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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Oct 23. 2024

『산티아고 순례길 인문기행』
25. 노천화장실 사용법

     (제23일 차 / 아스토르가~폰세바돈)

돈)

 ♧ 오늘의 코스 


오늘(10.18)의 코스는 해발 800m 아스토르가(Astorga)를 출발하여 ▷ 무리아스 데레치발도(Murias de Rechivaldo) ▷ 산타카 탈리나 데 소모사(Santa Catalina de Somoza) ▷ 엘 간소(Ganso) ▷ 라비날 델 카미노(Rabanal del Camino) ▷ 해발 1430m의 폰세바돈(Foncebadon)까지 25.8km를 6시간 동안 동안 4만 5천3백 보 가까이 걸었다해발 800m의 평지 길부터 시작해 엘 간소(Ganso)부터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라서 약간 힘이 들었다.  

 

    ♧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 


 순례길이 숲으로 깊숙하게 뻣어간다. 야생동물이 출몰할 만한 산세이다. 숲 속에 도토리나무들이 비바람에 힘겹게 견뎌내고 있었다. 비바람을 맞은 도토리들이 길목에 떨어져 발에 밝히며 순례자들에게 자기 존재를 알려주고 있었다. 어릴 적 고향에서 산으로 도토리나 밤을 주우려고 산속을 헤매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난했던 시절, 먹거리가 부족해서 가을 깊은 산속에서 도토리를 주워가면 어머니는 갈아서 묵을 쒀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게 된 뒤에도 도토리묵이 생각나서 서울 인근의 도봉산에서 도토리를 주어다 어머니께 묵을 쒀 달라고 졸랐지만 이제 90세를 넘긴 어머니는 힘이 들어서 도토리 묵을 


묵을 쑤지 못하겠다면서 요즈음에는 먹거리가 쌔고 쌨으니 도토리는 더 이상 주워오지 말라 하셨다. 어머니는 다람쥐와 멧돼지 먹이로 남겨 두라고 공무원 같은 말씀을 하셨다. 알밤들이 비와 소슬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길섶에 “툭- 투-투-투-소리 내며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숲 속에서 알밤 떨어지는 소리를 오랜만에 들었다. 내 고향 지리산 중턱의 안개 깔린 숲길에서 듣던 소리였다. 밤송이에 밤톨이 떨어져 나올 때 처음에는 툭 하는 소리가 난다. 다음에는 나무 잎사귀에 몇 번 부딪히며 다이빙을 하면서 낙하한다. 

존재를 알리는 소리이지만 모체로부터 추락하는 소리지만 사람의 귀와 눈길을 모으는 부작용이 있다. 알밤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떨어지는 위치를 감 잡고 밤을 주워 배낭을 가득 채웠다. 할머니는 알밤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이제 철이 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순식간에 한 됫박 넘게 알밤을 주었다. 배낭이 무거워서 더 이상 주워 올 수도 없었다. 숙소에 와서 알밤을 삶아 까먹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밤과 도토리에 대한 추억이 뭉게구름처럼 솟아났지만 스페인의 낯선 마을에서 어머니를 생가 나게 한다. 먹거리를 요리할 수 없는 연세가 되어버린 어머니가 생각난다. 


15년 전에 세상을 떠나서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할머니도 오늘따라 그리워진다.   


       

♧ 순례길에서 생각나는 은사님


   대학원 동기 카톡 방에서 은사이신 K교수께서 별세하셨다는 부음이 올라왔다.  가톨릭 신도이신 은사님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는 것이 버킷리스트에 있는데 86세라 건강에 문제가 생겨 순례길을 걷지 못하니 나 대신 자네가 다녀와서 보고 들은 것을 얘기로 전해 달라고 부탁하셨는데...


