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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Apr 25. 2024

내 안에도 이런 아이가 산다면

대문사진 / 픽사베이

국민학교 4학년 담임선생님은 칭찬도, 꾸중도 정해진 룰대로 하셨다. 꾸중을 크게 하셨던 적은 없었으나, 시험 점수에 따라 주시벌칙도 정해져 있었다. 그중 하나가 귀를 잡아당기는 벌이었는데, 반은 장난처럼 하셔서 아이들은 시험을 잘 못 봐도 선생님의 꾸지람을 크게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칭찬을 하시는 방법도 남달랐다.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거였는데, 지금 같으면 성추행이 아닌가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으나, 아이들이 선생님 무릎에 앉는 것을 불쾌해하지 않았던 걸 보면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였던 선생님이 아이들을 정말 귀여워해서 하신 행동 같다. 아이들도 선생님을 허물없이 따랐다. 여럿이 한꺼번에 선생님 무릎 위로 올라앉기도 했고, 선생님의 점심 식판을 갖다 드리는 당번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선생님이 하라는 교실 청소도, 칠판 먼지 털이도 아이들은 재미난 놀이처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크게 화를 내신 적이 있다. 선생님이 다정하고 인자하게 대해 주시니 아이들의 장난이 도를 넘었던 게다. 수업 시간에 몇몇 아이들이 지나치게 떠들었고, 선생님의 경고에도 장난은 계속 되었다. 급기야 선생님이 뒤돌아서서 판서를 하고 계시던 틈을 타, 교실 뒤쪽에 앉아 있던 몇몇 녀석이 공놀이하듯이 뭔가를 던지며 놀았다. 그것을 바라보는 여러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커졌다. 선생님은 얼굴을 굳히고 던진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셨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뒤돌아서 계셨지만 누가 그랬는지 알고 계신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저 주의만 주려고 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러 번 묻는데도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자 선생님은 책을 덮고 회초리를 들었다.

"분명히 던진 사람이 있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으니, 이건 너희들 전체에게 벌을 줄 수밖에 없다."

이런 말씀을 하시고 반 전체 아이들에게 두 손을 들라고 하셨다. 범인이 나올 때까지 벌을 주겠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니 팔이 아팠다. 선생님이 평소와 다르게 엄한 태도를 취하니, 장난을 친 아이들은 더욱더 가슴이 쫄아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한번 물어볼 때마다 벌은 더 강해졌다. 처음에는 손만 들었다가, 그 다음에는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은 뒤 손을 들라고 했다. 그 다음은 책가방을 올린 채 손을 들라고 했다. 팔은 아프고, 다리는 저리고, 선생님은 무섭고.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교실 맨 앞에 앉은 그 아이가 손을 번쩍 든 것이.

"선생님, 제가 그랬어요! 제가 던졌어요. 그러니 이제 그만 벌주세요."

그 아이는 반에서 가장 키가 작았다. 평소에는 말도 별로 없던 얌전한 아이였다. 아마 친구들에 비해 나이가 적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는 교육 행정이 허술해서 같은 학년이어도 반에 한두 살씩 많은 아이도 있고, 한두 살 적은 아이도 허다했으니까.


선생님은 그 아이의 말을 듣고 잠깐 멈추셨다가 말씀하셨다.

"..... 너는, 아니다. 아까 장난한 녀석들은 분명히 교실 뒤쪽에 있었다."

그러면서 "너는 손 내리고 내려와 의자에 앉아라."라고 하셨다.

그 아이는 선생님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책상에서 내려와 의자에 앉았다. 다른 아이들이 아직 책상에 무릎 꿇고 있는 동안 그 아이는 자기 혼자 벌을 면한 게 자기 잘못이라도 되는 양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선생님은 잠시 후 다른 아이들도 다 내려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더는 아이들의 잘못을 묻지 않으셨다.


이 일은 그 날 같은 반이었던 나를 비롯하여 여러 아이들의 머릿속에 깊이 남았다. 수십 년이 지나 모인 초등학교 동창회 때, 많은 아이들이 이 일을 제법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해프닝 같은 소소한 경험이지만, 가끔 나는 생각한다. 그 아이는 단지 자기 다리가 아파서 친구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려고 했던 건 아닐 거라고. 선생님이 평소대로 인자한 모습을 빨리 되찾길 바라서 그랬을 거라고. 자기는 혼자 벌을 면하였지만 오히려 그 순간이 함께 벌 받던 순간보다 더 불편하고 괴로웠을지도 모른다고. 상이든 벌이든, 그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받고 싶었을 거라고.


그리고 내게 어떤 억울한 일이 있을 때도, 그 아이를 떠올리곤 한다. 열 살밖에 안 된 그 아이도 남의 잘못을 대신 짊어지려는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거늘,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내 속은 어찌 이리 좁아터졌는가 하고. 내 마음 안에도 그런 어린아이 하나쯤 내내 간직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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