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 엄마! 벌이예요.
진짜예요. 벌이 나타났다고요!
베란다에서 으악 으악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둘이서 팔다리를 흔들며 호들갑이다. 아이들의 비명에는 왜 항상 놀람과 즐거움이 같이 묻어나는 걸까. 알다가도 모르는 게 아이의 마음이어서 그럴까.
라벤더에 벌이 네 마리나 모여 앉았다. 꽃에는 이렇게 벌과 나비가 오는 건데 도시에 살면서 어느덧 책에서만 보는 내용이 되어버렸나 보다. 베란다에 있는 꽃에 벌이 모여 있는 걸 보니 나도 아이들처럼 신기했다. 볕이 좋아서 라벤더의 키가 물씬 자랐고 꽃들도 더 길어지고 보라 빛깔도 더 짙어졌다.
소설 수업을 일주일에 한 번 듣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주제 잡기'를 강조하셨는데 그러다 보니 밥을 하다가도 베란다에서 꽃에 물을 주다가도 '주제를 뭘로 잡아야 하나?' 계속 고민이 된다.
지금까지 소설을 쓸 때 생각하는 재미있는 소재거리로 이야기를 나열하다가 분량을 채울 즘엔 결론을 어떻게 내지, 고민에 휩싸이고 결국 대충 마무리 짓고는 제목도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로 조합하곤 했다. 그게 다 주제 없이 쓴 탓.
남편도 항상 지적했었는데, 최근에 롤랑 바르트 책을 읽더니 내가 쓰는 방식이 롤랑 바르트 방식이라며 그런 식으로도 써 보라고 하는데 머릿속이 요즘 휑해선지 주제 잡는 것도, 아무 이야기나 써 나가는 것도 잘되지 않는다.
벌들은 라벤더에게 와서 필요한 것을 매일매일 얻어 가는구나. 공짜니까 마음껏 가져가렴.
나도 꿀을 얻을 어디론가 가든지, 무엇을 통해 얻든지, 영감 받을 누군가를 만나야 할 것도 같은데 마냥 귀찮아지는 나른한 봄.
아침부터 화분 정리를 하고 빨래도 하고 베란다에서 책도 조금 읽었는데 정신이 맑지를 않네. 금방 자다 깬 것처럼 몽롱한 상태.
그리고 오후 3시 30분,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거참 신기하게도 정신이 갑자기 차려졌다. 혼자 집에 있는 것 자체가 꿈속을 걷고 있었나 보다. 큰 아이가 학교에서 만들었다며 종이 카네이션을 건넨다. 색색 깔을 그러데이션까지 넣어 예쁘게도 색칠했다. 글씨도 놀랍게도 처음으로 알아보게 써 놓았다.
편지의 내용이 영 진심 같지 않아, 진심을 물었더니 "뭘 먹을 때 살찐다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맛있는 거 많이 사주세요."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한다. 솔직하게 쓰는 게 가장 좋은 것이라고 늘 이야기했는데 저런 형식적인 말을 어른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 아이의 마음을 생각해보았다. 나도 저런 말들을 은연중에 내심 바랬던 건 아닐까.
아니야. 괜찮아. 솔직해도 돼. 그런데 그 이후의 어른들의 반응과 행동들이 전혀 괜찮지 않았을 때, 아이는 이제 앞으로 마음을 드러내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다. 거짓이 익숙한 어른은 자신이 하는 일상적인 말에서도 진심 없는 빈 말 투성이다. 그리고 아이는 인생 최초로 솔직한 대가가 배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편지도 종이 카네이션도 감동이어서, 그리고 어버이날에 대한 마음을 솔직히 말해 주어 정말 고맙다고 계란을 일곱 개를 풀어 두툼한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양파와 당근은 아주 얇게 다져서 보이지도 않게 아이들 취향으로. 이런 황송한 편지를 받고서 무엇인가를 대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며칠 전 읽었던 책의 내용처럼 부모는 아이를 키우며 이미 충분한 효도를 받으며 살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의 우당당탕 소리.
라벤더의 벌들이 날아다니는 소리.
저녁밥이 지어지는 소리.
그리고 오늘 새로 듣게 된 박진주의 좋은 노랫소리까지.
괜찮은 5월, 괜찮아.
이 몽롱함도 곧 깨지겠지.
https://www.youtube.com/watch?v=Go_I-zRAQK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