요 임무는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스페인 땅을 되찾는 것이었기 때문에 스페인의 재정복운동(Reconquista)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스페인에 소재한 템플기사단도 14세기 초에 해산되었으나, 그들의 유산은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큰 흔적을 남겼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마을의 전설에 따르면 중세 시대에 ‘산 조일로’ 수도원은 종교 및 문화 중심지였으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여행하는 순례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중병에 걸려 죽음 직전인 소년 순례자의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 오고 있다. 경건함과 의학적 지식으로 유명한 수도사들은 소년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지만 그의 상태는 계속 악화되었다.
어느 날 밤 수도사들이 신의 구원을 간절히 기도하던 중 '성 조일로' 자신이 젊은 순례자에게 환상으로 나타났다. 3세기에 순교하여 수도원의 수호성인으로 존경받았던 '성 조일로'는 소년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그의 이마를 만지고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소년은 완전히 치유되었고, 열이 내리고 힘은 회복되었다. 이 기적적인 치유는 '성 조일로'의 중재로 인한 것으로 여겨졌고, 이 이야기는 순례자와 마을 사람들 사이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 마을에 관한 또 다른 전설은 산타 마리아 델 카미노 교회와 관련이 있다. 기독교 세력이 무어인의 지배에서 스페인을 되찾기 위해 싸우던 레콩키스타 동안 무어 군인들이 교회를 모독하려고 시도했다.
그들이 교회에 들어가려고 하자 교회 안에 있던 성모 마리아상이 움직여 입구를 막아서 그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두려움과 경외감에 사로잡힌 군인들은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이 사건은 신의 보호 행위로 여겨졌고, 이 교회는 성모 마리아의 축복을 구하는 순례자들에게 존경받는 장소가 되었다.
1987년 유럽 평의회(EU)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첫 번째 ‘유럽 문화의 여정’으로 선포했다. 1993년 유네스코는 스페인의 ‘프랑스 길 ’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1998년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연결된 프랑스의 역사 유적지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순례자들에게는 나름대로 여정계획과 목표를 가지고 걷는다. 나는 하루 평균 25킬로미터 걸어서 33일 만에 완주를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루 평균 대 여섯 시간 이상씩 걷는다고, 가정하면 백만보 이상을 걸어야 한다는 완주하게 된다.
순례자들은 노란색 가리비와 500미터마다 나타나는 공식적인 이정표와 비공식적인 보조 이정표를 따라가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이정표는 기차의 레일과 같이 분명해서 이정표대로 따라가면 안전하고 편리하다. 이정표를 무시하고 걸으면 기차처럼 탈선하게 된다.
순례길의 이정표는 지상의 등대이고 기차 레일처럼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순례자에게 이정표는 가리키는 대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가라면 가야 하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나침판이나 다름이 아니다. 아무리 길치라 해도 눈에 익숙한 노란색 이정표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면 최소한 길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휴대폰을 즐기며 걷거나 다른 생각을 하면서 걸으면 길을 잃고 고생하게 될 것이다.
순례길 이정표는 가끔씩 다른 모습으로 순례자를 안내한다. 이는 지나가는 장소의 지방자치단체가 달라서 그 안내 방식이 기본틀을 벗어나기 때문에 초래된 현상이다. 순례자들은 150에서 300 미터마다 몽당 빗자루에 페인트를 묻혀 성의 없이 그려져 있지만, 어쩌면 덜 예쁘게 그려진 화살표이긴 하지만 방향을 잡는 데는 지장이 없다.
