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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왔던, 초록 사랑

사랑을 동경했지만, 난 우매했다.

by 천윤준호

예민한 관찰 일지 _ 네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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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지독하게 사랑해.”


네 겨울에 조금 더 녹색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몸속에 흐르는 피가 초록색이었다면 우리는 조금 더 평온할 수 있었을까. 몸속에 흐르는 피가 조금 더 뜨거왔다면 우리는 겨울날의 쇠처럼 차가워지는 세상을 막을 수 있었을까. 우리 세상에 겨울이 없었다면 살아내는 세상이 조금 더 봄에 가까워 찬란했을까. 일 년이 삼백 육십사 일이었다면 우리는 쾌락에 죽여 왔던 하루를 조금 더 아끼며 살아갔을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세상 속에 존재하는 것들이, 녹색 철문처럼 차가워 보이는 그 아이들이 비로소 따뜻해질 수 있었을까.


세상에는 사랑이 가득할 것이라 믿으며,

사랑을 동경했지만, 난 우매했다.


어릴 적부터 온수로 샤워하는 걸 무서워했다.

사실은 따스한 온수가 내 몸에 닿는 것은 너무 행복했는데, 그 알 수 없는 행복이 욕실 밖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모순적인 사실이 나를 무섭게 했다. 이 온실 같은 곳에서 나가면 내가 겪고 있는 행복이 소멸해버리지는 않을까,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삶을 버텨야 하지. 하는 막연한 우울과 무기력이 길게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찬 물을 받아낼 용기 따위는 없었다. 차가운 물이 정수리부터 떨어지고 내 심장과 가까워지면 나는 그 냉기를 견뎌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꽁꽁 얼어버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죽음으로 향할 거라고 생각했다.


눈을 감고 온수를 그대로 받는다.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은 체온과 비슷한 그 온수가 내 눈자위를 씻긴다. 못난 것들을 바라보았던 나의 동공은 그렇게 지워진다. 슬픈 사실을 들었던 내 귀의 안 쪽까지 깊게 닦아냈다. 점점 뜨거워지는 온수가 내 몸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심장부근으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조금씩 내 육체의 온도를 다정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목덜미에 물을 뿌리면 등 중앙으로 처량히 내려오는 그 따스한 온기가 온몸을 뜨겁게 달궜다. 그 친절한 온기가 금방 꺼져 버릴까 봐 감히 욕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습기가 점점 차오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김이 차면, 거울을 쓰-윽 닦았다. 거울 속에는 육체의 민 낯이 보인다. 아무에게 보이지 못했던 나의 알몸. 온수를 틀지 않으면 몸에 뭍은 물방울들이 다시 식으며 차가워졌다. 다시 온수를 튼다. 다시 김이 차 오르며 습기가 공간에 스며들었다. 그 습기처럼 나는 그 욕실이 되었고, 그 욕실도 내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잠시 뒤면 사라질 한낱 욕실의 습기 같은 것이었다.


한 해가 지날 때마다 갈갈이 죽여 왔던 문장들이 늘어져 쓰러져 있다. 욕실에 누워 쏟아지는 온수를 그대로 받아냈던 나와 같았다. 흰 눈을 이불 삼아 누워있는 낙엽을 본다. 지난날에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았다. 그 살아있는 눈과 죽어가는 눈이 분리되어 있다. 그렇게 눈에 적셔져 종말 한 낙엽의 향을 맡는다. 꾸릿꾸릿한 향을 품은 그들은 축축하고 서늘했다. 죽은 낙엽들은 제 운명이 저런 줄 알고 있었을까. 만약 자신의 운명을 안다면, 낙엽들은 기꺼이 떨어지려고 했을까. 아니면 온수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처럼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을까.


그렇게 죽은 말들을 부검해 보면 지난 사랑이 들어있다. 한 편으로는 미워하는 마음이 그대로 들어있는 문장들이 있다. 스스로 화에 못 이겨 거짓으로 욕을 담아댔던 순간들. 상처를 주기에 급급했던 언행들. 나약한 마음이 탐냈던 사랑을 감추려고 경계선을 넘어섰던 찰나들. 과거는 우리의 흔적이라고, 우리가 지나온 길이라고 떠들었지만, 오늘이 과거의 흔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만일 그렇다면, 나는 그 족적을 천천히 따라가 보겠다. 그 자국의 뒤를 이으면 보이는 건 아직 살아 숨 쉬는 감정이겠지. 아직 녹지 않은 눈처럼 여전히 제 존재를 알아봐 달라는 처참한 몸부림의 감정들. 애써 외면했던 그 아이들을 더 이상 무시하는 건 죄를 짓는 것처럼 양심에 찔리는 일이었다.


