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베란다에는 며느리 고양이가 산다. 내 아들과 결혼한 건 아니지만, 어찌어찌 며느리가 되어 얹혀살고 있다(궁금한 독자는 이전에 쓴 글 '고양이가 며느리일 때 생기는 일'을 참고하시라). 그 며느리가 지난여름 낳은 손주 셋은 내 아들과 발가락도 닮지 않았다. 호시탐탐 주변을 맴돌던 치즈냥이 아빠인가 의심했지만, 손주들의 털 빛깔로 봐서는 우리 집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산아래에 사는 흰냥이 핏줄 같다. 유전자 검사는 안 해봤지만, 결과물을 보면 원인 제공한 자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아빠로 추정되는 흰냥이가 우리 집 주변에서 어슬렁거리진 않았다. 아마도 쓰리쓰리 요 녀석이 지 엄마 말 안 듣고 동네를 싸돌아다니다가 어린 나이에 덜컥 임신을 해버린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아직 자기 몸 건사할 만큼 몸집이 다 자라지도 못한 쓰리쓰리가 우리 집 처마 밑에서 몸을 풀었으니 가족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네 식구는 우리 바깥채(?)에 더부살이하는 가족이 되었다. 이 구역의 최고 연장자인 나는 실제적 집사인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식구로 인정한 녀석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흰 놈 두 마리는 '아리랑'과 '쓰리랑', 자기 엄마처럼 삼색이 섞인 녀석은 '아라리요'라고.
베란다에서 몸 붙여 살던 시절의 아리랑, 쓰리랑, 아라리요.
햄스터 같던 새끼들이 제법 귀여운 아깽이로 자라는 동안 두어 차례의 이소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멀리 가지 않았다. 워낙 우리 집 베란다가 안락하기도 했지만, 고양이를 아끼는 이웃집에서 마당과 접한 창고문을 살짝 열어놓고 지내서 이 녀석들의 아지트가 되었던 까닭도 있다. 우리 집 아니면 이웃집, 이웃집 아니면 우리 집. 그도 아니면 근처 풀숲. 그렇게 오가며 아기들은 커갔다.
세 마리의 아기 고양이들은 어머니와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라고 이야기를 끝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남의 집에 얹혀사는 처지에서는 묘생이나 인생이나 녹록지 않은 법.
"엄마, 엄마! 저기 아기 고양이 있어. 엄청 귀여워."
"야옹아, 이리 와봐."
아기 고양이들이 천방지축 뛰어다니다가 아이들의 눈에 띄면 어미는 경계하며 하악질을 했다. 아무리 냄새 좋은 닭가슴살로 유인을 해도 사람들이 다가오면 줄행랑을 쳐라, 하고 가르쳤는지 아기 고양이들도 요리조리 잘 숨어다니다가 밥때가 되면 밥을 먹으러 왔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아리랑인지 쓰리랑인지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도망치다가 변을 당했는지, 추르의 유혹에 넘어가 냥줍을 당했는지 나는 모른다. 또 남아 있는 한 마리의 흰냥이의 꼬리는 반쯤 잘려 있었다.
가족이 사라지거나 다치는 중에도 고양이 가족의 하루하루는 평온해 보였다.
아리랑인지 쓰리랑인지 흰냥이 한 마리와 아라리요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사료를 오도독오도독 잘도 씹어먹으면서, 밥을 먹고 난 다음에는 후식처럼 지 에미를 넘어뜨리고는 젖을 빨았다. 새끼들이 밥을 먹는 동안 망을 보아주던 쓰리쓰리는 비록 독박육아에 자식 잃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날마다 밥때를 놓치지 않고 베란다에 나타나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며느리 밥 챙겨주러 나갔는데 손주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가서 놀고 있나 보지. 아무튼 어린것들이란 못 말려. 사람이든 고양이든 부르러 가지 않으면 안 된다니까.'
학교에 갔다 오면 가방 던져놓고 밖에 나가 놀던 수많은 개똥이들도 밥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야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던가. 그러나 쓰리쓰리는 새끼들을 부르지 않고 혼자 밥을 먹었다. 손주들은 그날 이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쓰리쓰리는 새끼들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망을 보면서 지켰다.
영역동물인 고양이들은 새끼가 어느 정도 크면 독립을 시킨다고 했다. 그럴 때 에미가 새끼를 내칠 수도 있고, 안정적인 급식처는 새끼에게 주고 에미가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경우도 있단다. 쓰리쓰리도 우리 집 베란다는 자기가 차지하고, 새끼들을 다른 곳으로 독립시킨 모양이다.
"아니, 벌써 그렇게 컸다고? 아직 아기 아니야?"
"고양이들이잖아. 넉 달이면 성묘지."
"와아아아!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자식을 쫓아내냐? 자기가 가야지."
"저거 진짜, 며느리는 며느리네. 모진 것 같으니라고."
남편과 나는 쓰리쓰리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세상천지가 얼마나 위험한데, 그 험지로 새끼들을 내몰다니. 그러고도 다리 뻗고 잠이 오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아라리요는 등에 흰 줄무늬가 있는 것까지 엄마를 쏙 빼닮았다. 코 주변에 검은 점이 귀여웠던 아이.
남편은 한동안 우울해 보였다. 자기 스스로도 "나 펫로스 증후군인가 봐."라고 했다. 혹시라도 아기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헤매고 다니지 않을까, 저녁마다 동네 이곳저곳을 탐색하고 다녔다. 그저 어디에서고 살아만 있어라, 밥이나 잘 얻어먹고 다녀라, 하고 마음으로 빌어주면서 지냈다.
베란다에 따로따로 주었던 밥그릇도 쓰리쓰리 것만 남겨놓고 다 치워버렸다. 그런데 쓰리쓰리가 먹고 나가면, 그와 똑같이 생긴 다른 삼색이가 쭈뼛거리며 들어오더라.
'아니, 저거슨!!!'
쓰리쓰리의 친정엄마, 나에게는 안사돈이다.
쓰리쓰리보다 너부데데한 얼굴, 쓰리쓰리가 아깽이일 때부터 가끔씩 함께 와서 밥을 먹고 갔던 바로 그 삼색이다. 하루이틀은 시간차를 두고 밥을 먹으러 오더니, 어느 날인가부터는 밥시간이 되면 두 모녀가 같이 나타난다. 자식을 내보낸 쓰리쓰리가 친정엄마를 봉양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안사돈! 외손주 잃고 얼마나 상심이 크시오? 거기서 그리 쭈그려 있지 마시고 당당히 들어와 드시구려.
사람의 잣대로, 특히나 도덕성이나 윤리라는 잣대로 동물의 생태를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아기 고양이가 성묘가 되어 독립한 것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슬퍼할 필요는 없다. 단지 날마다 밥 주면서 살다 보니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고, 고 녀석들이 지들끼리 얽혀 노는 모습을 볼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디가 찻길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아기 고양이들이 부디 찻길로 뛰어들지 않기를, 영역다툼으로 싸워 다치지 않기를, 먹을 것이 없어 산길을 헤매지 않기를, 몸을 웅크려도 춥기만 한 겨울에 눈 붙일 곳 정도는 찾아내기를 바란다. 그러다가 어느 따뜻한 봄날, 꼬리가 짧은 하얀 고양이나 코 주변에 점이 많은 삼색냥이 자기들과 똑같이 생긴 아깽이들을 대동하고 다시 우리 집 베란다를 찾아와 준다면 두 팔 벌려 기꺼이 맞아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