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네. 라헬이 임신을 했어. 아버지는 벌써부터 수선이시네. 라헬의 처소를 새로 마련해야 한다는 둥, 출산을 위해 지금부터 준비를 하겠다는 둥... 라헬이 출산 전에 두 발로 흙을 밟게 두시기나 할지 모르겠군. 저 애굽 파라오의 공주도 이보다 더한 보살핌을 받지는 않을 것 같네.
아버지의 세 아내는 모두 긴장한 눈치야. 라헬은 안 그래도 아버지가 가장 아끼시는데 이대로 아들까지 낳는다면 그 총애는 더 깊어질 테지. 아니 사내아이가 아닐지라도, 이번 임신으로 라헬이 불임이 아니란 것이 확인되었으니 다음에는 라헬에게서 아들을 보고 싶어 하실 테지. 오히려 더욱 라헬을 찾으실 거야. 어머니들은 모두 아버지 앞에서는 축하한다며 집안의 경사라고 말을 했지만, 이제 남편의 사랑받는 아내가 될 실오라기 같던 희망도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그녀들은 알고 있었어.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라는 자신들의 수치를 위로하던 유일한 일. 라헬에게는 없고 그녀들에게는 있는 것. 바로 아이들이었네. 그런데 이제 라헬은 모든 것을 다 갖게 되었네. 불공평하게도! 내 어머니 레아는 대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여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사내아이를 출산하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는 장자인 나로 시작하여 6명의 아들을 낳고도 아버지가 라헬을 싸고도는 바람에 집안에서 입지가 불분명하셨다네. 아들들이 장성하며 이제 어머니도 다리 펴고 주무시나 했더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라헬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이시는 아버지를 보는 우리 형제들도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네. 과연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저렇게 좋아하셨었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
헛헛한 나의 마음을 알고 위로하신 것은 오히려 어머니 레아였네. 구석진 곳 나무 그늘 아래에서 분을 삭이고 있던 나를 찾아와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것은 모두에게 잘 된 일이라고 하셨지. 어머니가 제정신이신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대답했네. 정말 이게 모두에게 잘 된 일일까? 라헬이 아들을 낳더라도 아버지는 여전히 나를 장자로 인정하실까? 나는 사실 마음이 좀 불안하다네. 좀 지켜보면 곧 알게 되겠지. 그때까지 난 양을 더 충실히 돌보고 동생들을 인솔하면서 장자답게 행동하도록 해야겠지. 그래. 노력하면 아무 문제없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