인간의 말이 과자처럼 으스러지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내 입에서 나오는 그 낱말들이 과자처럼 보이는 것이라면 어땠을까. 그렇게 눈에 보이는 그 단어들의 배열이 결코 지울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그 악독한 과자 부스러기로 압사시켜 왔던가.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본인의 참지 못할 식욕에 못 이겨 죽여왔던가. 낱말의 공동묘지를 스스로 파묘한다. 그들의 무덤 속에서 나온 것들은 이미 썩어 문드러진 상처들이었다.


지난해에 싸늘하게 살해했던 낱말들이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들의 족적은 내 입술의 움직임과 혀 끝에서 태어났는데, 나는 그들을 처참하게 잊어버렸다. 많은 이들은, 그런 자신의 비참한 흔적들을 망각한 상태로 살아갔다. 하지만 그렇게 죽어왔던, 죽여 왔던 이들은 그 자국을 기억한다.


어릴 적에는 일란성쌍둥이라는 이유 때문에 나와 형을 비교하는 타인의 존재가 일상이었다. 그들의 언행의 저의는 우리를 구별하려고 했던 비교일 테지만 그 문장들은 우리를 처량하게 잘라댔다. “- 준호는 얼굴이 더 큰 것 같아.” “형보다 동생이 잘하네.” “그냥 네가 형 해라.” “준혁이가 더 말랐네.” 그 자취는 고스란히 남았다. 이런 고통의 문장을 생각해 보면, 그 안에 들어있는 의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는 그들의 언어에 난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선의의 이유를 생각해보려고 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라면 하지 않았을 말들을 그들은 가감 없이 내뱉었다. 내 감정은 배제하고 한 나쁜 의도였을 테니까.


그렇게 파해쳤던 무덤을 다시 덮는다. 다시는 그런 말들로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는 알량한 다짐으로 하루를 덮는다. 그렇게 덮어내고 나면 나를 사랑하라는 알 수 없는 문장이 나를 덮쳤다.


“너를 좀 사랑해 봐.”


사람들은 나 자신을 사랑하라고 떠들어대는데 그걸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이들은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을 진정, 결핍의 응집체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걸까 하는 무력감이 들기도 했다.


사랑한다는 건 무얼까. 생각했어요.

사랑은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건데, 나를 어떻게 아낄 수 있을까요. 그냥 손으로 보듬으면 되는 건가요. 그건 어찌하는 건가요.


그러다 보면, 까끌거리는 수염으로 얼굴을 비볐던 아버지가 떠올라요. 거친 수염이 연한 피부에 닿는 것이 아프면서도 좋았어요. 왜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떠올랐어요. 군대, 겨울 새벽에 빙글빙글 돌며 잡념에 빠졌던 순간이 떠올라요. 어린 엄마와 밤늦게 동네 뒷산에 올랐던 순간이 기억나요. 그 정상에서 야경을 보며 컵라면을 호-호 불며 먹었던 순간이요. 그 순간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아나 봐요. 이제는 그 아프면서도 좋았던 순간이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아나 봐요. 너무 슬퍼요.


살아가다 보면 지난 기억들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특히 SNS를 보다 보면, 간혹 지난 기억들을 떠오르게 하는 영상들이 알고리즘을 통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 짧은 영상들을 보면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던 지난 것들이 부력을 갖고 조금씩 올라옵니다. 어릴 적에 봤던 모래 놀이터 같은 거요. 지금은 찾을 수 없는 그런 옛 기억들이요. 그렇게 거칠게 올라오면 욱여놓았던 슬픈 감정이 제 힘을 못 이겨 쏟아지는 것 같아요. 찢어진 복부에서 내장이 쏟아진 것처럼 아파와요. 다시 주워 담고 싶은데 흘러서 이미 피와 흙이 섞인 상태라 힘들 것처럼 보여요. 그냥 그렇게 쏟아진 더러워진 제 내장들을 봐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무기력합니다.


