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오랜만에 나의 근무 날
장성 할머니의 배달 전화가 왔습니다.
삼다수 500ml 2팩
육즙 만두
복숭아 통조림의 주문물품과 함께
할머니에게 드릴 선물로
국산콩 베지밀 6입짜리를 챙깁니다.
"할머니 그거 안 좋아하세요
국산콩 아니고 그냥 검은콩!!!
검은 참깨 들어간 것도 아니고
그냥 검은콩!!!! 그것만 드세요!"
여직원이 검은콩을 강조하며 알려줍니다.
"어 그래?? 오랜만에 뵙는 거라
고급으로 드릴 랬더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지만 오늘은 날이 추우니
작은 구르마와 함께 차에 싣고 갑니다.
띵동
"문 열려있소"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할머니가 거실에
이부자리를 펴놓고 누워 계십니다.
"할머니 오랜만이에요. 잘 계셨어요??"
"아이고 오랜만이다.
어째 오늘은 남편이 안 오고 자네가 왔냐?"
"오늘은 제가 일해요."
"그래. 물은 현관 옆에 쌓아둬"
"네"
현관 옆에 기존의 생수가 한 팩 놓여 있습니다.
저는 생각 없이 그 물 위에 오늘 가져온
물을 쌓았습니다.
"아야. 먼젓번 것은 빼고 오늘 것을 올려야제
그래 그렇게 쌓아두고 먼젓번 것은 옆으로 빼놔라"
"네~~"
할머니는 그새 몸이 더 말라 쇠약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눈도 아직 좋고 정신도 말짱했습니다.
"만두는 냉동실에 넣어둘까요?"
"아니 그냥 식탁 위에 둬라"
"네. 할머니 베지밀 여기 둘 테니
간식으로 하나씩 드세요."
"아야 뭐 단다고 그런 걸 가져오고 그라냐
그믄 그거 계산해서 바더라."
"아이고 할머니 내버려 두세요."
할머니 가까이에 앉아 보니 할머니의 눈썹은
여전히 검고 진합니다.
하지만 그새 더 마르고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기운이 없어 화장실도 못 가시는지
기저귀가 한편에 높이 쌓여 있습니다.
할머니는 저에게 예의를 갖추려
상체만 일으켜 방바닥에 두 손을 짚은 채로
천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기운이 없어 행동이 느리다.
자네 남편이 오면 추운데 밖에서 떨까 봐
아까 기어가서 미리 문 열어놨다"
"아이고 할머니 그래서 문이 열려 있었네요.
요양사가 온다던데 오늘은 왜 혼자 계세요?"
"일주일에 두 번만 와 아들도 오고 하는데
너무 자주 오면 정신 사나워"
"네. 할머니 힘드니까 누워 계세요."
"그래 그럼 좀 눕자.
"아야 좀 있으면 장성 감 나오는데
그때 전화하면 가지러 와
사과도 장성 껏이 맛있는디..
냉장고에 있는데 하나 맛 보여줄까?"
"할머니 지금 코로나라 마스크 벗으면 안 되어서요.
담에 맛볼게요. 장성은 감이 늦게 나오네요."
"그래야 아삭아삭하니 맛있제 늦게 따야 맛있어"
"아 그래요??"
"내가 요즘 영 입맛이 없어서 복숭아 통조림을
먹어보려고 한다. 뭘 먹어도 맛난 지를 모르겄다."
"그래요?? 고기나 몸보신하는 거 드셔야 할 텐데요..."
그때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더니 부티 나는
50대 아저씨가 들어옵니다. 아드님이라고 합니다.
"어머 안녕하세요 배달 온 김에 할머니랑
얘기하느라고요."
"아 예 어머니 말동무해주시고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할머니가 찾아주시니
제가 감사합니다."
"내가 말했지 슈퍼댁네."
할머니가 아드님에게 절 소개합니다.
"할머님 아드님 왔으니까 전 그만 가볼게요.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전화 주세요"
"그래. 감 가지러 꼭 오니라"
"네"
할머니는 몸은 많이 약해졌지만
정신이 아주 맑고 또렷했습니다.
아주 다행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