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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악한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당신에게

저는 그 미련을 사랑합니다

by 천윤준호

예민한 관찰 일지 _ 첫 번째 이야기


Playlist. bonfire _ wave to earth


To. 포악한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당신에게


안녕하세요. 그냥 이 세상을 살아내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저와 같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름 모를 당신에게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요. 그냥 여러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들이 조금 있어서요.


실어증을 앓고 있는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지엽적인 문제에 사람들은 분노하고 혐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행하는 그 증오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이들은 없어졌습니다. 단순히 분노를 토해내는 낙관적 혐오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열패감은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암세포가 주변을 갉아먹으며 분열하는 것처럼 이미 굴절된 세상을 제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제 경솔함을 책망했습니다.


이렇게 무언가를 혐오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내게서 그들의 모습을 봅니다. 솔직히 내가 그런 그들도 사랑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것도 진실입니다. 누군가를 흉포하게 미워하는 것은 쉽지만 무언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힘이 들었습니다. 친절하게 대하고, 다정해지는 것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통상적 관계는 가냘픕니다. 그런 가냘픈 관계들이 저변에 깔려있습니다. 그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 나의 오만은 아닐까, 가혹한 일은 아닐까, 그런 감정들이 뒤섞입니다.


지하철은 우리 사회의 이면이자 본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우리의 사적 궤도는 무너지고 맙니다. 서로의 살결을 부딪치고 맞대고 호흡을 듣게 됩니다. 여름철에는 불쾌한 땀 냄새가 코를 찌르고, 맞닿은 피부는 끈적거립니다. 겨울철에는 거대한 패딩 잠바에 짓눌려 숨을 쉬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아침에는 출근이나 등교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심장이 죄어오고, 밤에는 술을 마신 이들의 웃음소리와 알코올 향에 머리가 아파오곤 합니다. 가끔씩 알 수 없는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실제로 주먹을 맞대는 사람들이 많다기보다는, 눈치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앉으려는 사람들을 비집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앞길 만을 생각하며 제 허리와 엉덩이를 치우고 자신의 길을 갑니다. 치운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자신의 앞길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저 장애물이나 바리케이드처럼 생각하는 듯이 행동하니, 치운다는 표현이 정확하겠죠.


누군가는 옆 자리의 사람에게 어깨를 내어주지 않습니다. 아니면 어깨를 내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으며, 자신의 다리의 자유분방함을 힘껏 보여주기도 합니다. 간혹 SNS를 보면 ‘지하철 빌런’이라고 하는 이들은 보이지도 않는데, 실상은 과히 차갑습니다. 그렇게 사회의 본모습을 지하철의 민낯에서 마주합니다.


학교 가던 뚝섬의 창_이때가 되면 사람들은 창 밖을 봤다



금일도 이런 포악한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위로를 하려거나 힘을 주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하는 말들이 누군가에게 정답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이유는 그저, 당신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고생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쓰러졌다면 잠시 누워있어도 괜찮다고 말입니다. 그게 죄는 아니니까. 그저 그렇게 쓰러져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길을 잃었습니다. 사람들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저 맹목적으로 걷고 있습니다.

태어났으니 발걸음을 멈출 수 없는 건가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건가요.


다들 자신의 목적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의 최종 목적지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사랑인데, 우리는 그 사랑을 잊고 죽음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마지막에 종착해서야, 그제야 사랑을 깨닫습니다. 유서는 우리가 남기는 가장 솔직한 글이라는 말을 믿습니다. 만약 지금 내가 유서를 쓴다면 나는 여전히 사랑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며, 그동안 뱉어왔던 파멸의 언어들을 후회할 겁니다.


뚝섬을 지날 때의 지하철에서는 그 누구도 핸드폰을 보지 않아요. 다들 밖의 풍경을, 그 순간에 담느라 쓰러져 있던 고개를 듭니다. 삶은 그런 찰나의 순간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삶은 차갑고 서늘하고 매정하지만, 그 안에 미련이 가득하게 차 있습니다.


저는 그 미련을 사랑합니다.

지나치게 사랑하려고요.


어린 시절 어머니와 지하철을 탔던 적이 생각납니다. 그녀는 나와 형의 발이 지하철 문틈 사이에 있던 그 공간에 빠져 버릴까 두려워하셨습니다. 그건 사랑이었습니다. 동시에 어머니와 말다툼을 했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별 것도 아닌 내용이었는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던 탓이었습니다. 감정을 격해지고 화가 났었습니다. 사랑은 매번 예쁜 것들만, 좋은 것들만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사랑을 기억하느라 많은 죽음을 잊는 것처럼 나는 그 순간을 위해 많은 혐오를 잊을 겁니다. 사랑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연습을 합니다. 그래서 그냥 누워있고 싶었습니다. 길 한편에 누워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통해 사랑을 관철하고 싶었습니다. 간혹 보이는 그 사랑의 형태들이 꽤 아름답거든요.


그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기억되고 싶습니다. 코 왼쪽에 있는 점이 기억되고 싶습니다. 귀 뒤에 살짝 튀어나온 부분들이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정말 누워 있어도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정말.


From.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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