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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 마 수족구!

by 세상에

오늘로써 만 8일이다. 아들이 수족구에 걸려 꼼짝없이 집에만 있은지...


지난주 아들이 아침마다 코피를 흘려 이불빨래를 해댔다.

뭔가 심상치 않은 조짐이었다. 아들이 코피를 흘린다는 것은 감기 아니면, 뭔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마다 코피를 쏟은 지 3일째에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열이 38.6도란다. 그리고 아들은 연신 목이 아프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들의 목젖에서 두 개의 수포가 발견되었다.


그렇다.

아들은 지금 학교에서 유행한다는 그 수족구에 걸렸다.

나는 모든 일을 뒤로하고 아들과의 칩거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3일 만에 치료되었던 수족구는, 싱가포르에서 8일이 지나도록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고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수족구 판정 후, 이틀 만에 열이 내린 아들은 비교적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다.

그 말인즉슨, 수족구로 학교는 안 가지만 아들의 에너지 레벨은 여전히 높고, 학교에 안 가는 긴 시간 동안 아들과 나는 그 에너지에 상응하는 무언가 놀이를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아침, 점심, 저녁 목이 불편한 아들의 입맛에 맞는 밥을 대령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침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매일 해왔던 숙제를 하고, 아들은 좋아하는 동영상을 50분간 시청했다.

그동안 나는 아들을 위한 밥을 준비했다. 팬케이크, 호박죽, 야채죽, 라면, 스파게티, 미역국, 어묵탕, 김밥 등등 아들이 먹을만한 그리고 나름 영양가 발란스가 맞을만한 각종 음식을 했다. 집중적인 요리는 나의 요리실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내가 매끼 그렇게 다양한 음식을 해 낼 줄 상상도 못 했다. 인간의 한계는 끝이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점심을 먹고 나면 낮잠을 자거나, 영화를 한편 보거나, 꼬물꼬물 집에서 온갖 놀이를 하며 놀았다.

아들과는 주로 옛날 내가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업, 라따뚜이, 라이언킹, 주토피아.. 처녀시절 극장에서 봤던 그 영화를 아들과 함께 보는 기분은 색달랐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던 새로운 메시지들이 보여 주책맞게 눈물이 나기도 했다.

500피스 퍼즐을 맞추기도 했다. 감히 도전을 해볼 생각도 못했던 퍼즐을 이틀에 걸쳐 완성했다. 불가능할 줄만 알았던 퍼즐 맞추기였다. 하지만 아들과 나의 시간은 500피스 퍼즐을 맞추고도 훨씬 남았다.

아들과 요리를 같이 하기도 했다. 밀가루 반죽을 주니, 신이 나서 조물조물했다. 온 집이 밀가루 세상이 되었다. 조물딱 조물딱 신나는 손을 보니, 밀가루 세상이 대수랴 싶었다.

스파게티를 만들려고 소스 유리병을 여는데 잘 안 열렸다. 아들이 도와준다며 소스병을 열다가 그만 유리병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토마토소스와 유리조각이 범벅이 되었다. 치우는데 한세월, 새로운 스파게티를 만드는데 한세월이었다. 도와주려는 아들의 맘을 알기에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안 다쳐 다행이었다.

아들은 집에 있는 재활용품으로 상상도 못 할 작품들을 만들기도 했다. 레고가 들어가는 집을 만들거나, 각종 탈 것들을 만들었다. 우유팩을 자르고 붙이고, 스티로폼 접시를 자르고 붙이고, 테이프가 여기저기 널렸다. 그의 창작열에 어지럽히지 말라고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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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퍼즐을 맞추고, 아들은 만들기 삼매경이었다. 치우는 건 나의 몫이다>


그러다 또 저녁을 먹고 나면, 주로 밤산책을 했다.

한 번은 버스여행을 했다. 집 앞에 있는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서, 거기서 또 다른 아무 버스를 타고 또 종점까지 갔다. 그러다 경전철로 바꿔 타고 몇 바퀴를 더 돌기도 했다. 경전철에서 만난 히잡을 두른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중에 아들이 한국인이 아닌 아가씨와 결혼을 한다고 하면 과연 어떨까 상상을 해 보기도 했다.


한 번은 또 동네 놀이터에 놀러 갔다. 학교에 다녀와서 저녁에는 늘 집에 있었던 터라, 밤에 이렇게 온 동네 아이들이 모여 놀고 있는지 상상도 못 했다. 맨발로 뛰는 아이, 배드민턴 치는 아이, 공놀이하는 아이, 소리를 질러도 뛰어다녀도 신나기만 한 놀이터였다. 적막하기 그지없었던 서울의 아파트 밤놀이터를 생각하니 씁쓸해졌다.


또 한 번은 동네 농구코트로 농구를 하러 갔다. 아들과 나만 놀던 코트에 날이 저무니 아저씨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동네 농구모임을 하는 아저씨들인 것 같았다. 아저씨들이 아들내미의 서투른 자유투를 보고 아빠미소를 지었다. 달밤의 운동은 힘들지만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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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누구와 결혼을 할까 벌써 상상해 본다. 시끄러운 밤놀이터와 구름이 멋졌던 농구코트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매일매일 다음날은 학교 갈 수 있겠지, 학교 갈 수 있겠지 기대하며 아들의 목을 확인했다.

하지만 항생제를 쓰지 않는 싱가포르에서는 쉽게 수포가 가라앉지 않았다.

매일 좌절하며 매일 또 아들과의 추억을 만들어갔다.


그렇게 8일째.

목도 가라앉어 이제는 학교에 갈 수 있겠거니 희망을 가졌다.

그런데 갑자기 귀가 아프다며 아침부터 우는 아들에게 진통제를 먹이고 또 병원으로 향했다.

내내 에어컨밑에서 꼬물거리고 있어서였던지 감기에 중이염이 온 모양이다.

칩거 8일 만에 또 고열이 난 아들에게 약을 먹였더니, 한참을 잔다.


잔잔하게 틀어놓은 피아노 음악 선율,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 아들의 쌔근쌔근 숨소리.

잠시나마 평화가 찾아왔다.


아들아. 아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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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구 당첨! 그래도 버스를 타서, 만들기를 해서 즐거웠던 학교 안가는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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