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에세이
사람의 마음은 주위 모든 것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가 머무는 데는 신기하게도 물건들이 따라다닌다. 사람이니까 소유욕도 미련도 있다. 쓰던 물건에는 손때가 타고 정이 든다. 막상 정리하려면 추억 깃든 과거가 떠올라 도로 제자리에 두는 때가 많다. 집안이야 아이들이 커 가니 살림이 는다고 치는데, 혼자 쓰는 연구실도 책과 물품이 는다. 분명 비어있는 새 연구실에 들어왔는데.... 어느새 이것저것으로 가득하다.
잠시 여행만 떠나려 해도 우리는 무언가 한가득 캐리어에 담아 간다. 그러니 삶이란 지구별에서의 여행에 얼마나 딸린 짐이 많겠는가. 친정아버지가 2년전 돌아가셨다. 옷장을 열어보니 점퍼, 코트, 상의만 하나 가득이었다. 좋은 옷이라 아끼고 곱게 입으셔서 버리지도 못하고 어머니는 모아만 놓으셨다. 누구 주지 그러시냐고 했더니, 어딜 기증하려해도 우체국에 가서 택배로 박스에 담아 부쳐야하는데, 팔순인 어머닌 엄두가 안나시는 거다. 아버진 말년에도 한자를 공부하며 학원을 다니셔서 무언가 적은 걸 수북이 남기셨다. 필체가 생생한 종이를 어머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계셨다. 살아 생전에 아무 것도 못 버리게 한다고 곧잘 불평하시더니, 가신 후에는 정작 마음대로 처분을 못하시는 거다.
예전에 보았던 호스피스 환자 중에는 주위를 잘 정리하고 떠나신 나이 지긋한 여자분이 계셨다. 병세가 천천히 진행하면서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유서도 남기셨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런데도 뭔가 적고 계셔서 물어봤더니 "금반지는 첫째 딸에게, 모피코트는 동생에게, 가방은 친구에게" 이런 식으로 받을 사람을 정해 주는 중이라 했다. "줄 게 많으신가 봐요"하고 웃었더니 "별 것 아니지만, 나는 왜 안 줬나 할 수도 있고, 이 물건은 처분해도 되나하고 머뭇거리거나 하면 어쩌나 해서... "라고 말 끝을 흐리셨다. 거기서 묻어나오는 잔잔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에리히 프롬이 쓴 책 중에 "사랑의 기술"이라는 게 있다. 제목을 들을 때는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한가"싶었지만. 살면서 점점 더 느끼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술은 “정리의 기술”이 아닐까 싶다. 잘 정리된 공간에 들어가면 기분도 좋아진다. 예쁜 카페나 깔끔한 장소에 머물고 싶은 심리는, 최소한의 물건이 있어야 할 곳에 아름답게 놓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리에 대한 권고 중 기억에 남는 말은 "6개월 동안 쓰지 않은 (입지 않은) 옷, 물건은 버려라" 혹은 "설레이게 하지 않는 물건은 과감히 처분하라"등이다.
내가 진료실에서 환자들에게 흔히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무엇을 먹으면 건강에 좋을까요?"이다. 그럴 때마다 사실 난감하다. 속으로 드는 생각은 이렇다. "뭘 먹어서 건강해지면 누군들 그걸 먹을 줄 몰라서 건강을 잃을까요?" 입 밖으로 내는 말은 "음식 종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양이 중요합니다" 이고.
정리의 기술이 있다면, 전체적인 양, 즉 수납공간을 대비해서 사들이고 내보내는 것이다. 들어온 칼로리보다 소비하는 게 적으면 비만이 되듯이 말이다. 둘 공간은 한정적인데, 외부에서 가져온 물건보다 정리한 물건이 적으면 쌓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기에 매번 사고 싶은 작은 유혹에 지고, 후회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다시 돌아보며 계획을 세우고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추운 계절을 잘 정리하고 새 봄을 맞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