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자 T 아내와 대문자 F 남편
비록 애교가 있거나 섬세하지는 않지만
말을 다정하게 하거나 돌려 말하는 성격도 아니지만
대문자 T라서 극 F인 나의 감정에 공감해 주지는 않지만
나는 안다. 지금 우리 가족의 행복은 모두 아내 덕분이라는 것을.
올해 아내와 나는 주말부부가 되었다.
딸의 중학교 문제로 나와 딸은 서울에, 아내와 아들은 제주도에 남아 거리상 가장 먼 주말부부가 된 셈이다. 나는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서울에서 멀쩡히 근무 잘하는 사람을 억지로 제주도에 내려가게 한 것도 나였고,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가족이 생이별을 하게 만든 것도 나이기에 면목이 서지 않는다. 지난 2월 중순, 서울에 오피스텔을 구해 딸과 둘만 올라와 지내게 되자 우울해서 마음이 힘들었다. 아내를 그 먼 제주도에 놓고 서귀포까지 출퇴근하게 만든 죄책감에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내는
"지금 내 걱정하는 거야? 나는 잘 지낼 거니까 자기나 딸 잘 관리하고 학교 출근이나 잘해."
라며 태연했다. 아내는 그런 사람이다. 어디서든 잘 적응하며 씩씩하게 지내는 사람! 정작 서울이 고향인 사람은 아내인데, 제주도가 좋아 모든 것을 버리고 제주도로 간 나만 다시 서울에 올라오다니! 이 웃픈 현실에 헛웃음이 나왔다.
"자기는 꼭 그러더라. 자기가 생각한대로 이루고 살면서 투덜대더라. 생각해봐, 딸이 예중에 떨어졌거나 자기가 서울로 파견을 오지 못했으면 어땠겠어? 원하는 대로 다 된 거잖아. 그리고 잠시 떨어져 사는 거야."
우울해 하는 나에게 냉정한 얼굴로 말하는 아내를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딸이 한 마디 했다.
"엄마 정말 대문자 T맞네. 그럴 때는 '외로웠구나~~ 너무 미안해 하지마~~'라고 공감해 줘야 하는 거야."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 2박 3일 일정으로 아내가 서울에 다녀갔다. 오늘 다시 제주도로 내려가는 아내와 아들을 보며 심난한 마음에 그윽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아내는 다이어리에 일정과 계획을 체크하기에 바쁘다.
"여보, 3월 4일 입학식은 이렇게 하고..... 3월 21일은 학부모 총회니까 꼭 참석하고, 방과후 학교 가정통신문 오면 잘 보고 신청하고, 레슨 시간은 언제고....."
인정한다.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내가 그래도 이 정도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것도 모두 아내 덕이다. 극단으로 치닫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고 되돌려 놓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아내이다. 우리 부부를 아는 이웃들이 아내를 보고 "너무 T 아니에요?"라고 말하면 아내는 억울하다는 듯이 항상 이렇게 말한다.
"F인 사람과 살아봐요. 더 T가 된다니까?"
원래 나라는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 내 자신의 만족이나 행복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가족도 뒷전이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가족이 내 삶의 모든 것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내가 바뀌게 된 것도 모두 아내의 덕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주도로 이주하겠다는 나를 믿고 따라주었고, 서울의 직장을 제주도로 옮겼고, 그곳에서 또 씩씩하게 잘 어울려 생활하고 있으니 나는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 외에는 다른 마음을 가질 수가 없다.
대인배 아내와 살면 알게 된다.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살아야 한다는 것,
나를 믿어준 만큼 흔들리지 않고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언제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옛말 틀린 말 하나 없다.
"아내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