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림절, 성당에서는 한 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판공성사 공통 보속으로 영화 관람이라니! 시간이 맞지 않아 성당에 가지는 못하고 집에서 검색해 보았다. 그렇게 보게 된 영화, [리틀보이](2015년 개봉/알레한드로 몬테베르드 감독).
영화에서는 99cm에서 더 자라지 않은 작은 소년이 전쟁에 나간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간절함을 그린다. 주제는 가족애로 볼 수 있겠지만, 내 마음을 잡았던 것은 소년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겨자씨만한 믿음으로 산을 옮길 수 있다는, 자신의 믿음으로 전쟁이 끝나고 아빠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차근차근 미션을 수행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복음을 내 입맛대로 고치지 않고, 써진 글자 그대로 실천해 보려는 노력.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오래전 알았던 S가 떠올랐다.
S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하이힐과 미니스커트를 입고, 사람들이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시내에 있던 회사로 출퇴근을 하던 30대 초반, 미혼의 젊은 여성. 친구들과 어울려 직장 상사 흉을 보기도 하고, 결혼과 육아를 굳이 배제하지도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상을 살던 어느 날, 성서 구절이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고 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루카 9,13)
S는 누구에게 먹을 것을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막막했단다.
'돈을 주라는 것도 아니고, 밥을 사라는 것도 아닌 이 말씀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그런 고민을 하면서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S의 눈에 사람들이 보이더란다. 종이 박스를 깔고, 신문지를 덮고 자고 있는 노숙인들. 평소에는 무섭기만 해서 멀찍이 떨어져 갔던 노숙인들이 먹을 것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보이더란다.
S는 그다음 날 새벽부터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출근길에 걸으면서 마주쳤던 노숙인들의 수효를 어림짐작하며 자기가 만들 수 있는 만큼 만들었다고 했다. 자고 있는 노숙인들 앞에 먹을 것을 놓는 것은 그 당시 S에게는 샌드위치에 드는 비용보다, 새벽에 일어나 만드는 노고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용기는 거스를 수 없는 마음의 소리가 들릴 때 내는 거라고 생각했단다.
다음날부터 S의 출근 시간은 앞당겨질 수밖에 없었다. 한두 시간 먼저 나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고 했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출근룩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젊은 아가씨가 노숙인들 앞에 일일이 샌드위치를 놓아주는 모습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을 테니까.
그 후 S가 그 일을 계속했는지, 아니면 몇 번 하다가 그만두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횟수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마음을 먹는 것, 실천에 옮겼던 것이 중요하다. 나는 S가 했던 그 일을 따라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성경 구절을 '글자 그대로' 실천해 볼 수 있는 결심, 마음의 소리가 들릴 때는 거스르지 말자는 용기는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