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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Apr 18. 2024

여인은 머리 검은 사람을 거두었다

사람을 거두면 사랑이 남는다

여인이 결혼한 것은 꽃다운 나이, 스물네 살 때였다. 여인이 결혼하던 시대는 지금과 달리 대개 20대 초반이면 남녀 모두 결혼을 했다. 여인의 남편은 여인보다 일곱 살이 많았는데, 그에게는 이미 전처에게서 얻은 아들과 딸이 있었다. 전처는 한창 귀여울 세 살, 한 살짜리 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여인은 스물네 살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신혼을 시작했다.


여인은 전처의 자녀들을 제 자식처럼, 아니 제 자식보다 더 아꼈다. 여인의 속내를 다 알 수 없다. 그러나 여인이 낳은 친자는 훗날 이렇게 증언했다.

"나는 오빠, 언니가 이복형제라고 의심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우연찮게 호적을 열어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나를 데려왔으면 데려왔지, 어머니가 그들의 친모가 아니라고 믿지 못하겠더라고요. 나에게 상처가 될 만큼, 나보다 그들을 훨씬 자랑스러워했거든요."


여인은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시댁 조카 둘을 집에 들인다. 여인의 큰 아이보다도 나이가 대여섯 살씩 많았던 남매는 부모를 일찍 여읜 탓인지 자주 말썽을 부렸다. 여인은 그 남매의 학교에도 자주 가야 했다. 남자아이는 폭력으로, 여자아이는 도벽으로 속을 썩일 때마다 여인은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 머리를 조아리며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던 중 여인의 집도 가세가 급하게 기울어 더는 조카들을 돌볼 없게 되지만, 나중에 여자아이가 이른 연애를 하고 결혼을 혼수를 준비해 것도 여인이었다. 남자아이는 십 수 년 후 가정을 이룬 후에도 여인의 집에 한동안 기거하게 된다.


여인의 집에는 또 한 명의 낯선 청년이 살기도 했다. 그 청년은 여인과 시가로든 친정으로는 혈연지간이 아니었다. 남편 지인의 아들이었다. 남편 지인은 싱싱한 굴로 유명한 바닷가 근처 마을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들이 어떤 인연으로 가까워지게 되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그 지인의 아들이 서울에 있던 2년제 공업전문대학에 합격해서 상경하게 되었을 때, 여인은 그가 졸업할 때까지 2년 동안 방을 내주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여인의 자녀들은 그때 일을 이렇게 회고한다.

"우리는 사실 불편했어요. 우리도 각자 방 하나씩 갖고 싶을 여고생인데, 우리는 한 방을 쓰라고 하고 그 오빠한테는 오빠가 쓰던 제일 큰 방을 줬거든요. 집도 좁은데 생판 남인 오빠랑 같이 사는 게 싫더라고요. 그래서 그 오빠한테는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신경질도 많이 내고."


그 집에서 대학시절을 보낸 지인의 아들은 그 후 커다란 기업에 취직해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설과 추석 명절 때마다 여인에게 인사를 하는 것은 물론, 김장 김치와 어리굴젓을 담가 보냈다. 2년이 아닌, 그 열 배, 스무 배가 되는  삼사십 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 그런 속담이 있는 걸 보면, 갈 곳 없는 사람,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을 거두어들였다가 배반을 당한 사람들이 꽤나 많았나 보다. '머리 검은 짐승'에게 보은을 기대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품었을 때는, 머리 검은 사람만큼 더 깊이 은혜를 기억하는 종자도 없는 듯하다.


'사람을 거둔다'말부터 실은 한계를 담고 있다. 사람에게는 그저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고, 먹을 것을 나눠먹고, 마음을 내서 보살펴 주는 것이지, 자신의 유익을 위한 용도로 사용하고자 '거두어들이는' 건 아니다.


짐승은 잡아먹으려고 거두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사람에게 시간과 공간과 재물을 열어 주는 것은 거두는 일이 아니라, 내 것으로 다 채우지 않고 여백을 남겨 두는 일이다. 그 자리엔 사랑이 남는다. 그렇게 남은 사랑은 둘레에서 지켜보고 전해 들은 사람들까지도 사랑으로 물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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