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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수 May 07. 2024

결국은 사람

#관계 #인간관계 #동료교사 #관리자와의 관계 #가족

이 세상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것 같고, 동료교사는 내 맘을 몰라주며, 심지어 가족조차도 무심하다고 생각되어 터덜터덜 공원을 돌다가 집으로 들어간 적도 많습니다. 학교에 도착해서 곧장 교실로 들어가기 싫어 차 안에서 한참을 머문 적도 많아요.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에 다 내려놓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억세게 재수 없는 나만 그런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그랬습니다. 특히나 하고자 하는 일이 지지받지 못하고 나의 제안은 언제나 공중으로 휘발되어 버리고 나보다 못나 보이는 누군가가 직장에서 인정받고, 열심히 하지만 나의 수고는 가족들에게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을 때, 나는 더더욱 오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떠나지 못했고, 학교 운동장을 오래 맴돌았어요. 자존감이 바닥나고 하는 일은 설상가상 더 꼬이기만 하는 거죠. 나도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지지를 받아야 버티는, 집단을 이루었기에 결국 생존했던 호모 사피엔스의 DNA는 내 안에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사회생활'

어디서나 가장 어려운 것은 사회생활이었어요. 톡 깨 놓고 말하자면 사회 속에서 인정받는 것이었습니다. 더 깊이 이야기하자면 나를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사회에도 잘 맞추어 살아가는 처세! 그것이 가장 어려웠어요. 사실 나하나 지키기도 벅찬데 홀아버지에 두 아들에 남편에 시부모님, 그리고 선생이라고 매년 스무 명 남짓 학생들을 이끌고 어떻게 오늘 숨 쉬고 있는지도 갑자기 의문이 드네요. 먼지같이 보잘것없는 내가 말입니다.

사회생활이라 한다고 가족을 뺄 수는 없어요. 가족도 복잡 다단한 사회생활의 일부입니다. 아이는 학교 6학년 4반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우리 가족으로 살아가고,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미처럼 올망졸망 모여 삽니다. 사회생활이 얼마나 어려우면 관련 유튜브는 매일 문전성시입니다. 사회생활의 꼬인 실타래를 풀고 싶어 사회생활 꿀팁을 알려주는 유튜브를 기웃기웃하는 거죠.


잘 죽어야 하는데···.

한편 가정과 사회 속에서 잘 살아가야 하듯, 또한 한 개인으로서의 나는 잘 죽어야 합니다. 그래도 이 한 세상 후회 없이 잘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밑도 끝도 없지만 나는, 잘 죽는 것을 후회 없이 잘 사는 것으로 바꾸어 생각해 보려 합니다. 아니 사실 작 죽고 싶어요. 후회 없이 아주 잘 말입니다. 사회생활이 그리 어렵다고 해도 나는 그 속에서 후회 없이 잘 살고 싶습니다. 남들에게 맞추어서 살 수만은 없어요. 고집세고 독특한 나는 '별종'이거든요. 우주 저 먼 별에서 뚝 떨어진 것만 같아요. 그리 중요한 사회에서 미꾸라지처럼, 물미역처럼 잘 어우러져 살아가지를 못해요. 사회생활을 잘하는 방법을 알려드리지도 못했는데, 얼토당토않게 잘 죽는 방법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네요. 사실 사회생활 잘하는 방법은 죽을 때까지 잘 모를 것만 같아서요. 별종이다 보니 뭐 요만큼 어우러져 사는 것도 잘하고 있는 거예요. 모나지 않고 튀지 않고 납작 엎드려 살고 있습니다.


후회 없이 살고 싶다.

'결국은 사람'이라고 제목을 떡하니 달고 나의 글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후회 없이 살고 싶네요. 그러니까 가족과 지인들을 곁에 두고, 잘 살고 싶어요. 별 거 아니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그래도 함께 차 한 잔, 밥 한 끼 먹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결국 사회생활 잘하다 죽고 싶은 거네요. 맞지요?

하고 싶은 것 열개를 적어 놓고 하나씩 지우며 살고 싶어요. 어린아이처럼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그런 것을 열 개 쓸 수도 있겠죠. 혹은 조금은 더 그럴 싸 하게, 인류를 위해 무언가 기여하겠다는 내용의 열 가지를 쓸지도 몰라요. 어쨌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해 아쉬워하다가 어느 순간 떠나기는 싫습니다. 적어도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그러다가 갑자기 병이 들어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최악은 아닐 거예요. 최악은 하고 싶은 것 단 한 가지도 못하고, 하고 싶은 것 열 가지 써 보지도 못하고 갑자기 이 생을 마감하는 겁니다. 죽음을 말하며 글을 쓰자니 글이 조금은 우울하여 죄송하네요.  


N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을 미안하다고 말하고 떠나고 싶다.

애증의 관계라고 하나요? 가족이 될 수도 혹은 사랑했던 누군가 일수도 있어요. 요양원에 계신 분들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떠올랐어요. 죽기 전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애증의 관계에 있던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떠나고 싶다고 했다고 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뭐 꼭 그리 말해야 할 필요 있나, 아직 죽음이 먼 나는 그런 생각이지만 아닌가 봅니다. 죽기 전 우리는 사람을, 사랑했던 사람과 미워했던 사람을 떠올렸던 거였어요. 바쁜 출퇴근 길에, 바쁜 일상 속에서는 단 한 번도 떠오르지 않고 잊어버렸던 그 일이 떠오른다는 사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네요. 오늘 갑자기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사람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이유조자 말해 주지 않고 헤어졌던 그 사람! 미워서 만나주지 않는 나의 형제자매들! 별거 아닌 일로 마음속 잣대로 엑스자를 그었던 그 평범한 지인들! 그들이 떠오를 것만 같아요.


결국 죽기 전에도 우리는 사람인가 봅니다. 가슴 뜨겁게 미워했던 그 사람! 가슴 뜨겁게 사랑했던 그 사람! 사람이 떠오르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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