사실 세상에는 사랑이 가득하지 않다는 걸 알아요. 그래도 빛바랜 흰색 벽지가 노란색으로 변해가는 것도 우리네 인생이라고, 점점 닳아가고 있는 청춘이 잔인하게 저를 봅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찬란했던 순간들을 바라보는 것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아픔을 잊으려고 현실을 잊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마치 참혹한 전쟁 통에서 모든 것을 잊고 춤을 추는 이들과 같아요. 우리가 마주하고 살아가는 세상은 차갑고 살인이 난무하는데, 눈앞에서 벌어지는 그 비극적인 사실들을 술로 잊으려고 해요. 그 처절한 몸부림을 듣기 좋은 음악 소리로 없애려고 합니다. 지하철에서는 이어폰이 없으면 버티지 못할 것만 같아요. 지하철의 엔진 소리나 철로를 지나치는 소리가 너무나도 강하거든요. 장고도 앞바다에 서서 멀찍이 바라보던 안면도가 떠오릅니다. 노란색 빛을 발광하는 그 차가운 건물들이 등대 역할을 해주는 것 같으면서도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바다로 떨어져요. 저는 그 바다를 두려워했습니다. 그 심연은 한 번 빠지면 다시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어요. 불행이 끝날 것 같지 않았어요. 그렇게 제 겨울은 오랫동안 스며들어 영원할 것 같았거든요. 차가워진 손의 체온은 절대 녹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장고도


때론 불행하고 때론 행복한 게 삶인데 나는 그 불행한 순간들을 너무나도 겁냈습니다.


작은 일도 큰일처럼 받아들였고, 서럽고 비극의 날들을 당연하지 못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근데 영원은 없더라고요. 무한한 것처럼 느껴지는 제 사랑도 한계점을 마주하듯이 불행도 유한했습니다. 그 무한한 것처럼 보이는 두려움이 저를 속여왔습니다. 그 공포심이 사로잡힌 나의 분신이 겁도 없이 거짓말을 했습니다. 위구심은 끝이 없다고요. 천년지애처럼 무궁한 것으로 꾸며냈습니다.


그렇게 꾸며낸 것들이 저를 죄어 왔어요. 나는 죄를 지은 것이 없는데, 나의 분신은 자꾸 다그쳤습니다. 그 가짜의 내가 자신이 진짜라고 말할 때면 저는 파멸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상은 아름답지 못해요. 어릴 적에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럼에도 저는 이 세상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어둠 속에 빛나는 작은 빛을 별빛이라 생각하며 좋아하고 싶어요.



그래서 사랑은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를 속이는 거요. 근데 그냥 속으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 편협한 사랑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냥 저는 저를 속이며 사랑하려고요. 세상은 조금 더 따스해질 수 있다는 그 사실을요. 온수가 나오는 그 욕실에서 나와도 다시 이 욕실로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을요. 제 운명은 제가 정할 수 있다는 그 속임수도요. 신이 있든 없든, 그건 두렵지 않다고요. 두려워도 살아낼 수 있다는 거를요. 사랑에 상처받았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그 변하지 않는 명찰 같은 것도요. 그냥 내 피는 조금 더 따스할 수 있다는 걸 말입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보렵니다.


저를 죽여 왔던 그런 말들은 제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지만, 저는 그들의 말들도 사랑해보고 싶습니다. 저의 열등성은, 바꿀 수 없는 세상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비워져 있는 결핍에도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비록 아직은 차가운 물로 씻을 용기를 내기 어렵지만, ‘뭐 - 어때’ 하면서, 그들을 야금야금 안아주고 싶습니다. 수도 없이 지나쳤던 모르는 이들에게 친절을 주고 싶습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빈자리가 난다면 더 아픈 이들을 위해 남겨두고 싶습니다. 외면했던 들꽃의 모양을 기억할 겁니다. 여름이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더운지, 겨울이 얼마나 과감하게 추운지를 그대로 느끼면서 좋아할 겁니다. 그런 정갈하게 영근 소규모의 다정을 보려고요.


이 겨울도 곧 끝이 나고, 초록이 가득한 봄이 올 거라는 걸 압니다.


그래도 차가운 이 겨울이 당신에게는 조금 더 따스한 초록을 가져다주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추위를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결핍은 곧 욕망으로 직결되니, 우리가 가지지 못한 그 쌀쌀함들이 도리어 우리에게 온기를 가져다줄 거니까 말입니다.


녹슨 사랑에서 퀴퀴한 향이 코를 찔러도 꽈-악 안을 겁니다.

어머니가 어린 저를 안아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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