나는 첫 직장인 서울대학교 연구소에서 소장으로 5년 동안 모시며 가르침을 받았고 그 후에도 학회와 사회 활동에서도 자주 모시고 일했다. 고인은 누구에게나 마냥 자상하셨는데 내 결혼에도 관심이 많아 신붓감도 서넛이나 소개해 주셨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 덕분에 아내가 나를 간택(?)하는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  1983년 초반에 당시 32세 노총각으로 빌빌 대던 나에게 연애는 안 하면서 맞선 건수만 올리지 말고 60%만 마음에 들면 결혼해서 20%는 사후에 채우라고 충고하셨다. 어치피 100% 맞는 부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인은 서울 대학 총장인 자기 친구는 배우자 소개를  2백 번이나 받다가  하나 골라 결혼했지만, 맞선 세 번 만에 결혼 한 자기 부인이 총장 부인보다 더 나은 것 같다고 농담을 하셨다. 배필을 너무 고르다가 좋은 여자를 차지하지 못하고 남 좋은 일만 시킨다고 결혼을 독려하셨다.  


고인은 40대 중반 시절부터 주례를 맡았는데 내가 결혼할 때까지는 아홉 번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의 진의를 알아차리고 나의 결혼식 주례를 부탁드렸다. 그러나 고인은  자고로 주례는 기관장이 서야 나의 장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사양하시고 대학원장께 부탁드리라고 말씀하셨다. 


말씀대로 대학원장께 주례를 부탁했는데 내 결혼식 날,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던 날이라서 광화문 일대 교통이 통제됨을 예상하여 신랑과 신부는 세 시간 전에 결혼식장에 도착해서 주례 선생님이 지각하지 않으시기를 기도 했다.  결혼식장이 광화문을 통과해야 갈 수 있는 세검정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학교가 있는 신림동에서 오기란 현기증이 날 정도로 걱정이 태산 같았다.   


레이건 대통령의 전용차가 통과하는 광화문 일대에 교통이 통제되자 주례인 대학원장이 당신보다 늦게 출발하였기 때문에 어쩌면 결혼식장에도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할 것을 예상하여 고인께서 자기라도 주례를 대리로 서야겠다고 생각하고서 승용차 안에서 주례사를 준비하시어 결혼식장에는 5분 전에 도착하셨다. 


그러나 늦게 도착할 줄 알았던 주례이신 대학원 원장님은 먼저 도착하셔서 늦게 도착한 자칭 대리 주례에게 '일찍 떠나서 늦게 도착하는 기술' 좀 배우자고 고인에게 약을 올리셨다.  고인은 주례 기록에 한 건을 보태 10건을 만들려고 했지만 못하게 되어 섭하지만 혼례를 제시간에 올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씀하셨다. 

결혼식에 레이건 대통령까지 초대한 사람이 어디 있냐고 농담을 하시며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인은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자수성가하신 분으로 동숭동 판자촌에서 하늘이 보이는 방에서 공부하여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일생동안 많은 책을 읽고 쓰셨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평생 메모를 모아 A4 용지로 총 1천5백 페이지가 되는 두 권의 책을 자신의 백서로 남기셨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서 일생동안 바뜨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상의 반복되는 일조차도 시간대별로 메모로 남겼다.  고인은 “기억은 짧고 기록은 길다”는 신념으로 깨알같이 기록해서 개인의 역사를 자기 아호를 넣어 'XX백서'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그동안 메모한 종이를 전주의 유명 제지 회사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고인이 펴낸 자기 백서를 읽으면 현대사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하게 메모되어 있었다. 예컨대, 초등학교 4학년부터 80세까지 일생동안 피운 담배는 2만 5000 갑, 음주량을 소주로 환산해서 2만 3천 병이나 마셨다 한다. 고인은 평생 196번의 결혼 주례를 섰고. 탐독한 소설은 2,213권, 골프를 친 횟수는 1,055회였다는 기록도 있었다. 


해외여행은 59개국을 다녀오셨고, 일생을 보행 걸음수가 115,253 천보, 보행 거리는 79,229Km라고 개인 백서에 기록하고 있다.  다른 기록은 거의 따라잡을 수 없겠지만 일생동안 걸은 걸음 수만큼은 은사님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2년 전에 중국 자유여행 135일 동안 하루 평균 2만 보로 치면 총 2백7십만 보와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를 전제로 한다면 1백만 보가 플러스되기 때문에 은사님의 기록을 추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순례를 마치면 한국에 돌아가서 선생님께 자랑하려고 했는데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아무튼 고인은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메모광으로서 한국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 나도 은사님의 메모 습관을 벤치마킹해서 책과 논문, 소설과 수필 등을 쓰는 작가가 되어 잘 활용하고 있다. 


