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무늬에 대한 추억

그녀를 처음만난 날

by 바다청년

선명하게 기억나는 그 날 오후.


회사 노천식당 주차장에서 하루종일 달궈진 차에 시동을 걸고 에이컨바람으로 공기를 식히고 있을 때였다.


시원한 녹색패턴 체크무늬 바지를 입은 아가씨가 걸이나온다.


주위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차창에 비친 본인 화장을 확인하느라 바쁘다.


다시 보니 회사 영양사다.


평소 나같은 사원에게는 새하얀 위생복 주머니에 손을 찌른채 자본주의 미소로 인사 하던 그녀,


반면 총무팀장이 대표이사와 함께 구내식당을 찾는 날이면 메뉴에 없던 누릉지를 내어 오며


함박 웃음을 짓던 그녀가 아닌가?


그 날 그녀가 달리보였던건 사복차림이라 그랬을까?


평소 얼굴이 앳되고 젖살이 빠지지 않아 통통한 체형이겠거니 했는데


날씬하게 달라붙는 체크무늬 바지만 계속 눈에 들어온다.




그 해 여름 입사했던 우리는 지방사업장이라 기숙사로 제공되던 아파트에서 동기들이 한 집에 거주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를 회사식당에서만 해결해야 했는데 하루는 점심을 먹고나서 토사광란이 시작되었고


같은 증상으로 동기 한 명과 함께 응급실에 가야했다.


링거를 맞고 숙소로 돌아간 뒤에도 동기 몇이 다시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했다.


원인은 식중독.


회사 식당에서 점심 때 먹은 무엇인가 잘 못된게 틀림없었다.


이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그 얄밉지만 날씬한 영양사가 떠 올랐다.




퇴근을 앞두고 있는데 인사팀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사보 제작을 해야 하는데 오늘 일정에 평크가 났으니 도와 달라는 애기였다.


약속장소에 가 보니 얘기와 달리 사내 처녀총각 소개하는 지면데이트란 코너에 평크가 났으니


땜빵 하라는 역할이었다.


상대는 이미 정해져 있었는데 그 영양사다.


식중독 사건 이후 나는 몇 번이고


"그대의 귀책으로 식중독 걸려 사경을 헤멜뻔 했으니 커피를 사시요"라고 용서할 기회를 제공했고


그녀는


"웃기고 있네, 어디서 수작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진심으로 죄송해 하지 않는 그녀가 난 책임감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기로 다짐 했는데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선입견과 달리 찬찬히 이야기를 나눠 보니 생각보다 착한 친구였고


남자가 많은 회사 영양사라 조심스러운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원수도 용서하라 하셨는데 용서해 준다.




나의 용서를 시작으로 우리는 연애가 시작되었고 지금 그녀는 사랑하는 장모님의 따님이시다.




어머니에게 전해들은 애기


아버지가 어머니를 버스에서 처음 만났을 때 체크무니 치마를 입고 계셨다고 한다.


가계에 체크무늬에 민감한 DNA가 있는 것인가?


아들들에게 체크무늬를 각별히 조심하라 주의를 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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