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알 수 있었다.
“이 아이는 말을 할 수 있어요. 말을 안 하고 있을 뿐이지. 아이가 이곳에서 잠이 들었어요. 매일 가슴을 비워 둔 이유가 있었나 봐요.”
한은 기쁜 듯했다.
며칠이 지나도 아이는 잠에서 깰 생각을 하지 않았다.
“큰일이에요. 아이가 잠에서 깨질 않아. 숨은 쉬고 있는데.”
문득 한은 열려 있는 자신의 가슴이 아이를 지키기에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지키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그러자 그의 손등에는 작은 새싹이 자라났다.
“이게 뭐지?”
처음에는 풀잎이 묻은 줄 알았던 그는 나중에는 자신의 몸에 새싹이 났음을 알아챘다. 하지만 그 새싹이 왜 자라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주 억센 새싹이야.”
억센 새싹은 가슴 안에도 자랐다. 새싹은 천천히 자랐다. 아주 느리게 자랐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아이는 조금도 자라지 않았다.
“아이는 늘 잠들어 있어요.
아이야, 너의 마음을 확인해 봐도 되니?”
하지만 아이는 자란 새싹을 덮은 채 웅크린 상태로 잠에서 깨지 않았다.
“아이가 가슴 깊게 파고들어 있어서 쉽게 볼 수가 없어요.
난 단지 너의 가슴에도 구멍이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인데.”
그는 아이를 깨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이는 눈을 뜨면 늘 슬퍼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잠을 잘 때만큼은 편안해한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꼈다.
이제 한은 집에 도둑이 든다고 해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달려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점프를 하거나 허리를 숙이기도 어려웠다. 가슴 속에서 자고 있는 작은 아이 때문에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그는 방심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이제 구멍 난 가슴을 신경 쓰는 일도 그만두고 싶었다. 가슴이 쓸려도, 가려워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한의 가슴은 더 이상 아물지 못했다. 아니, 아물지 않기로 스스로 선택했으므로 아물지 않았다. 그의 삶 속 모든 것들은 그의 선택이었으므로 곧 그의 책임이었다. 한은 그렇게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모든 게 자신 때문이라면 아무도 미워할 수 없으니까.
한은 아픔을 피하고 싶었다. 많은 손으로 밀쳐지고 자신의 손으로 긁어낸 가슴의 상처로 아픔은 충분했다. 흉측함을 감수하고 아물기를 포기하자 비로소 가슴속 아픔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상을 잠시 걷어두고 아이와 함께 깊은 잠에 빠지는 날도 있었다.
“마음을 채우는 건 사치야.”
이 생각을 온몸이 받아들인 것일까.
이제는 새살이 어느 정도 자라 멈추었다. 오랫동안 공허했던 가슴은 작은 노력 없이도 더 이상 채워지지 않았다. 큰 구멍은 그렇게 아물지 않았다.
가슴 곳곳에도 새싹이 자라났다.
아이는 자라난 풀들을 이리저리 몸에 엉켜 놓으며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와 풀들이 서로를 붙잡고 있었다. 마치 잠시 자리를 비운 어미 해달이 미역으로 아기 해달을 감싸 놓은 것처럼 말이다. 덕분에 날이 갈수록 아이가 가슴 속에 있는 일상도 자연스럽고 편해졌다. 가슴 속 아이는 더이상 움직임에 큰 지장을 주지 않았다.
'새싹들이 뿌리를 깊게 내린 걸까, 그러면 이제 조금은 앞으로 나아가도 되지 않을까.'
한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