  고인께서는 자기의 백서에서 <천계 실상>을 추론하는 기록을 남기셨다. 삼성그룹의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이 별세하기 전에 종교나 신앙에 대한 25개의 의문사항을 천주교단에 질문을 했었는데 대답을 하지 않다가  24년 후에 차동엽 신부님이 답변서를 담아  잊혀진 질문들』 이라는 책으로 출판했는데 그로부터 5년 후에 고인도 자기 견해를 자기 자전에 넣어 출판하신 분이다. 


 순례길을 걷다 보니 조문을 갈 수 없는 형편이라서 성당에 들려서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렸다.  

"선생님 부디 천계(天界)에서 하고 싶다고 백서에 열거한 일들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멀리 있어서 장례에 참석하지 못함을 죄송하게 생각하며 천계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선생님 부디 영면하소서! "   

   

♣ 노천화장실 사용설명서


  순례길에서 순례 중 가장 큰 문제는 공중화장실이다. 공중화장실 서비스가 우리나라처럼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순례자는 매일 어디서 배설할 것이냐? 가 매우 중요한 과제의 하나다. 전체 800km 구간 중 최장 11km를 지나도 공중화장실을 찾을 수 없는 구간도 있다. 


순례자들은 장기간 물을 갈아먹기 때문에 생긴 배탈 환자, 전립선을 앓는 시니어들, 또는 요실금을 앓고 있는 여성들, 아직은 뻔뻔함을 몸에 익히지 못한 젊은 여성들은 하나같이 대소변 장소 때문에 하루 종일 스트레스를 받는다. 매일 평균 25km를 걸어야 하는데 통과하는 마을에는 화장실은 있지만 개방을 안 하며, 들이나 산길에는 공중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 순례자들을 긴장하게 만든다.  그건 우리 국민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2023년 8월 전 세계 젊은이 45,000명이 참가한 새만금 잼버리 대회에서 가장 불만이 많이 제기된 시설이 화장실이었다. 인간에게 화장실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유고는 말했다. “인류 역사는 곧 화장실의 역사”라고.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몇 가지 팁을 경험을 바탕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숙소의 화장실에서 큰 일을 치루자.  다시말하면 선 큰일, 후 순례를 하자는 것이 내가 주장하는 바이다. 숙소에 있는 화장실은 비교적 깨끗하고 쾌적한 시설이므로 최대한 이용하고 체크아웃하자. 숙소에서  큰 것을 의무적으로 해결하고 순례길을 걷자. 


둘째, 음식점이나 상점의 화장실을 보면 지나치지 말자. 음식점이나 편의점에서는 자기 고객들에게는 무료로 제공하면서 열쇠나 비밀번호를 사용하게 한다. 음식은 먹지 않고 화장실만 이용하는 고객들은 0.5€에서 1€의 사용료를 받고 있지만 그 작은 돈 때문에 큰일을 그르치면 안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 앞에서 줄을 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리기 때문에 긴장되어 큰 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속담처럼 화장실이 눈에 띄는 대로 유료이든 무료이든 무조건 크고 작은 일을 봐두는 것이 순례자의 가슴에 평화가 깃들게 하는 최상책이 될 것이다.  


셋째,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 주는 공공장소의 무료 화장실을 이용하자. 관공서나 성당, 호텔이나 알베르게 로비, 주유소의 무료 화장실에서 큰일을 해결하고 나면 하루가 즐겁다. 문제는 공공장소의 화장실 문을 카드로 열 수 있도록 장치를 한 곳도 있지만 예외가 더 많다는 사실이 우리를 기쁘게 만든다. 


넷째, 야외에서 큰일을 보는데 필요한 용품 세트를 항상 배낭에 넣고 걷자. 밑을 닦기 위한 휴지, 손을 닦기 위한 물티슈나 손소독제, 생리에 대비한 생리대, 우천 시나 강력한 햇빛을 차단하거나 남의 이목을 눈가림하는 데 필요한 우산, 큰일을 하는 동안 악취를 차단하는 마스크, 큰일을 보면서 만든 배설물을 담을 비닐봉지를 준비하여야 한다.

