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는 세돌이 지나서까지 무발화였다.
무발화.
자폐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반드시 피하고싶은 상황이 아닌가 한다. 스텔라가 20개월에 독립보행을 시작하고 이제 걸었으니 되었다, 하고 안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맞닥뜨린 또 하나의 난관이었다.
물론 다른 수많은 난관들이 있었으나, 뭐니뭐니해도 '무발화'는 비교불가 최대의 난관이 아닐 수 없다. 일단 말을 하냐 못하냐가 아이의 기능에 대한 기본적인 잣대가 되고, 예후를 결정짓는 가장 큰 기준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니, 무발화였던 스텔라를 보는 내 마음은 하루하루 타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스텔라는 돌 전후로 "엄마"와 "아빠" 비슷한 말을 가끔이지만 했었다. 그런데 그 뒤로 갑자기 그 말들이 쏙 들어갔고 오랫동안 다시 나오지 않았다.
내가 앞에서 아무리 시범을 보여도 스텔라는 따라 하지 못했다. 마치 입을 어떻게 움직여야 그 소리가 나오는지 모르는 듯했다.
예를 들어, "아" 소리를 낼때는 입을 양옆으로 크게 벌려야하고, "어" 소리를 낼때는 입을 조금 오므려야 해당 소리를 낼 수 있는데, 스텔라는 이런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입을 움직여야 소리를 내는지 모르는 아이에게, 백날 놀이식으로 하는 언어치료를 시켜봤자 말이 안나온다.
아이의 무발화로 수많은 날을 걱정으로 보내며 관련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검색하던 중, 나는 '무발화 센터'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말 그대로 무발화 아이들에게 발화를 시켜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센터이다.
일반 언어치료센터는 대부분 놀이식으로 진행되는데 스텔라 역시 오랜 시간 이러한 언어치료를 받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대표적인 무발화 센터인 동탄의 최수아 센터 말고, 내가 선택한건 의왕의 에벤에셀이었다. 이 두곳 모두 엄마들 사이에 말도 많고 의견도 분분한 곳이다.
무발화 센터에서의 수업방식은 놀이식이 아니라, 아이의 발성, 호흡, 구강 근육을 잡아주는 훈련의 형태로 진행되므로, 자칫 강압적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들에서 수업을 받다가 아동학대로 센터를 고발한 부모들의 사례도 심심찮게 있다고 한다.
나도 그러한 얘기를 듣고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스텔라가 소리를 내는 방법을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으므로, 오히려 그런 방식이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을거라 판단했다.
나의 판단은 적중했고, 에벤에셀에서 주 2,3회씩 반년 넘게 다닌 후 스텔라는 드디어 어떻게 입모양을 만들면 해당 소리를 내는지 배우게 되었다.
아이가 '말'을 하기 위해선 발성과 호흡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구강근육을 움직여 소리를 내는것이 당연히 밑바탕에 깔려있어야하는데, 스텔라의 경우는 그 과정을 자연스럽게 습득하지 못하였으므로, 무발화 센터를 통해 배운 것이다.
일반적인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습득하고 배우는 그 수많은 것들을, 스텔라는 단 한번도 저절로 습득한 적이 없다. 엄청난 노력과 돈과 에너지, 시간을 들여 수십번 수백번 반복해야 습득할 수 있었고,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잊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과정에서 내가 겪었던 수많은 좌절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냥 포기해버리고 싶었던 순간도 수없이 많다. 아이에게 왜 말을 못하냐고 윽박지른 후 부둥켜 안고 같이 울었던 적도 많다. 하 정말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스토리.
그래도 이제는 조금 편안하게 이런 말들을 할 수 있게 된건, 아이가 '무발화'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에벤에셀에 다니며 '발화'가 시작되었고, 스텔라는 그 뒤로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 비록 단어 하나였지만 아이가 말을 한다는 사실이 눈물나게 기뻤다. 처음엔 단어 하나로 표현하고, 엄청난 노력으로 단어 두개를 붙여 말을 하게 되기까지 또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스텔라는 표현언어에 비해 수용언어는 좋은 편이었다. 비록 또래 언어발달에 비하면 뒤쳐지는 수준이지만, 보통 임상에서 수용언어가 표현언어보다 높은 경우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무발화'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말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소위 '말이 트였다'고 하기엔, 스텔라가 할 수 있는 말들은 제한적이었다. "엄마 우유 먹고싶어" "밥 먹고싶어" "책 읽어줘" "(한글이) 야호 보고싶어" "쉬 할거야" 등등 주로 본인의 요구사항을 두 단어 조합의 문장으로 말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 말들 역시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하는거라고 내가 가르쳐준 말들이다. 즉, 본인이 스스로 습득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입력된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언어 발달에 속도가 붙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소위 '핑퐁' 대화가 쉽지 않았다. 질문을 하면 대답을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게 힘들어, 그에 맞는 적당한 대답을 일일이 가르쳐줘야했기 때문이다.
또 선택형 질문을 하면 둘 중에 선택해서 대답하는게 아니라, 마지막에 들은 선택지를 그냥 반향어로 따라 말하는 경우가 많아 정말 답답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예를 들면,
- 나: 추워, 더워?
- 스텔라: 더워
- 나: 더워, 추워?
- 스텔라: 추워
이런 식이니 '대화'라고 보긴 힘들수밖에.
그랬던 스텔라가 이제는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구사한다.
물론 아직 유창하거나 자유자재로 언어를 구사하는것은 아니다.
두세 단어 조합으로, 많게는 네 단어까지 조합해서 문장으로 말하고
요즘에는 접속사 '~고'를 넣어 두 문장을 연결하기까지 한다.
질문을 하면 할 수 있는 대답이 아직은 한정적이지만,
예전엔 내가 가르쳐주었던 대답만 외워서 했다면 이제는 단어 하나라도 스스로 생각해서 대답한다.
반면 내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던 영어는 학교나 센터 등에서 듣고 배우는 기회가 많은지
질문에 알맞게 대답을 잘 한다고 한다.
조금씩조금씩 할 수 있는 말이 늘고,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즐거움을 알아가는 스텔라를 볼 때마다
아이가 말을 못해서 절망에 빠져 울부짖었던 그 때가 떠오른다.
절망 속에서도 실낱같이 작은 희망의 씨앗을 찾아 키워나가는 것.
그 힘은 바로 아이에 대한 사랑이고, 아이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잠시 주저앉아 울지언정 포기하지만은 않겠다는 결심,
기어이 다시 일어나 주어진 길을 가겠다는 용기이자 결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