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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개미 Sep 06. 2021

01. 성실과 실성의 생활

워킹맘 생활기

  누구나 살면서 다양한 역할을 주렁주렁 달고 산다. 나 역시 그렇다. (결코 사십대로 보이고 싶지 않지만 완연한) 사십 대의 아주머니이기도 하고, 십n년차 월급쟁이로서 모 기업의 과장이(었으)며, 내 부모에게는 장녀, 딸에게는 엄마, 남편에게는 아내, 남편의 직계가족들에겐 매누리, 동서 등등으로 불린다. 

당연한듯 초중고등학교를 다녔고 때 되면 졸업했다. 무난하게 대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에 재능이 없는 줄 알면서도 대학원까지 다녔다. 재깍 취업을 했고 그럭저럭 승진했다. 친척 어른들이 마치 랙이 걸린듯 명절때마다 "니 나이가 올해 몇이지?" 나이를 확인하며 서서히 결혼의 압박이 시작될즈음,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게 결혼했고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낳았다. 각각의 스테이지를 넘길 때마다 호칭과 역할이 덕지덕지 붙었다.



그런 줄 알고 있었지만 써놓고 보니 무난하게 살았다. 일과 육아를 함께 하는 ‘워킹맘’이란 이름이 붙기 전까지는 내게 붙여진 역할들을 당연한 듯 받아 들였다. 

딸아이가 열 살이 되었으니 워킹맘이란 호칭을(?) 얻은 지도 어느새 10년 차. 워킹맘은 현재 스테이지에서 얻은 또 하나의 역할이다. 학업과 취업, 결혼으로 이어지는 단계에서 얻은 역할들은 제법 적응이 되는데 워킹맘이란 건 글쎄, 게임으로 치면 마왕이 나오는 고난도의 스테이지랄까. 십 년이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이거 나한테 왜 이러시나' 싶을 때가 많다. 



청년실업률이 높은 시대에 악착같이 취업했고 삼포세대란 말이 회자될 때 포기하지 않고 결혼을 했으며 저출산이 국가적 재앙이라는 때에 출산도 했는데. 좋은 것을 다 했더니 세 가지가 합쳐져 어이없는 화학작용이 일어났다. 짬뽕과 짜장이 합쳐진 짬짜면은 실속이라도 있지. 워킹맘은 두 가지를 합친다고 합친 게 하필 관료주의와 가부장제를 합쳐가지고 사람 잡는다. 관료주의로 점철된 대한민국 직장인의 애환과 가부장제로 무장한 한국 어머니의 한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역할이랄까. (그런 게 있을 리 없지만) 쇼미더머니의 랩 배틀처럼 누군가와 애환 배틀을 한다면 워킹맘도 어디 가서 꿀리진 않을 것이다. 아니, 꿀리지 않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애환 배틀의 우승은 우리 것이지.



그러나 유구한 부조리함 속에서도 나는, 우리는 매일 운 만큼 웃으면서 산다. 일에도 기쁨과 슬픔이 있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도 슬픔과 기쁨이 있으니 그 두 가지가 버무려져 한층 짙은 농도의 감정 속에서 사는 것 같다. 구질구질해서 차마 말하지 못할 날들도 있지만 아주 확고한 행복도 있다. 인생의 단맛과 쓴맛이 농축된 워킹맘의 하루하루. 누가 워킹맘 생활기를 써준다면 박수 짝짝 치면서 공감버튼 누르고 재미있을 것 같은데 다들 바쁜 것 같아서 주춤주춤 나부터 일기장을 공개하듯 써본다. 엉망진창 빙글빙글 돌아가는 워킹맘의 속사정. 매일 성실하게, 그러나 간간이 실성한듯 웃고 우는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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