 

다섯째, 순례자는 걷는 도중에 몸에서 ‘배설하라’는 예보가 나타나면 배설을 위해 명당자리를 조용히 찾아야 한다. 여기서, 명당이란 당연히 남의 눈에 띄지 않고 긴장감을 최소화하여 볼 일을 충분하게 볼 수 있는 비밀의 공간을 말한다. 


그 공간을 찾는 데는 천공이나 지공과 같은 지관의 안목은 없어도 된다. 봄이나 여름에는 끝이 뵈지 않는 넓고 넓은 밀밭, 포도밭, 올리브밭, 옥수수밭, 해바라기 밭에 들어가서 볼일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한편,  농작물을 걷어낸 가을과 겨울의 허허벌판에서 큰일을 볼만한 아담한 명당을 발견하기는 그렇게 쉽지 않다. 구간별로 사정은 다르지만 밀집 낟가리나, 몇 그루 나무들이 뜬금없이 우거져 있는 곳에서 큰일을 봐야 한다. 


숲이나 인공물이 별로 없는 허허벌판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여성들은 큰 고민에 휩 쌓이게 된다. 자기 스커트를 가림막으로 쓰거나 우산으로 아랫도리를 가린 채로 배설로 인한 체면을 약간은 지키면서 확률이 낮은 비상사태를 쑥스럽게 수습할 수도 있다. 


순례길에 따로 공중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벌판에서 만나는 밀짚 낟가리는 인간의 수치심을 덜어주는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순례자들이 시급한 개인적 용무(?)를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좋은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급해도 양반집 자식으로서 아무도 보이지 않는 후미진 곳을 찾아가는 순례자들이 몇 명이 어슬렁어슬렁 두리번거린다. 낟가리 뒤편으로 돌아가서 순례길에 공중화장실을 설치하지 않는 스페인 지방정부가 행정서비스가 억망이라고 성토하면서 자연에 배설하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한 달간 자연인으로 산다는 것이 이런 것 아니겠냐고 자위해야 한다. 문제는 내게 큰일을 보는데 명당은 에게도 명당이기 때문에 행운은 독차지할 수 없다. 좋은 자리는 경쟁이 치열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선점한 사람이 일을 끝낼때까지 내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다.  어차피 동고동락, 홀아비 사정 과부가 챙긴다는 사실, 매우 쑥스럽지만 노천화장실 공동체의 멤버가 되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쪼그리고 앉아서 현안을 해결하는 넉살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남자로 태어나게 배려해 주신 하느님께 무한 감사드린다. 여자로 태어났더라면 그 불편함을 어찌 감수하랴! 70 노인의 주책바가지 같은 안티 페미니스트쯤으로 평가절하하지 말기 바란다. 


  여섯째. 순례자가 뜸한 곳을 찾아 큰일을 치르자. 순례길에는 가는 사람은 많지만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은 전혀 없기 때문에 한쪽 방향만 신경을 쓰면 된다. 이것은 신의 배려이므로 감사해야 한다. 야외에서 큰일을 볼 장소를 찾으려면 시간적 여유를 갖고 준비를 해야 한다.


일단 뒤 따라오는 순례자들을 은근하게 체크해야 한다. 적어도 100m 후방에 순례자가 오지 않으면 가까운 밭이나 숲에 들어가서 중요한 일을 급한 대로 처리할 수 있다. 순례길에서 동료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실종신고를 하거나 공개수배를 하지 말기 바란다. 


