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가 느리다는 걸 인지하고 물리, 작업, 언어, 감통 등 할 수 있는 모든 재활치료들의 정보를 수집한 후 각 센터들로 라이딩을 시작하던 시기, 나는 극도로 두려웠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우울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겠지만, 나에게도 역시 이 '장애'의 세계는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마치 태양계로부터 20억 광년 떨어진 어떤 행성의 이야기만큼이나 먼 세상의 이야기였다.
스텔라를 임신했을 때 아이가 어떤 얼굴일지 상상하며 인터넷에서 찾은 엄청나게 예쁜 아기의 사진을 핸드폰 잠금화면에 저장하고 매일 바라보았다. 내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당연히 건강하고 똘똘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출산 후 만난 스텔라의 얼굴은 놀랍게도 임신 중 내가 매일 바라보았던 핸드폰 잠금화면의 아기 얼굴과 흡사했다. 작은 얼굴에 그 얼굴의 반이나 차지하는 커다랗고 땡글한 눈을 가진, 모든 이가 '인형 같다', '외국 아이 같다', '아기 모델시켜라' 등의 찬사를 늘어놓는 예쁜 아기였다.
그런데 그 예쁜 내 아기가 자폐일 수도 있다고? 지적 장애일 수도 있다고? 발달장애라고??
나는 그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물론 겉으로는 아이가 느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여러 정보를 찾아 고군분투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아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마음속 그 저항들과 함께, 나는 '스텔라를 고치기' 위한 방법, 치료들, 온갖 정보를 밤을 새워 서칭하고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이렇게 열심히 스텔라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뭐라도 알아보려고 노력하는데 내 눈에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에게 미친 듯이 화가 났다.
지금 한가롭게 티비나 볼 때냐? 넌 지금 밥이 넘어가냐? 이런 말들을 차마 내뱉지는 못했지만 비슷한 상황으로 많이도 싸웠더랬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차마 스텔라가 '자폐' 혹은 '지적장애'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그 단어들을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는 순간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되어버릴까 봐, 차마 입에 담기가 너무 두려웠다.
그런 나에게 남편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그만 내려놓으라"고 말했다.
내려놓으라고? 아이를 포기하라고?
'내려놓으라'는 말이 나에게는 아이를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아이가 자폐이든, 지적장애이든, 그렇게 되든 말든 그냥 포기하라는 말인가?
그 당시 나의 이런 상황을 다 알고 계시던 내 은사님께서, 나를 '마음공부' 모임에 초대하셨다. 함께 책을 읽고 명상도 하며 마음공부를 통해 영적 성장을 도모하는 모임이었다. 이 모임에서의 공부를 통해 나는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들을 조금씩 배울 수 있었다. 또 당시엔 이해가 안 가던 내용들이 시간이 지나고 내 경험치가 쌓이면서, 혹은 생각의 깊이가 깊어지면서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것들도 있었다.
이제는 안다.
'내려놓는다'는 것이 아이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님을.
그저 아이에 대한 나의 '잣대' 혹은 '기준'을 내려놓으라는 말이라는 것을 안다.
스텔라는 문제가 없다. 스텔라의 느림을 '문제'라고 바라보는 내 '생각'이 문제인 것이다.
스텔라의 느림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걸 '답답하다'고 생각하는 내 잣대가 잘못된 것이다.
스텔라가 하는 모든 행동, 언어, 신체적 특성 하나하나까지, 그 모든 건 스텔라에게 문제가 있어서, 혹은 스텔라가 남들보다 부족해서가 아니다. 스텔라는 그저 스텔라일 뿐이다.
그런 모든 것들에 나의 '기준'을 들이대어 이건 문제라고, 남들보다 부족하다고 판단해 버리는 나의 '생각'이 문제이다.
아이의 모습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
나의 기준에 빗대어 평가하지 않고 그저 아이의 모습 그대로를 수용하는 것.
'내 아이는 자폐일리가 없어' 따위의 마음속 저항을 버리고 의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내려놓는다'는 말, 즉 'surrender'의 의미이다.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에서 나무늘보의 느린 행동은 나무늘보가 토끼보다 부족하거나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그가 나무늘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자폐나 지적장애 따위의 말을 입에 담는데 예전만큼 마음속 저항이 없다.
물론 여전히 스텔라의 '나무늘보'같이 굼뜬 행동을 보면 속이 터지고 답답한 경우가 많이 있지만...
그럴 때마다 나의 '기준'을 내려놓으려고 부단히 마음을 다잡는다.
스텔라는 그냥 스텔라다.
너는 언제까지나 나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딸.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똘똘하든 그렇지 않든, 말을 잘하든 못하든, 행동이 빠르든 느리든 간에 상관없이
그 모습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해 주는 것.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온전히 너의 편이 되어주는 것.
나는 네 덕에, 오늘도 사랑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