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계속 배워야 살 수 있는 거야? 편하게 살 때도 됐는데 말이야.
밤늦게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시간. 만원 지하철의 소음에 파묻혀 멍하니 창밖을 보는 시간. 의미 없는 회의가 끝없이 이어지는 지루한 오후의 시간. 문득, 아주 희미하지만 집요한 목소리가 내 안에서 들려올 때가 있다.
그러면 또 다른 내가 아주 익숙하게, 방어적으로 대답한다. ‘그럼 어떡해. 다들 이렇게 살아.’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잖아. 뭘 더 바라는 거야.’
두 개의 내가 지겹게 다투고 난 자리에는, 언제나 단 하나의 질문이 폐허처럼 남는다. 그것은 바로,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나 스스로도 조금은 진부하다고 생각한다. 또 ‘배워라’, ‘성장해라’ 같은 낡은 레퍼토리인가. 자기 계발서 코너에 먼지 쌓인 채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처럼, 결국에는 당신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당신이 더 치열해야 한다는 채찍질로 끝나는 이야기는 아닐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런 이야기에는 신물이 난다. 나는 이 글의 제목에 혹 해서 이 글을 읽게 될 사람들에게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너무 열심히 살다가 길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이 기나긴 독백은, 그 지독한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아서가 아니라, 그 질문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나 자신을 위한 위로의 기록이자, 흔들리는 나를 위한 가이드이다.
우리는 탐험가였다. 적어도 탐험가라고 믿었다. 손에는 스마트폰이라는 최첨단 만능 도구를 들고, 세상의 모든 지식이 담겨 있다는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했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 많은 것을 봤고, 들었고, 저장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우리는 항해한 것이 아니라, 표류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도착한 곳은 새로운 대륙이 아니라, 끝없이 반복되는 알고리즘의 얕은 섬이었다.
우리는 똑똑해졌지만, 지혜로워지지 못했다. 아는 것은 많아졌지만, 믿는 것은 없어졌다.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었지만, 더 깊이 외로워졌다.
정보의 과식으로 인한 소화불량. 영혼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데, 머리만 터져나갈 것 같은 기분. 나는 이것을 ‘지식 유목민’의 비극이라고 부른다.
그러다 우리는 어느 날, 멈춰 선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내면의 영혼이 보내는 가장 절박한 구조 신호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소리 없는 비명이다.
우리는 그 멈춤의 순간, 텅 빈 방 한가운데서 비로소 자신에게 묻는다. ‘내가 진짜로 원했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 ‘내가 찾고 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이 질문, 이 공허함. 바로 여기에서 우리의 진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절망의 끝에서 우리는 희미한 빛을 발견한다. 그 빛은 저 멀리 외부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내 안에 있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을 끄고,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귀를 기울일 때만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 바로 ‘취향’과 ‘감성’이라는 이름의 나침반이다.
우리는 그동안 이 나침반을 무시했다. 그것은 돈이 되지도, 성공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그저 사치스러운 감정의 놀음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나의 기쁨보다 세상의 인정을, 나의 설렘보다 타인의 기준을 따르는 데 익숙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그 사소하고 쓸모없어 보이던 취향이야말로, 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를 구원할 유일한 방주라는 것을.
오래된 영화 속 주인공의 대사 한마디가, 잊고 있던 꿈을 다시 꾸게 만들고, 낯선 재즈 연주곡의 선율 하나가,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여 눈물짓게 하는 순간들. 이유 없이 끌리고, 설명할 수 없이 마음이 가는 그것들. 그것이야말로 진짜 ‘나’로 이어지는 유일한 이정표다.
우리는 그 이정표를 따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만의 지도를 그려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타인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안전한 길이 아니라, 넘어지고 헤맬 것을 각오하고 떠나는, 조금은 외롭고 서툰 우리만의 길.
그 지도 위에는, 우리가 사랑했던 책의 구절들이 별처럼 박히고, 우리의 마음을 울렸던 노래들이 강처럼 흐르고, 우리가 용기 내어 도전했던 서툰 경험들이 작은 숲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지도가 아니라, 바로 우리 영혼의 지도다.
그렇게 나만의 지도를 그려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아주 이상한 감각과 마주하게 된다. 분명 더 많이 배우고 알아가는데, 어깨를 짓누르던 지식의 무게는 오히려 점점 더 가벼워진다. 세상을 더 많이 알게 되는데, 오히려 아이처럼 더 많이 질문하게 된다.
그것은 배움의 목적지가 ‘완성’이 아니라, ‘성장’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전문가가 되기 위해 배우지 않는다. 오히려 기꺼이, 즐겁게 ‘초보자’가 된다. 서툰 첫걸음의 어색함과 실수의 부끄러움을, 살아있다는 증거로, 성장의 통증으로 기쁘게 받아들인다.
배움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다. 그것은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진 나를 발견하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놀이’가 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행복’이라는 파랑새가, 배움이라는 여정의 끝, 그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무언가를 알아가는 그 설렘, 세상과 내가 연결되는 그 충만함, 작은 성취가 주는 그 순수한 기쁨. 그 과정 하나하나가, 이미 행복 그 자체였다는 것을.
배움은 행복으로 가는 수많은 길 중 하나가 아니다. 어쩌면 배움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완전한 형태의 행복일지도 모른다.
다시, 왜 배움인가?
이제 나는 이 지독한 질문에,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세상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가기 위해서. 기계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나만의 색깔과 향기를 불어넣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있다는 감각을, 그 충만한 기쁨을, 매 순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
나는 다시, 배우고 싶다.
이 기나긴 독백은, 어쩌면 당신에게 건네는 나의 첫 질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그 대답을 찾아가고 싶다는 나의 간절한 초대장이다.
부디, 이 여정에 함께 해주시길.