우리가 행불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큰일을 보려고 순례대열에서 감쪽같이 이탈하여 명당을 찾아서 지극히 사적인 일을 시원하게 해결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몇 분만 기다리면 평화스러운 얼굴로 조용히 나타나서 당신의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일곱째, 벌판에 배낭을 벗어서 눕혀두거나 보초를 세워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아야 한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주인 없는 배낭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배낭 주인은 그곳으로부터 반경 약 50m 이내에서 큰일을 보고 있는 중일 경우가 10중 8,9는 될 것이다. 선점하고 있다는 의사표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임자 없는 배낭이 아니라 그 임자는 큰일을 보고 사실을 공고하고 있는 중이다. 어떤 순례자는 휴대폰으로 음악을 크게 틀어서 자기의 존재를 타인에게 알려주는 방법도 동원해야 한다. 어느 날 용변이 급한 프랑스 중년여성이 나에게 보초를 서 달라고 스스럼없이 부탁했다. 


순간적으로 망설였지만 평생을 여성에게는 항상 친절하라는 조상의 유언을 모토로 살아온 나였기 때문에 이름도 성도 모르는 여인이 큰일을 마칠 때까지 보초를 서주는 벌을 받아야 했다. 


“더 웨이”라는 미국 영화를 보면 여자 한 명에 세 남자가 한조가 되어 길을 걷다가  여성이 볼일을 볼 때에는 남자 셋이 일렬로 서서 그녀의 가림막이 되어 주고, 세 남자가 한꺼번에 볼일을 볼 때는 여성이 망을 봐주는 품앗이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내가 질투의 핵주먹으로 나를 공격해 왔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외간 여자의 노천화장실 보초나 서주려고 순례길에 따라왔냐고! 질투는 사랑의 최상급행태라고 믿고 살았지만 나로서는 역지사지하라는 말로 아내를 나무랐다. 하지만 1시간 후에 그녀를 어떤 마을의 레스토랑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우리 부부에게 보초를 서주셔서 고맙다며 맥주를 한잔 내밀었다. 아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여보 내일도 모르는 여자의 보초 서주는 알바로 맥주 한 잔 공짜로 마십시다요!”


   여덟째, 숲 속에서 큰일을 볼 때 야생동물이나 해충들을 조심하자. 은밀해서 안심이 되는 숲 속을 찾아들어가는 순간 다른 순례자들이 큰일을 보면서 만들어 놓은 지뢰가 매설되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순례자들이 내질러 놓은 대변 무더기들이 악취를 풍기며 쇠파리들의 축제를 목격하게 된다. 또한 볼일을 하는 동안 조우하게 되는 들개, 들고양이 뱀 같은 야생동물의 출연에 놀리지 마시라. 이들을 공략하는데 필요한 스틱을 휴대하면 그것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어서 생명을 보전할 수 있다. 


 봄, 여름, 가을철에는 들판이나 산의 숲 속에서 만나는 벌, 개미, 전갈, 벼룩, 파리 등 독충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아홉째, 숲이나 밭에서 용변을 볼 때에는 스틱으로 구덩이를 파고 큰일을 본 후에는 흙으로 덮고 현장을 떠나자. 뒷처리를 잘하는 인간이 돈도 잘 번다는 말을 듣지 않았는가? 구덩이를 파고 배설한 후에 덮으려면 도구가 필요한데 가진 도구가 없으므로 자기의 스틱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스틱으로 구덩이를 파기 어려운 경우에는 땅에 반쯤 묻힌 조그만 바위를 들추어내면 만들어진 공간에 내 몸의 일부를 배출을 하면 된다. 쭈그려서 용변을 보기가 어려운 비탈진 땅에서는 고목에 걸터앉아  일을 보면 여간 편하지 않다.


   열 번째, 용변하고 나서 사용한 휴지나 티슈, 생리대 등을 비닐봉지에 넣어가지고 마을의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스스로 만든 쓰레기는 가져가야 하고, 큰일을 하고 끝낸 자리는 흙으로 덮어서 흔적을 최소화해야 한다. 가끔씩 발견하는 팻말형 간판을 발견할 수 있다. 

노천화장실을 이용하는 순례자들 

 “당신의 발자국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마라.” 이것이야말로 지구 환경보전을 실천하는 행동이다. 서양 순례자들은 자신의 배설물을 비닐봉지에 담아 마을의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기도 한다. 


  이는 애견견의 배설물을 견주가 가져가는 것과 같은 환경보호를 염두에 둔 순례자의 거룩한 행 아니겠는가? 자연인으로 살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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