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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닻 Jan 22. 2024

흰나비

이 이야기 어디쯤에서 너는 이미 죽었다.


- 흰나비 보면 죽는다던데.


누군가 또렷하게 말했지만 눈길을 준 아이들은 모두 딴청이었다.


하필 간만의 현장체험학습 날이었고, 여기까지 와서 무슨 불길한 소리인가 싶어 그늘진 얼굴들이 더러 있었다. 고전 문학 시간에나 등장하는 나비 설화 한 줄에 소스라칠 순수한 아이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은근히 흰나비가 나돌아 다니는 쪽은 피해 걷는 몇몇의 아이들 중에서, 나는 집요하게 범인을 찾으려 애썼다. 실은 이토록 맑고 밝은 날씨, 오래 걷지 않는 적당한 일정과 들뜬 분위기에서라면 그 정도 발언쯤 금세 흩어져 휘발되고 말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혹해버린 나는 그 음흉한 말마디의 주인을 찾아야만 했다. 찾아서 의도를 따져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슨 고약한 심보였는지.


맹렬한 여름 햇빛에 바싹 마른 몸뚱이들을 마구 헤집던 시선에, 네가 걸렸다. 너는 짓궂은 웃음을 띠고는 내가 찾아내기를 기다렸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일순 그 웃음이 마치 네가 그 흰나비라는 것 같았고, 그래서 나는 곧 죽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달아나듯 고개를 돌리다가 흰나비와 정통으로 부딪혔다. 너무도 옅어서 뺨에는 사뿐 스치기밖에 하지 않은 것 같은, 그러나 곧장 벚꽃 잎 떨어지듯 팔랑팔랑 휘돌며 추락하기 시작한 흰나비는 어느새 바닥에서 짓이겨진 날개를 파르르 떨며 죽어가고 있었다.


당황한 나머지 여태껏 버석하던 몸 어딘가에서 주룩 땀이 흘렀다. 낙하하는 무수한 땀방울들발밑이 축축이 젖어 들어갔고, 그 바람에 나비는 익사당한 것처럼 더욱 처참한 꼴이 되었다. 하지만 앞서 걸어가던 아이들 누구도 이 상황에 대하여 눈치채지 못했다. 내심 안도하며 나비를 재빨리 발로 꾹 밟았다. 두터운 신발 밑창으로는 겹겹이 파닥거리는 미진한 날갯짓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대열에서 벗어나 홀로 멈춰있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고 줄지어 지나갔다.


비교적 뒷줄에 있던 네가 나를 막 지나쳐 어긋났을 때였다. 꼬리처럼 네 뒤에서 살랑이는 미소를 눈으로 좇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었을 때, 발을 뗀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놀라서 눈을 심하게 깜빡거리자 속눈썹 한 낱이 팽그르르 떨어져 그 위로 안착했다. 가늘고 긴 속눈썹이었다. 나는 그것도 밟았다가 확인해 보았으나 그것은 가늘고 길게 거기 남아있었다.


- 이상하지, 어디로 갔을까.


또 어디선가 주인 모를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고개를 움쳐 든 곳에 이번에는 또렷하게 말을 하는 네가 있었다. 아까와 같은 목소리였을까, 생각했지만 그 짧은 새에 그것이 기억나지 않았다. 너는 나를 돌아보며 그 말을 한 게 다였다. 그대로 다시 질서 정연한 줄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허둥지둥 다시 시선을 거두어 샌들 밖으로 삐져나온 엄지발가락 언저리에 쏟았다. 나비가 땅속으로 스며든 자리에는 흠뻑 젖은, 불길하리만치 선명한 속눈썹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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