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기념일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지만 생일만은 꼭 챙긴다. 이유는 생일을 축하한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고 이는 곧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감사한다는 의미다. 어떤 다른 이유없이 너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것.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축복해줄 수 있는 날이 생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일만은 꼭 신경써서 챙긴다.
그렇다고 생일날 근사한 생일상을 차리거나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지는 않는다. 남들 다 하는대로 작은 선물을 나누고, 아침은 미역국, 저녁은 외식으로. 외식 후에는 집에서 케이크에 촛불 켜고 노래 부르기 정도. 얼마 전 내 생일날도 그랬다. 마침 주말이라 아침은 대충 떼우고 이른 점심에 내가 좋아하는 뷔페에 가서 외식을 하고 저녁에는 남편이 끓인 미역국, 밤에는 동네 제과점에서 사 온 네가지 맛 케이크로 소박하게 끝냈다.
친정엄마는 신비복숭아를 택배로 보내주셨다. 어려서부터 과일을 너무 좋아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너는 나중에 과수원으로 시집가라." 고 했었다. 과수원집은 아니지만 어쨌든 시집을 가긴 간 딸이 어느 날 아들에게 망고를 예쁘게 까주고는 싱크대에 서서 뼈에 붙은 살을 발라먹는 걸 보고 엄마는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그거 먹지말고 너도 예쁜거 집어 먹어라!"
그 후로 매년 홈쇼핑에 망고 방송이 나올 때마다 집으로 망고 택배가 도착했다. 올해도 그랬다. 그리고 이번에는 마트에서 사 먹은 신비복숭아가 맛있더라는 의도없이 뱉은 말에 친정엄마는 신비복숭아 택배를 보냈다.
"생일인데 아끼지 말고 너 다 먹어라!"
덕분에 생일이 남기고 간 자리에는 신비복숭아 다섯팩과 네가지 맛 케이크가 돌아다니는 중이다.
가족 중 누구도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아서 촛불만 끈 후 그대로 냉장고로 직행했다. 아들은 알러지가 있어서 못 먹고 남편은 단 것을 싫어한다면 안 먹고 그나마 먹어치울 사람은 아마도 나뿐이다. 덕분에 요즘 운동 후에 아이스아메리카노와 함께 한 조각씩 먹어 치우는 중이다. (선호하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어야 할 때, 먹는다 대신 먹어 치운다는 표현을 쓴다.) 매년 굳이 케이크를 사지 말자고 하지만 왜 그런지 촛불을 불지 않으면 마무리를 하지 못한 찝찝한 마음이 들어 결국은 또 케이크를 사게 된다.
신비복숭아도 싱싱하고 맛있을 때 얼른 먹고 싶어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부지런히 먹는 중이다. 이럴 때는 이웃에 나눠 먹을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이 살면 좋겠다. 친정엄마랑 복숭아를 나눠먹고 빵 좋아하는 사촌동생이랑 케이크 나눠 먹으며 커피 한 잔 했으면 딱 좋을텐데.
서은국 교수가 쓴 <행복의 기원> 이란 책에서는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좋아하는 음식을 나눠먹는 일이라 했다. 지금 혼자 집에 앉아 생일 이후 남아 있는 케이크와 신비복숭아를 먹고 있으려니 오늘따라 좋은 사람들이 특히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