상형문자 같은 방향표시라 해도 순례자들은 그것에 순응하면 된다. 순례자들은 이정표의 노예들 같이 꼼짝 못 하고 이정표를 따라가야 한다. 만약에 도둑이나 강도들이 이 같은 노란 이정표를 임의로 그려서 순례자를 유인하면 꼼짝없이 털릴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의심이 많은 나만의 기우가 아니라 실제로 그런 일이 없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 노란색 화살표는 1984년 엘리아스 발리냐(Elías Valiña)라는 신부가 창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화살표는 전봇대와 건물 벽에도 바위에도 아스팔트 땅바닥에도 아니 비포장 도로 위에도 자갈로 ㅘ살표가 그려져 있다. 마을지도와 알베르게 광고게시판에도 그려져 순례자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경로를 보여 주는 지도에서 갈림길에서 순례자가 갈 방향을 안내하고 있다. 갈림길에는 통상 <원래길>과 <대안길>이 있다. <대안길>은 순례자의 안전을 고려하여 만든 길로써 원래길보다는 거리가 대체로 멀다. 대다수 순례길을 처음 걷는 순례자들은 짧고 편한 <원래길>을 택하고 두 번 이상 순례하는 사람은 <대안길>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순례길의 이정표를 따라가기만 하면 목표점에 어렵지 않게 도달한다. 그것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면 목표에 도달하고 자기 멋대로 길을 걸으면 길을 잃어버려서 불행한 여행을 한다는 교훈을 알려 주는 것 같다.
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 때문에 한눈을 팔지 말고 일로 매진해야 한다는 계시인지도 모르겠다.
땅 위의 나침반인가? 등대인가?
카리스마가 넘치는 가이드인가?
순례자들이여!
이정표가 시키는 대로 하시게나.
이정표만 따라가면 길을 잃지 않으리
그게 산티아고가 내리신 길이라네.
순례길을 걸으면 추억이 되고, 걷는 자 마음에 혁명이 일어나리라.
(삼성창업자 이병철의) 질문 10. 영혼이란 무엇인가?
차 동엽 신부는 그리스 철학을 자연 철학에서 출발한다고 전제하며 '영혼'의 존재를 긍정한다. 모든 생물의 중심에는 생혼(生魂)이 있으며, 동물에게는 생혼과 보고 느끼고 감각하는 각혼(覺魂)이 있다. 한편, 사람에게는 생혼과 각혼과 영혼(靈魂)이 있다.
이 영혼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비물질적인 측면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영혼은 인간의 육체와 구별되는 영적이고 불멸의 요소로, 삶의 본질과 정체성을 나타낸다. 영혼은 사람의 감정, 생각, 의지, 도덕적 성향, 그리고 인격과 같은 정신적 특성을 대표한다고 말한다(차동엽:질문 10에 대한 답변).
이에 대하여 김안제 교수는 '영혼'은 육체 속에 깃든 비물질적인 정신세계라고 설명한다. 그는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영혼은 육체와 공존하지만 사후에는 육체와 함께 사라진다는 설과 불교나 천주교에서처럼 그대로 천계에 들어간다는 설이 있지만, 사후에도 영혼이 존재하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김안제:754).
이어령교수는 그릇은 보디, 그릇을 채우는 욕망이 마인드. 그릇이 깨지면 담겨 있던 게 다 쏟아지듯 죽으면 육체도 욕망도 다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깨지고 쏟아져도 남아 있는 빈 공간, 모든 그릇의 비어 있는 부분은 보이드. 그게 스피릿(영혼)이다. 스피릿은 우주의 것이다. 내가 죽어도 내 안에 있던 우주의 스피릿은 남아 있다. 그래서 영성이 중요한 거다. 몸뚱이도 내 것이고 마음도 내 것이지만 그 영혼만은 내 것이 아니다(이어령: 40-42).
종교 및 철학계에서는 영혼의 존재를 인식하고 긍정하고 있다.
첫째, 많은 종교에서는 영혼이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특히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는 영혼 불멸을 강조하며, 죽음 이후의 삶이나 윤회 등의 개념을 통해 영혼이 계속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영혼은 단순히 의식과 정신을 초월하여 인간의 본질적인 자아 또는 진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은 육체와 물질세계를 넘어선 고유의 가치인 영혼의 존재를 긍정한다.
셋째, 종교에서 '영혼'은 신성한 존재, 우주의 근원 또는 절대적 진리와 연결되는 요소라고 인식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와 유대교에서는 영혼이 하느님이 불어넣은 생명의 본질이라고 여기며, 불교에서는 개인의 집착과 고통에서 벗어나 참된 자아를 깨닫기 위한 길로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영혼'은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삶의 깊은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게 하는 원천으로 여기며, 이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과 더불어 인간 존재의 신비를 이해하려는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Copyrightⓒ소울메이트 이주희 All rights reserved. 이 글의 무단전재는 금지하지만 공유는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